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금의 네가 바로 그 답이야!

유명하지도 않으면서 감히 그 일을 하는 이유

by 베리티

30대 초반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한 명은 광고 일을 하고 있었고, 또 한 친구는 출판사로 출근하는 중이었다. 일에 쫓기다 보니 약속 잡기는 가뭄에 콩 나듯 이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만났다. 그렇게 한 번 만나면 밤 12시를 훌쩍 넘기곤 했는데 그래도 헤어지는 발걸음은 늘 아쉬웠다. 사회생활에서 흔히 있는 불합리함, 부당함 그리고 또 만난 사람들, 셀럽들. 우리의 이야기 주제는 차고 넘쳤다. 언제라도 한번 그 셀럽에게 칭찬이라도 듣는 날에는 그 말을 곱씹고 꼭꼭 되새겨서 피와 살로 만들어지기를 바라던 날들이었다. 때로 오버하며 친구의 상사를 욕하기도 하고, 친구를 두둔해주는가 하면 냉정하게 몰아치는 토론으로 감정이 상하기도 했다. 그래 봐야 사회생활에서 뭐하나 만만한 것 하나 없는 우리들이었지만 그런 친구들이 있어서 그렇게 한바탕 수다를 떨고 나면 스트레스는 말끔히 잊은 채로 일터로 돌아갈 수 있었다. 어디에선가 친구는 나를 치켜주는 안정망이라는 표현을 본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 일이 힘들어도 그렇게 함께 하고 나서 돌아올 수 있던 하나의 장소.


그러다가, 30 초반의 나이대에 갑자기 돌아서는 친구들이 있었다. 관계가 돌아서는 게 아니라, 다른 길로 가겠다는 선언이었다. 창작을 하고 싶다고 하던 그 친구들이 갑자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것이었다. 두 명 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남들에게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던 거 같다. 다 필요 없고 안정이 최고인 그런 시기가 있다. 짧은 준비 기간도 아니었고, 그래서 연락을 하기도 애매해졌다. 시험에 붙고 나면, 그때 보자. 그렇게 기다리면서 응원하는 수밖에 다른 선택은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야기 상대가 없어졌다. 어째서 서로 모르는 각각의 두 친구가 비슷한 시기에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나에게는 더블의 공백이었다. 물론 다른 친구들을 만나 얼마든지 떠들 수는 있다. 세상사와 문화, 예술에 대해서 얘기할 친구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예술과 문화의 애호가, 딜레탕트로서 어울리며 얘기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창작을 직접 겪으면서, 책에도 다른 사람에게도 들을 수 없는 생생한 우리의 경험담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창작에 발을 담갔을 뿐, 뭐하나 명함을 내밀만한 업적이 있는 처지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걸 향해 달려가면서 깨지는 이야기들을 섞고 싶었던 것이다.


친구들은 모두 공무원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잘 지내고 있다. 2~3년인가 그렇게 지나고 나서 어딜 가도 번듯하게 내밀 수 있는 명함을 갖게 되었다. 만나면 반갑고, 여전히 즐겁다. 하지만, 예전 같은가 하면 그렇다고 할 수가 없다. 물론 같은 길을 가는 친구라고 해서 늘 한결같은 것도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든 변한다. 하지만 일상의 폭이 크게 달라지니, 어딘가 대화가 섞이지 못하는 것이 감지될 때가 있다. 그런 감정에 대해서 말로 꺼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서로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친구가 주변 사람들 얘기를 했다. 재력이 좋은 사람, 잘 나가는 동창들, 적당히 여유로운 여행. 부동산, 주식. 나도 이야기를 꺼낸다. 주로 주변 사람들이 무언가 만드는 이야기, 쓰는 이야기들이다. 대화를 하다 보니, 어딘가 삐걱거림이 느껴진다. 어쩐지 친구는 어른의 세계에서 자리 잡았는데, 내 주변은 모두가 철부지들만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그 철부지 친구들이 사회생활을 안 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데. 어쩌다 보니 방향이 그렇게 흘렀다. 잠깐 침묵이 흐르고 친구가 묻는다.


"그런데. 네가 셀럽이나 그 분야의 코어는 아니잖아?"


와인을 몇 잔 마셔서 어질 한 것이 아니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 사이의 뭔가가 아득해졌다. 이 친구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창작한답시고 이런저런 일들을 하지만, 그래 봐야 그럴듯한 것도 못 내놨잖아. 혹시 그런 건가? 네가 방송작가라고 하지만 김은희나 김은숙은 아니잖아. 이건가.


가깝다고 생각해서 편하게 한 말인지 모르겠다. 때마침 음악이 크게 흘러나왔고, 나는 음악만 들으면서 따로 대꾸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화제를 바꿔서 사소한 얘기들을 나누고, 우리는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오는 길의 지하철은 유난히 덜컹거렸다.


집을 향해 걸으며 생각했다. 다시 의심해본다. 역시 어중이떠중이 같은 창작자로 지낼 바에야, 좀 평범해도 안정적인 직업을 구해서 평타라도 치면 더 나은 것일까. 어째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는 이 일을 이토록 오래 하고 있는 것일까. 어둑한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고 흔들렸던 것도 같다.


다음 날, 톡이 하나 왔다. 얼마 전 녹화를 마친 교수님이었다. 방송 재미있게 만들어줘서 고맙고, 작가님과의 일이 즐거웠다는 인사였다. 촬영을 위해서 초반 미팅을 했을 때 그렇게 까다롭게 굴던 분이 함께 녹화하면서 완전히 한 팀이 되었다. 다른 방송에 출연도 많이 했는데, 나와의 일을 콕 집어서 즐거웠다고 하는 말이었다.

그 일이 쉬웠다고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을 하면서 때로 흥분하기도 하고, 애쓰기도 하면서 지적, 감정적 경험을 얻었다, 누구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은 없지만, 그 경험들이 결국 내가 된다고 느낀다. 그 방송이 완벽하다거나 시청률 대박이라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 일을 하면서 나는 전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 된다. 그리고 또 한걸음 나아지기 위해서 발걸음을 돌린다.


얼마 전 읽은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나는 야심 찬 포부와 열망을 지닌 어느 신인 음악가 친구를 안다. 어느 날 그녀의 자매가 상당히 합리적 이게도, 이런 질문을 했다. "만약 네가 결국 이 삶에서 잘 풀리지 않으면 어떻게 할래? 만약 끝없이 열정을 쫒았는데도 성공이 오지 않으면? 그러면 네 인생 전체를 아무것도 아닌 일에 낭비한 건데 그때는 어떻게 할래?"


친구는 같은 이유로 그녀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이미 이 삶을 통해 뭘 얻었는지 지금의 날 보고 깨닫지 못한다면, 나는 절대로 그게 뭔지 설명할 수 없을 거야"

그 일을 향한 사랑이 이유라면, 어차피 당신은 그 일을 하기 마련이다.

-<빅 매직> 중에서, 엘리자베스 길버트


창작의 결과는 작품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으로 이미 그 사람이 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쓰는 사람만 아는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