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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만 아는 세계

정체성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

by 베리티

어릴 적 그는 연극배우로 활동했다. 흔히 하는 초등학교 학예회 같은 것 말이다.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 좋았다기보다는 배우들이 내는 발음, 소리가 좋았다고 했다. 그렇게 계속 배우로서 길을 가다가, 어느 날 자신이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일은 어떻게 벌어지는 걸까.


스물한 살이던 해의 뉴욕. 그는 여자친구와 함께 스튜디오를 빌려 쓰고 있었다. 당시 그에게는 촉망받는 저널리스트 친구가 있었다. 어느 금요일 저녁, 세상 모든 이들이 파티를 하고 있을 것만 같은 뉴욕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 그 친구는 그의 여자친구와 함께 나갔다. 친구는 그에게도 같이 가자고 했지만, 그는 이미 둘 사이를 눈치챘고 마지못해 가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주머니에 3달러도 없어서 어디를 나갈 처지도 못 되었다. 그는 혼자 남은 방에 덩그러니 앉아있다. TV도 나오지 않고, 오디오의 스테레오도 고장 나 있었다. 뭐라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이 그 방엔 아무것도 없었다. 종이와 낡고 오래된 타자기만 빼고.

그 시간 그에게 허락된 그것으로 뭔가를 시작한다. 생애 최초로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대화를 써나가기 시작한다. 어릴 적 연극을 쓸 때도 있었지만, 그렇게 자신만의 재미를 위해서 글을 쓴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쓰는 동안 어떤 느낌을 받았는데, 그건 배우로 연기할 때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자신감을 느끼게 되었고, 자신이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 아론 소킨의 이야기다.


캐나다의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작가가 되는 길은 의사나 법률가가 되는 것과는 다르다고 했다. 가야만 하는 어떤 코스를 거친다기보다는, 조금 이상하고 예상치 못한 길에 이르게 되는 과정에 가깝다고 할까. 작가의 삶은 아침에 일어나 우아하게 차를 마시며 글을 쓰고, 오후에 준비된 점심을 먹고, 때때로 방문하는 손님들과 담소를 나누다가 다시 글을 쓰는 그런 일상이 아니라, 생계를 위해서 다른 직업을 전전해야 하고 과연 내가 계속 글을 쓸 수 있을지 불안해하며, 생활을 견뎌야 하는 그런 일이다. 마거릿 애트우드조차도 그녀에게 작가가 될 줄 알았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천재의 길은 곧게 뻗은 것이 아니라 구불구불한 것이라고 했다. 천재가 아니어서 모르겠지만, 적어도 글을 쓰겠다는 작가의 길도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작가라고 하면 흔히 문학 전공을 예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상당히 많다. 또 생계를 위해서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보면,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도 한다. 누가 들어도 알만한 유명 작가라면 모르겠지만, 이렇게 생활하며 쓰고 있는 나도 과연 작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생활에 쫓기다가 쓸 것들을 놓치기도 하고, 계획대로 되는 일은 좀처럼 없다. 어쩐지 의기소침해진다.


위의 뉴욕 에피소드는 아론 소킨이 어느 작가 지망생에게 한 이야기의 일부다. 지망생이 댄서, 가수, 배우 등 여러 직업을 하다가 쓰게 된 이야기를 하자 아론 소킨 자신의 일화를 들려준 것이다. 그는 지망생에게 묻는다. "쓸 때의 느낌이 어때?" 그는 말한다. 작가로서의 정체성은 중요한 것이다. 쓰는 동안 좋은 느낌을 받을 때 그것은 좋은 사인이 될 거고, 너는 작가다. 그걸로 좋은 작업이 될 것이다.


쓰는 즐거움.

더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임에도 언제나 잊기 쉬운 것이기도 하다. 아론 소킨이 말한 정체성의 혼란도 종종 따라온다. 그럴 때는 아론 소킨의 말대로 쓸 때의 느낌을 다시 떠올려보면 좋을 것 같다.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그래서 하는 말인가 보다. 나에게 하는 말이다,


소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어떻게 쓰는가' 보다는 '왜 쓰는가'를 가르쳤던 작가 잭 길버트를 인용하면서 그의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는 기쁨을 과감히 내걸어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의 무자비한 용광로 속에서도 우리의 즐거움을 찾아 받아들이려는 완고함을 가져야만 한다."


쓰지 못하게 하는, 쓰지 말아야 하는 수 만 가지 이유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우리는 더욱 적극적으로 즐거움을 찾아나설 필요가 있다. 그것을 찾는 만큼, 우리는 풍요로워진다. 쓰는 사람만이 아는 신비한 세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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