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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채널MyF 황준원 Oct 22. 2016

자동화 기술은 발전하는데 나는 왜 계속 바쁠까?

『미래행복론』 변화하는 미래사회, 개인은 어떻게 행복할 것인가

자동화 기술은 발전하는데 나는 왜 계속 바쁠까?    

 

한국인은 바쁩니다. 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2014년 기준으로 한국인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124시간으로 OECD 가입국 중 2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죠. 1위 멕시코를 빼면 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을 자랑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과 비교하자면 연간 4개월을 독일보다 더 일하고 있는 시간이라는 계산까지 나올 정도라고 합니다. 


제 주변 친구들만 둘러보아도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은 8시까지 출근해서 밤 12시가 되어 일이 끝났다던지, 이번 주 주말에도 출근해야 한다며 괴로워하는 소리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물론 저도 회사에 다닐 때는 주 7일을 근무한다던지 야근, 주말 출근을 경험할 정도로 매우 바쁜 생활을 해야 했죠.     


그런데 참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세상은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도 자동화가 되어있다는 점입니다. 기술의 눈부신 발달로 사람들의 하던 일을 기계가 대신해주거나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빠르게 일들을 처리해주고 있죠.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그렇게 기술이 발전해서 인간의 노동을 대신해준다면 우리의 노동시간은 줄어들고 여가시간이 늘어나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문서작성만 생각해보더라도, 예전에는 모두 손으로 작성하거나 타자기로 타이핑하던 것들을 이제는 컴퓨터로 작성하기 때문에 훨씬 시간을 절약해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절약된 시간만큼 우리가 한가해졌나요? 그뿐만 아니라 주판을 이용하거나 계산기를 이용해 재정상황을 파악하던 일이 이제는 엑셀 등과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훨씬 빨라졌고, 집안일만 하더라도 세탁기, 전자레인지, 즉성 식품 등 우리의 시간을 절약해주는 무수한 상품, 기술이 발달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여전히 바쁜 걸까요?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제 여동생이 레에 살거든요. 여동생은 일을 빨리 하게 만드는 것들은 뭐든지 가지고 있어요. 옷을 가게에서 구하고 지프를 타고 다니고 전화기나 가스 요리기도 가지고 있어요. 그런 것들 때문에 시간이 많이 절약될 텐데 제가 찾아갈 때면 저하고 이야기 나눌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바쁘답니다.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p.206         



시간은 돈이다.     


‘시간은 돈이다.’ 혹은 ‘시간은 금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간이 그만큼 귀중하다는 의미로 탄생한 말이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조금 다르게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산업화와 급속한 기술의 발달은 인간이 직접 해야 하던 수많은 작업들에서 시간을 절약해주고 있죠. 그렇다면 더 늘어난 여유시간만큼 인간은 일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휴식, 여가시간을 갖는 것이 이치에 맞아 보이지만, 현실은 ‘시간은 돈이다.’라는 말과 어울리게 우리들은 남는 시간을 돈으로 바꿔먹고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직원을 채용한 고용주의 입장에서 생각해볼까요? 예를 들어 A라는 직원은 하루에 8시간을 일해서 5만 원어치의 생산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용주가 회사에 뛰어난 기계를 도입해 A의 일을 상당 부분 자동화시켜준 결과 A가 같은 양을 생산할 시간을 8시간에서 5시간으로 줄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고용주는 A에게 동일한 월급을 주고 5시간만 일하고 퇴근을 하게 해주지 않죠. 대신 기계 도입 전과 동일하게 8시간을 일하게 하고 높아진 생산성만큼 더 많은 생산을 요구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고용주 입장에서는 기계에 투자한 돈을 회수해야 하기 때문에 A가 갑자기 노동시간을 단축하게 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기계에 투자한 돈을 모두 회수한다고 하더라도 고용주는 A의 노동시간을 줄여주지 않는다는 것이죠.


칼 마르크스

사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100년 전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통해서 풀어낸 적이 있습니다. 자본가들은 이윤을 노동자의 노동에서 얻기 때문에 자본가가 이윤을 더 남기기 위해서는 노동자에게 일을 더 시키는 착취 행위를 통해 이윤을 얻는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생각이었죠. 그래서 아무리 자동화가 진행이 된다고 하더라도 자본가는 그 자동화된 부분만큼 노동자를 더욱 착취해서 이윤을 얻기 때문에 자동화가 될수록 노동자는 더욱 착취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생각해볼 점은, 노동자가 동일한 급여에서 자신의 노동시간을 줄이고 싶다면, 고용주가 아닌 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의 생산성을 높여줄 작업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만약 노동자가 자동화 기계나 인공지능 혹은 작업방식의 변화를 스스로 도입한다면 보다 유연하게 자신의 노동 시간과 생산성을 본인이 조절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이번에는 노동자가 스스로 자동화를 도입한 경우를 생각해볼까요? A라는 노동자가 직접 기계를 도입해서 생산시간을 3시간 단축했다고 했을 때, 과연 A는 단축한 시간을 자신의 여가시간으로 활용할까요?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A 역시 높아진 생산성에 맞게 더욱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여전히 장시간 노동을 할 확률도 높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그리고 한국에서 나타나는 상황을 보자면, 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욕망하기 때문이에요. 즉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더 좋은 차와 더 넓은 집을 사기 위해 여전히 바쁘게 노동을 할 것이라는 거죠.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욕망합니다.


과거 전후 시대에는 사람들의 소원은 ‘삼시세끼 흰쌀밥에 고깃국만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였지만 이제는 고깃국으로 사람이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그 고기가 호주산인지 한우인지 그것도 투 플러스 한우인지 아닌지까지 따지는 상황이기 때문이죠.


결국 경제상황이 아무리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은 삶의 만족 기준을 '발전 가능성'에 두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우리의 삶이 향상되기를 원합니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한, 아무리 자동화가 이뤄져서 인간의 노동시간을 줄여준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노동으로부터 해방될 수가 없습니다.          





광고의 유혹     


사람들이 만족을 못하고 바쁘게 노동을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기업이 끊임없이 개인의 소비를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기업은 TV, 지하철, 스마트폰 언제 어디서든 광고를 통해 사람들의 소비를 조장합니다. “이 자동차를 타면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 화장품을 써야 나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물건은 구식이다.” 등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하고 있죠. 거의 세뇌 수준의 영향력을 가진 이 광고는 결국 개인이 카드빚을 져가면서까지 소비를 늘리게 합니다. 


사실 장거리를 걷거나, 달리기 선수가 아닌 사람들이 10만 원이 넘는 나이키의 비싼 운동화를 사는 행위는 기능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운동선수들처럼 하루 몇 킬로미터를 뛰어다니는 것도 아니고, 보통 자동차, 버스, 전철과 같은 교통수단을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비싼 신발이 필요할까요? 


특히나 자동차의 경우 자신의 소득 범위를 넘어 더욱 비싼 자동차를 할부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자동차가 당신의 사회적 지위를 보여준다’는 자동차 광고의 효과적 전달(?)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루 한 잔 커피를 위해 거의 식사비와 맞먹는 스타벅스의 커피를 마시는 것도 기업의 마케팅 전략이 효과적으로 통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마케터와 광고전문가가 월급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죠.


벤츠 광고


이렇게 개인의 소비는 늘어가고 다음 달에 지불해야 할 카드값도 늘어나게 됩니다. 결국 우리들은 세상이 아무리 자동화가 되고 편리해진다고 하더라도 더 많은 돈을 벌어 더 많은 소비를 하기 위해 남는 여유시간을 노동을 통해 돈으로 바꿔먹는 겁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합리적 소비가 필요하지만 자기의 정체성을 물건의 소유에서 찾거나 소비의 경험에서 찾는 사람들에게 합리적 소비, 절약이란 선택권에 들어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절약을 하고 원하는 것을 누리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더 열심히 일해서 더 많은 소비를 하겠다는 사람도 적지 않기 때문이죠.          




사회 전체 속도의 향상     


가스레인지, 자동차, 이메일 등 인류의 시간을 절약해주는 물건들이 계속 발명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이 더욱 바빠진 또 다른 이유는, 그렇게 시간을 절약해주는 기기들이 사회가 돌아가는 속도 자체를 빠르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메일이 의사소통 시간을 절약해준 만큼 사람들의 생활 속도 자체가 전체적으로 빨라졌고, 그 결과 제가 만약 이메일을 과거 기준에 맞춰 4-5일 후에 답장을 준다면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겠죠. 사람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속도 자체가 빨라져 있기 때문에 그 속도에 맞추지 않는 사람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겁니다. 


또한 더욱 향상된 기능으로 시간을 획기적으로 절약해 주는 기기가 나왔을 때, 그 기기를 사기 위해서는 또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남는 여가 시간에 다시 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생활을 획기적으로 편리하게 해주었지만, 마찬가지로 우리가 할부를 갚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주기도 했죠.     


게다가 사람들은 보통 원하는 일을 빨리 처리하고 싶어 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배가 고프면 빨리 먹고 싶고, 자고 싶으면 빨리 자고 싶은 것이 인간이란 동물의 본성이죠. 그렇다면 시간을 아껴주는 기술들의 발달은 과연 사람들을 더 여유롭게 만들까요, 아니면 더욱 바쁘게 만들까요? 과연 시간을 절약해주는 기술을 두고도 그를 포기하고 과거의 생활 속도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스마트폰은 우리의 생활을
획기적으로 편리하게 해주었지만,
마찬가지로 우리가 할부를 갚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주기도 했죠.




노동강도의 기준은 현재


친구가 어느 날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 와이프가 자기는 빨래하느라 힘들었다 그러더라? 참나... 빨래를 세탁기가 하지 자기가 했나?" 친구의 말처럼 이제 우리는 개울가에 가서 빨랫감을 두드리며 직접 빨래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대신 세탁기라는 혁신적인 기계가 빨래를 대신해주죠.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친구의 와이프 역시 본인은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고 느낄까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고 세제를 넣고, 세탁이 끝났을 때 빨래를 건조기에 걸고, 다 마른 옷을 개는 일 역시 상당한 노동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기술의 발달이 우리의 노동강도를 상당부분 낮추어 주었지만 우리들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빨래를 세탁기가 해주더라도 세탁기가 해주지 못하는 그 나머지 부분이 힘들게 느껴지는 겁니다. 자동차가 우리들을 먼 곳에 빠르게 데려다주지만, 운전을 한 행위를 상당한 노동으로 여기고, 문서를 작성할 때 컴퓨터를 이용하지만 타이핑을 하고 마우스를 움직인 행위 자체를 상당한 노동으로 여기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렇다면 미래 기술의 발달 덕분에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노동의 강도가 훨씬 낮아진다고 하더라도, 미래에서도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줄어든 노동의 강도에도 피로함을 느낄 것이라는 점을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즉, 노동강도에 대해 개인이 비교를 하는 기준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인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 노동강도와의 비교, 그리고 지난 주, 지난 달, 1년 전처럼 근기간적 비교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죠. 누구도 자신이 일을 하며 '100년 전에는 이런 일을 하려면 정말 힘들었을텐데, 세상이 좋아져서 지금은 이렇게 편리하게 일을 하네? 너무 행복하다!'라고 느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설령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고 하더라도 찰나의 생각에 지나지 않겠죠. 결국 미래에 인공지능, 로봇, 프로그램 등 수많은 기술의 발달이 우리들의 노동시간을 줄여준다고 하더라도 만족의 미덕을 모르는 사람은 계속 낮아지는 노동강도에도 결코 만족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생각의 성실함     


이렇듯 몇 가지만 살펴보더라도 현대의 사람들이 여전히 바쁜 이유의 힌트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미래의 세상은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데이터 분석기술, 로봇 등의 발달로 계속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봤듯이 그러한 첨단 자동화 기술이 우리를 반드시 여유롭게 해준다고는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인공지능의 시대에 기술이 우리의 노동을 대신해준다 하더라도 인간은 지금보다도 더욱 바쁘게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권이 있습니다. 


첫 번째자동화 기술을 노예처럼 이용해서 노동시간을 줄이고 고부가가치 노동을 통해 수익을 얻는 것이고,


두 번째는 마르크스의 지적처럼 자동화로 인간의 노동력 가치가 떨어져 일자리를 잃거나 아니면 자신에게 돈을 줄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 떠돌며 자본가가 시키는 대로 계속 바쁘게 일하며 사는 것입니다. 


물론 후자의 일자리는 누구에 의해서든 대체될 수 있는 ‘노동의 가치가 떨어지는’ 일자리를 말합니다. 다른 의미로는 장시간 일하지만 부유해질 수는 없음을 의미하기도 하죠.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가 이미지


그렇기 때문에 자동화 기술을 이용해 더욱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철저하게 분석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치관과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끊임없이 묻고 그 답을 찾는 생각의 성실함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랬을 때 다른 누군가에 의해 그리고 어떠한 기술에 의해서도 대체될 수 없는 능력, 즉 가치가 높은 노동력을 갖출 가능성이 열리고, 또 광고의 유혹과 과시를 위한 소비에서 벗어난 합리적인 소비도 가능해질 겁니다.     


성실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미덕입니다. 하지만 그 성실함이란 단순히 끊임없이 노동을 하는 성실함만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몸의 성실함뿐만 아니라 ‘생각의 성실함’이야말로 미래에 갖추어야 할 미덕입니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생각의 성실함을 갖추지 않는다면, 세상이 아무리 자동화가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은 결코 여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생각의 성실함을 갖추지 않는다면,
세상이 아무리 자동화가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은 결코 여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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