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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원,『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2인조』

by 아구 aGu
찰나의 순간들
이석원,『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사람은 무엇이든 망각한다. 좋은 기억도 그렇지 않은 기억도 시간과 함께 흐릿해진다.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 그 시간이 어떤 의미였는지 점점 희미해진다. 어쩌면 축복일지도 모르겠다. 기억이 너무 선명하면 밤마다 잠 못 드는 경우가 많을 테니. 누구나 잊고 싶은 기억이나 잊고 싶지 않은 기억 하나쯤은 안고 살아가니까. 아픔은 상처가 되어 우리 몸에 선명한 자국을 남기고 그 흔적은 시간이 갈수록 아물기도 한다. 어떤 아픔은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는 게 없을지라도 일단은 그렇게 믿고 싶다.


나는 어쩌면 생의 진실이란 건 그저 지금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하나하나의 순간들을 사진 찍듯 글로 잡아채고 싶었다. - 이석원,『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찰나의 순간을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얼마나 많은 찰나의 순간을 거쳐왔을까. 기억조차 못 하는 수많은 찰나의 순간이 있었겠지. 어쩌면 내가 느끼지도 못했을 어떤 불편함. 같은 공간에 있음에도 감지하지 못했을 어떤 표정. 대화를 주고받으면서도 알 수 없었던 어떤 아픔. 어쩌면 영영 모를 수도 있을 어떤 마음.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우리’는 같은 마음이었을까.


세월을 겪을수록 마음에도 굳은살이 박인다고 생각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다를 거라 생각했다.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감정을 나누고, 관계를 맺는다는 건 그렇지 않더라. 사소한 순간에 사랑이 깃들기도 하지만, 사소한 이유로 멀어지는 것이 사람이더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데는 별다를 게 없더라. 찰나의 순간이 만들어내는 그때만이 존재한다. 문제는 마음의 상흔이다. 그것은 짧은 시간에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도, 마음도 흔적 없이 끊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찰나의 순간을 기억할 수는 없다. 그저 인상적인 순간이 몇 장면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런 장면들이 쌓이고 쌓여 저마다의 인생이 되는 걸까. 그렇다면 내 인생에서는 어떤 장면이 기억으로 남을까. 지금 이 순간, 이 감정은 어떤 장면으로 기억될까. 적으며 느끼는 감정 역시 언젠가는 잊어버리려나. 문득 이 순간조차 그리울 때가 있으려나. 모르겠다.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어렵다.



인생은 유한하고, 나는 그 유한성을 점점 더 절감해가는 나이가 되었어
이석원,『2인조』

해마다 부산 내에서 근무지를 이동한다. 하는 일은 비슷해도 일을 제대로 해야만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곳도 있어 선호도가 나뉜다. 순환근무라는 이름으로 여기도 나름의 규칙이 있다. 잘 지켜지지 않아 문제지.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정석대로만 갈 수는 없겠지만, 당겨주고 밀어주는 밑 작업이 꽤 잘 먹힌다. 어디서 일하는지, 누구와 일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 사회생활도 하나의 능력이기에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내 스타일은 확실히 아니다.


매년 익숙한 사람들과 헤어지고 새로운 사람들을 알아가며 느끼는 감정은 묘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감정이 점점 무뎌진다는 점이다. 언제부터 적응하지 못함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적응하는 게 더 무섭게 느껴진다. 며칠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려 한 일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 어영부영 시간이 흘렀다. 원하지 않는 길임을 알면서도, 아니다 싶음을 알면서도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일도 그렇고 관계도 그렇고. 다들 그렇게 사는 건가?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 이런 걸까?


인생은 유한하고, 나는 그 유한성을 점점 더 절감해가는 나이가 되었어. 그러다 보니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만나기 위해 당장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기회는 어쩌면 영영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지금 내 나름의 사랑하는 법을 실천하고 있는 중인 거지. - 이석원,『2인조』


살아갈수록 유한성을 절감한다. 인생은 길지 않다. 버티고 견디는 순간도 필요하지만, 익숙함에서 벗어나 방향을 틀어보는 용기도 분명 필요하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받아들이고 잘 다닐지도 모르겠다. 우선 하루에 충실해야지. 조금 더 사랑해야지. 되는대로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새기고 싶다. 일상에서 좋아하는 것들에 더욱 마음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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