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좋아하세요?

김영하『오래 준비해온 대답』,『말하다』외 1

by 아구 aGu
여행은 언제나 목마르고 인생은 찰나와 같다
김영하,『오래 준비해온 대답』

읽은 작품의 수와 울림의 크기에 비춰볼 때, 아무래도 ‘김영하’ 작가를 가장 좋아하는 것 같다. 단정 짓고 싶지는 않아도, 좋아하는 작가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다.


『오래 준비해온 대답』. 한 달 전쯤 신작이 나와 뒤늦게 구매해 읽었다. 『여행의 이유』에서 글 쓰는 일 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들인 것이 여행이라고 밝힌 그. 여행이 곧 인생이고, 인생이 곧 여행이라던 그의 시칠리아 여행기다.


"그럼 혹시 그동안 가고 싶었던 곳 없었어요?" PD가 물었다. "시칠리아요." 마치 오래 준비해온 대답 같았다. 그 자리에 앉기 전까지는 나는 한 번도 시칠리아에 가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본 적이 없었다. 거긴 어쩐지 내가 영원히 갈 수 없는 곳, 그린란드나 남극 같은 곳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시칠리아라는 말이 튀어나온 것이다. - 김영하, 『오래 준비해온 대답』


누군가 내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대답하겠지. ‘파리’. 그럼 파리 외에 가고 싶은 곳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유럽을 사랑하는 내게 다시 가고 싶은 곳은 스위스와 터키 남부. 새롭게 가고 싶은 곳은 노르웨이, 조지아, 이탈리아 남부 그리고 시칠리아.


시칠리아! 올해 유럽을 갔다면 파리를 잠시 벗어나더라도 이탈리아 남부와 묶어 꼭 가고 싶었던 곳. 『어차피 일할 거라면, porto』 ‘디 에디트’ 팀이 이미 한 달 살기로 갔다 온 곳. 거기에 무엇이 있길래 사람들을 당기는 걸까. 김영하는 왜 그런 대답을 했을까? 왠지 이름부터 끌리지 않나? 나만 그런가?


한마디로 부족한 게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의 내 삶은 실로 숨 막히는 것이었다. (중략) 어느새 나는 그렇게 돼 있었다. 생각해보면 모든 게 '어느새' 그렇게 돼 있었다. 이런 '어느새'에는 어떤 값싼 자기도취가 있고 그 안에 오래 머물고 싶은 달콤한 유혹이 있다. - 김영하, 『오래 준비해온 대답』


그는 말한다. 인생은 길지 않다고. 모든 인생이 마찬가지겠지. 여행은 언제나 목마르고 인생은 돌아보면 찰나와 같으니. 스스로에게 또 묻는다. ‘당신을 바꿔놓은 여행지가 있나요’, ‘당신은 오래 준비해온 대답이 있나요?’ 나는 대답한다. ‘네 있어요.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고요.’



나, 섬 좋아하네?
김영하,『오래 준비해온 대답』

해외여행을 못 간지 2년이 되어 간다. 마지막이 여름의 도쿄였다. 공교롭게도 섬이다. 누가 도쿄를 순순히 섬으로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따지면 일본은 열도이니 그렇다고 우겨본다. 시칠리아 여행기를 읽는 내내 섬을 여행하던 기억이 맴맴 돌았다. ‘섬’이라고 하면 아담한 크기의 섬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울릉도와 베네치아 같은 섬, 혹은 그보다 더 아담한 크기. 내가 여행한 곳은 대개 시칠리아 같은 큰 섬이었다. 제주도와 괌이 그랬고, 발리와 롬복이 그랬고, 푸껫과 크로아티아 볼 섬이 그랬고, 스페인 마요르카도 그랬다.


사실, 그곳들에 가보기 전에는 섬의 크기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 섬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 내면에는 ‘섬이 커봐야 얼마나 크겠어’라는 오만한 생각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섬들은 언제나 상상 이상의 모습으로 나를 맞이해주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에 난감한 경우도 있었지만, 그 덕분에 때마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시야가 탁 트인 덕분에 멀리서 몰려오는 먹구름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고, 우기라고 해서 종일 비가 오는 것이 아니라 단발성 스콜이 내린다는 것을 몸소 알았다. 떠오르는 새빨간 태양과 석양이 질 무렵 노을의 찬란한 광휘는 그 어떤 경험보다 벅차고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왜 섬이었을까? 무엇보다 깨끗하고 투명한 바다가 좋다. 섬에서만 접할 수 있는 산뜻하고 푸른 에메랄드빛 물결이 좋다. 섬사람 특유의 느긋함도 좋다. 그 사람들이 내게 보여준 순박하고 대가 없는 호의가 나를 자꾸만 그곳으로 당기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케바케다. 안 좋은 기억은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적다 보니 ‘나, 섬 좋아하네?’ 생각이 든다. 당시 수영을 못하면서도 해변을 좋아해 그렇게나 물가를 기웃거렸던 걸까. 물개인 지금은 어떨까.


우리 인생의 어떤 순간에는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자기 운명에 대한 예언이 된다. - 김영하, 『아주 오래된 대답』


세계 곳곳에서 백신 여권을 도입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봉쇄 조치도 점점 완화되는 추세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그 어렴풋한 빛만으로도 마음이 쿵쾅 되는 요즘이다.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이 오면 몰타와 시칠리아를 꼭 가고 싶다. 그때까지 ciao!



예술가가 되자. 지금 당장!
김영하, 『말하다』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우리 사회와 글쓰기에 관심 있던 고3 때 ‘문화평론가’가 되고 싶었다. 그때는 평론에도 미술, 영화, 음악, 건축, 문학 등 다양한 분야가 있는지도 몰랐지만. 그냥 마음이 그쪽으로 끌렸다.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 시골에 박혀 1년 정도 책만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던 때였다.


친구는 말했다. “문화평론가? 그게 뭔데? 그거 해서 뭐하냐고.” 엄마는 말했다. “글 그거 딱 밥 굶기 좋은 직업이라고. 아빠 봐라. 남자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능력 없으니 엄마한테 무시받고 사는 거 안 보이느냐고. 함부로 그런 생각 하지 말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의 얼굴을 하고, 부모님의 얼굴을 한 악마였네. 내 안의 어린 예술가가 꿈틀대는 순간이었는데 허허. 사람들은 ‘예술’을 어렵고 재능 있는 특별한 사람이 하는 거라 생각한다. 강연을 들어보면, 책을 읽어보면 예술은 특별한 게 아니다.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박물관에 가지 않아도 우리의 예술을 할 수 있다.


성인이 되어 악기를 배우고, 춤과 노래를 배우고, 연기를 배우고, 그림을 그려보고, 글을 써보는 사람들이 있다. 꼭 예술을 지망해서가 아니다. 억압되어 표출하지 못했던 내면의 욕구가, 내 안의 예술가 기질이 뒤늦게 행동으로 나오는 것이다. 주어진 일만 하고 살기에는 재미없고 아까운 게 우리 인생이다.


예술가는 '될 수 없는 수백 가지의 이유'가 아니라 ‘돼야만 하는 단 하나의 이유'로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예술가가 되자. 지금 당장. 어떻게? Just Do It! - 김영하, 『말하다』


될 수 없는 수백 가지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그거 해서 뭐할 건데’라는 마법의 질문과 수많은 악마 앞에서 당당해야 한다. 좋으니까, 끌리니까, 재밌으니까 하는 거다. 별거 없다. 자기 운명이 아니라고 외면하지 말고 그냥 시작하면 된다. 지금 당장. Just do it!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는가? (미투와 길티 플레저, 그리고 박원순)
김영하,『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누구나 그런 감정 있지 않나? 나만 알고 싶고 나만 즐기고 싶어 다른 사람들은 그 즐거움을 몰랐으면 하는 감정. 내게는 이 소설이 그랬다. 가장 좋아하는 소설임에도 꺼내지 않고 아껴 놓은 책. 파괴와 쾌락, 자살과 은폐를 다루며 내게 묘한 쾌락을 안겨준 책.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위력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 책. 고독한 타자들과 자살을 대하는 우리 사회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 책. 저급하고 에로틱한 방식이 아니어서 오히려 고급진 길티 플레저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즐기는 행동) 감정을 주는 책.


자살을 미화하는 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금기시되는 ‘자살’이라는 행위,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무너지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에 대해 메시지를 주는 혁명적인 책이다. 길티 플레저임을 알면서도 쾌락을 추구하지는 않았는지. 욕구에 눈이 멀어 상대의 존엄성을 짓밟지 않았는지, 나는 그들을 자살로 내몰지 않았는지. 과연 그들의 자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가장 좋아하는 소설을 가져와 박원순에 관해 이야기하기 참별로지만 흠흠. 그래도 해야겠다. 무책임하게 떠나는 사람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없다고.


그의 자살이 그가 걸어온 길, 그가 외쳐온 가치들을 무너뜨릴 필요도 없고, 그를 지지하던 사람들까지 싸잡아 비난할 필요 없다. 자살이라고 금기시하거나 미화할 필요도 없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주고 할 말은 하면 된다. 그런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치인과 우리들의 가치이다. 그러니 정치인의 모습이, 미투 변호사 1호였던 박원순의 모습이 바로 우리 모습이고 우리의 일상임을 알아야 한다. ‘내 그럴 줄 알았어’만큼 공허한 외침은 없다.


지지자들의 눈물. 그들의 눈물은 박원순이 아니라 피해자를 향한 사죄의 눈물이어야 한다. 순수하게 박원순을 사랑하고 응원했다면 그를 대신해 피해자를 향해 고개 숙여야 한다. 그것이 고인을 애도하는 올바른 방식이고, 피해자가 순식간에 가해자가 되어버리는 현실을 조금이나마 바로 잡을 방법이다. 죽어버리면 모든 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만 진실을 밝힐 수 있는 피해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의 손을 잡아줘야 한다. 박원순을 지지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안희정을 지지하던 사람으로 우리 사회의 수많은 미투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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