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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연 Jun 05. 2024

#32. 아빠, 있잖아.

아빠,

아빠랑 다른 시간에 있게 되고 나서부터 나는 내 모든 시간이 아빠한테 가는 여행길이라고 생각했어. 예전에는 시간이 흘러 나이 먹는 것이 무섭고 막연히 죽음이 두려웠는데, 언젠가부터 시간이 빨리 흘러 얼른 아빠를 다시 만나러 갈 수 있길 바랐어.


아빠,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자신감과 든든함이 내가 원래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 보니 아빠가 내 뒤를 쳐주니 가질 수 있는 것들이었어.


아빠,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 자주 아빠 생각이 길고 깊게 날 때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빠한테 가는 길 동안 그 긴 시간 잘 살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아빠 없는 하루를 살아내는 것에 그다지 자신이 없어.


아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불러도 답이 없는 걸 알아. 그런데 아빠 사진을 보는 게, 마지막에 찍어놨던 영상 몇 개를 보는 게 나는 너무 무서워서 그럴 수가 없어.


아빠,

나는 우리가 다른 시공간에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자각할 때마다 세상이 너무 무섭게 느껴져. 현실은 이렇게 살아도, 꿈에서는 아빠랑 살고 싶어.


아빠, 있잖아.

매일매일 너무 보고 싶어.

한 번만 나를 다시 부르는 그 목소리가 듣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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