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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일기 예찬론자들

글쓰기의 시작은

by 베리티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가, 미래를 창조한다는 말이 나왔다. 출처는 떠오르지 않는데 어디선가 들어본 이론(?)이다. 나는 미래에 대해 짐작하거나 예견하는 것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못하다. 미래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미래를 창조한다'는 것은 꽤 멋지게 들렸다. 알 수 없는 것이면서 동시에 약간은 손댈 수도 있다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미래를 내다본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현재 속에서 찾을 수도 있으니까. 매일 매 순간 연결되고 있는 현재를 잘 들여다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일기를 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일기라고 하기엔 거창하고, 작은 다이어리에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짧게 메모해놓고 있는데, 언젠가부터 일기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수전 손택은 스물다섯에 일기를 쓰는 일에 대하여 이렇게 썼다.

'일기를 자신의 개인적인, 비밀스러운 생각들을 적어놓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얄팍한 생각이다. 귀머거리에, 벙어리에, 문맹인 사람에게 비밀을 털어놓는 것과 매한가지가 아닌가, 나는 일기에서 나 자신을 어느 누구에게 보다 더 솔직히 표현할 뿐 아니라, 나 자신을 창조한다."


다이어리 반 장 정도를 채우면서도, 혹시나 누군가 알게 될까 사람 이름을 이니셜로 적어놨다가 나중에 다시 보고 도대체 누구인지 나 스스로가 못 알아볼 때가 종종 있다. 내 책상에 있는 다이어리를 펼쳐볼 만한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러면서도 항상 그런 검열을 한다는 것이 웃음이 나기도 한다. 수전 손택의 얘기 중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 역시 나 자신을 창조한다는 말이다.

글 쓰는 이들은 다 알겠지만, 쓰면서 어떤 부분은 미화되기도 하고, 새롭게 각색되거나 해석되기도 한다. 어느 정도 그런 부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만, 좋은 방향에서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스스로를 그렇게 창조해나간다면 아마도 그 모습이 결국 자신이 되는 코스가 되는 것은 아닐까.


어제는 신경과학자 올리버 색스에 대해 쓴 책 '인섬니악 시티'를 펼쳐봤다. 일기에 대해서라면 그도 꼭 한마디 끼워줘야 한다. 소설과 에세이 등 여러 저작을 남긴 올리버 색스도 일기 예찬론자였다. 그가 쓴 수많은 책들의 구상은 사실은 일기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말기암 진단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그는 작가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지적으로, 창조적으로, 비판적으로, 생각할 거리를 담아 지금 이 시기 이 세계를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글로 쓰는 것이지."


작가는 글쓰기에서 일기보다 더 좋은 자원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일기의 백미는 다시 펼쳤을 때 스스로도 놀라는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을, 현재를 잘 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실상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그때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다고?'


머거릿 애트우드는 이런 얘길 했다.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간과하기 쉬운데, 그런 거야 말로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일이라고. 예를 들어 '60년대 버터를 만드는 할머니의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기록해놓으라고. 모두 다 안다고 생각하는 그 시대의 일들이 오히려, 나중에 돌아보면 더 정확히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라고.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주인공 윈스턴은 현재의 기록을 빅브라더의 입맛에 맞도록 모두 고치는 것이 직업이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다.


"모든 것은 그림자의 세계로 사라져, 그날그날의 날짜조차 불확실해져 버린다."


<1984>의 세상처럼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들을 그대로 기록하지 않고, 왜곡해버릴 때 우리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 사소한 것이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내가 시작할 수 있는 작은 발걸음, 일기에 그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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