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린, 좋아하세요?

백수린,『친애하고, 친애하는』,『다정한 매일매일』,『여름의 빌라』

by 아구 aGu
친애하고, 친애하는 마음으로
백수린,『친애하고, 친애하는』

올해 새롭게 알게 된 작가들이 있다. 박연준, 이은정, 박준, 권여선, 그리고 백수린. ‘한겨레 21이 사랑한 작가 21명’ 통해 관심을 가지게 된 그녀다. 인터뷰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여름의 빌라』, 와 『친애하고, 친애하는』을 체크해두었는데 산문을 먼저 읽어버렸다.


소설가의 산문은 확실히 깊이가 있다. 문장의 힘이 있으며 다감하다. 사회 문제에 대해서 비판적일지라도, 사람을 향해서는 친애하는 마음이 있다. 자극적이고 서늘한 글보다는 따뜻한 글에 마음이 간다. 듣기 좋게 포장된 반드러운 말이 아니라,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는 따뜻함이 좋다. 꾸준히 적으며, 일상을 관찰하며, 새롭게 발견하는 내 모습이 있다. 내가 이렇게 따뜻한 사람이었던가?, 다정한 사람이었던가?


무엇이 나를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으로 만드는가. 그건 쓰면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무슨 말이라도 적어내야 하는 반성문이 아니라, 자발적인 반성문을 적게 된다. ‘그때 왜 그렇게 말했을까.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왜 그렇게 상처 줬을까. 왜 그렇게 모질었을까. 그때 왜 그랬을까 정말.’ 수험생도 아니면서 후회와 반성으로 오답 노트를 채워가게 된다. 그렇게 적으며 자신을 알아간다. ‘내가 정말 부족한 사람이구나, 무서운 사람이구나’ 깨닫게 된다. 내가 중한만큼 너도 중하다는 걸 머리로는 알아도 순간의 감정이 앞서는 우리는 사람이니까.

"우리가 필연적으로 타인을 오해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실패한 서사를 복기하는 능력이 있어요.”
- 백수린, ‘한겨레 21이 사랑한 작가 21명’


나의 말이 타인을 함부로 왜곡하거나 재단하지 않기를. 내가 타인의 삶에 대해 말하는 무시무시함에 압도되지 않기를. 나의 글에 아름다움이 깃들기를. 나의 글이 조금 더 가볍고 자유로워지기를. 그리하여 내가 마침내 나의 좁은 세계를 벗어나서 당신에게 가닿을 수 있기를. - 백수린, 『다정한 매일매일』


글 쓰는 사람이 괜히 다정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표현할 줄 아는 거처럼 다정함도 그렇지 않을까. 내 마음을 왜곡 없이 온전히, 다정히 전할 수 있다면 나도 조금은 무해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아름다운 사람이 되지 않을까. 당신에게 가닿을 수 있지 않을까. 다정한 매일매일 속에서 친애하고, 친애하는 마음으로.



우리에게는 실패한 서사를 복기하는 능력이 있어요
백수린, 『친애하고, 친애하는』

소설과 에세이를 좋아한다. 요즘 빠진 작가는 백수린. 타인을 대하는, 관계를 대하는, 사랑을 대하는 그녀의 글이 내게 와닿는다. 모든 작품을 읽은 건 아니어도 기본적으로 온기가 느껴진다. 사람을 향한 다정함이 느껴진다. 그것이 설령 틀어지고 어긋나고 상처가 되어버린 관계라 할지라도 말이다.


"저는 이렇게 과거를 곱씹는 행위, 복기하고 재해석하는 게 타인을 대하는 윤리적 태도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쓴 것 같아요. 우리가 필연적으로 타인을 오해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실패한 서사를 복기하는 능력이 있어요. 그걸 통해 뭔가를 발견해낸다면 […] 그런 게 쌓일 때 우리가 소통에 조금은 가닿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 백수린, ‘한겨레 21이 사랑한 작가 21명’


많은 것들은 이미 떠나온 이후에야 비로소 보이지만,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서 떠나온 것들 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으니 그것은 고통스럽지만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 백수린, 『친애하고, 친애하는』 작가의 말


사람들은 과거에 얽매이지 말라고 한다. 지나간 일은 훌훌 털어버리라고 한다. 살아보니 그게 말처럼 간단하지 않더라.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돌아보고 돌보는 시간을 가지는 사람이라면, 지나간 순간은 후회와 반성이 앞서더라. 과거 속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더라. 떠나온 것들 곁으로 다시 돌아가는 행위를 사랑한다. 누구에게나 지나간 시간조차 붙잡고 싶은 순간이 있으니까. 그런 과정은 반대로 내게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기도 하니까.


그러고 보니 어릴 때 바둑을 배웠었다. 학원에서 실력이 꽤 빨리 느는 편이었는데, 그것이 다 ‘복기’ 덕이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지나온 순간을 더듬으며 한 점 한 점 돌을 놓아가는 그 마음. 글을 쓰는 일도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나와 너 그리고 우리 그 관계 속을 들여다보는 마음. 나와 당신을 친애하는 마음. 그런 것이 없다면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와 같이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당신에게
백수린,『다정한 매일매일』

대표님이 권하여 인스타를 시작한 지 여러 달이 흘렀네요. 기록한 글 덕분에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어 좋아요. 힘겨운 2020년을 돌아봐요. 올해는 제게 어떤 시간, 어떤 의미였을까요. 그리고 당신의 시간, 당신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한 해를 마무리하고 한 살을 더 먹어가며 생각해요. 꼭 앞자리가 바뀌지 않아도 나이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 많지 않아요. 언제나 우리는 어림에 마음을 두고 싶어 해요. 어른이 된다는 건 참아야 할 일, 책임져야 할 일 투성이에요. 나 하나도 먹고살기 힘든데, 내 인생도 벅차 허덕이는데, 사회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고 요구해요. ‘그 나이 먹도록 뭐 했냐’는 말과 눈빛으로 다그쳐요. 누구의 기준일까요. 누구의 잣대일까요. 너와 나는 분명 다르다고 배웠는데. 비교는 최악이라 그랬는데. 왜 그럴까요 정말.


흐르는 시간은 또 왜 그럴까요. 점점 쏜살같아요. 한 것도 없는데 1년이 흐르고 다시 새해를 맞이해요. 올해는 더 그래요. 거리 두기로 서로의 온기를 느끼기 쉽지 않아서일까요. 어제와 비슷한 오늘, 오늘과 비슷할 내일은 재미없고 공허해요. 무엇을 위해 사는지. 인생은 정말 고통이 기본값인지. 달이 지고 해가 뜨듯, 또 해가 지고 달이 뜨듯, 지루한 반복이 인생의 전부인 걸까요.


근데, 어제와 오늘은 명확히 달라요. 우리가 매일 맞이하는 아침은 결코 겪어본 적 없는 새로운 날이에요. 비슷한 일을 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사람을 만나며 ‘한 것도 없다.’ 생각할 뿐이죠. 사실 평범해 보이는 하루가 우리 인생일지 몰라요. 특별한 거 없는 아무 날이 우리 인생일지 몰라요. 그 순간들이 진짜 인생일지 몰라요. 그러니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안에서 자신의 얼굴, 감정, 목소리를 자주 마주하면 좋겠어요.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살필 수 있으면 좋겠어요.


2020년, 수집한 문장을 바탕으로 제 이야기를 했어요. 읽어주고 표현해주고 함께해주는 당신이 없었다면, 꾸준하지 못했을 거예요. 모두 당신 덕분이죠. 정말 감사한 마음이에요. 앞으로도 좋아하는 것을 당신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내년 상반기는 책을 출판하고 싶고 하반기는 파리를 가고 싶어요. 잘 될지는 모르겠어요.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당신에게 닿기를 바랄 뿐이죠.


우리가 어디로 향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그저 묵묵히, 하루와 하루 사이를 박음질하듯 이으며 살아갈 뿐이니까. - 백수린, 『다정한 매일매일』


어제와 다를 거 없는 지루한 반복이 우리 인생이라면,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우리 인생이라면, 어차피 계속돼야 하는 게 우리 인생이라면, 조금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어요. 이왕이면 좋아하는 일로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나와 같이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당신과 함께면 좋겠어요.



지금도 여전히 그러나요, 당신
백수린,『여름의 빌라』

책을 보고 여름의 기억을 더듬어봐요. 희미한 기억의 편린을 떠올려봐요. 그것이 환기하는 풍경, 온도, 장면, 생각들을. 혹시 모르죠. 그때는 알지 못했던 어떤 순간을 마주하게 될지요. 상처 줬던 나의 마음을 반성하게 될지요. 놓쳐버린 당신의 마음을 발견하게 될지요.


그러고 보니 당신과 함께한 여름 여행이 유독 기억에 남아요. 겨울에도 우린 함께였는데 왜 그럴까요. 당신이 겨울보다 여름을 좋아해서일까요. 여름의 뜨거운 태양을 좋아한 당신. 빛보다 더 강렬했던 당신. 지금도 여전히 빛이 나나요. 그 밝음으로 주위를 환하게 만드나요. 지금도 따사로운 햇볕 아래서 사진을 건지려 하나요. 지금도 네일과 메이크업을 좋아하나요. 지금도 속이 자주 허한가요. 지금도 수족냉증으로 고생하나요. 지금도 아버님은 꾸러기인가요. 지금도 어머니는 따뜻한가요. 지금도 여전히 그러나요. 지금도 여전히 그러나요, 당신.


무. 당신의 집 거실에 적혀 있던 글자처럼, 사실은 우리 사이에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음을 그저 받아들였으면 좋았을 텐데. 사람은 어째서 이토록 미욱해서 타인과 나 사이에 무언가가 존재하기를 번번이 기대하고 또 기대하는 걸까요. - 백수린, 『여름의 빌라』


보통날과 마찬가지로 어떤 글을 적을지 고민하다, 여름의 기억들을 떠올리다, 흘러간 여름이 생각났어요. 그때는 알지 못했던 반짝였던 시간이 생각났어요. 안고 싶다는 말은 아니에요. 그저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에요. 살면서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고 또 기대한 적도 많았죠. 이제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네요.


올해 여름은 어떤 모습일까요. 다가올 여름을 기다려요. 자주 머뭇거리고, 자주 휘청거리고, 자주 닿을 수 없더라도, 자주 사랑하고 싶어요. 그 기대가 다시 나를 힘들게 하더라도 이왕이면 사랑에 마음을 두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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