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좋아하세요?

김금희,『사랑 밖의 모든 말들』,『복자에게』,『경애의 마음』

by 아구 aGu
사랑, 그 무게감에 대하여
김금희,『사랑 밖의 모든 말들』

소설을 읽고 싶은데 주로 손이 가는 건 여전히 산문집이다. 나름의 타협이었을까? 소설가의 산문집이자 두 번째 접하는 김금희 작가의 책. 그녀의 소설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사랑 밖의 모든 말들』 제목이 인상적이다. 부록인 ‘사랑 밖의 모든 색인’도 그렇고.


그녀가 사용한, 가져다 쓴, 내뱉은, 적어내려간 단어들 중 빈도수가 가장 높은 단어들은 대개 이런 것들이다. 사람, 우리, 나, 말 그리고 사랑. 이런 단어가 내게 불러일으키는 느낌은 우선 따뜻함과 포근함이다. 때로 ‘사람’에 치이고, ‘우리’에 불편하고, ‘나’에 어색하고, ‘말’에 상처받고, ‘사랑’에 아플지라도.


‘사랑’이라는 단어가 주는 그 무게감. 좋아하다는 쉽게 나와도 사랑하다는 뱉기 어렵다. 어딘가 낯간지럽다. 표현에 어색함이 없어야 좋은데, ‘사랑’만큼 아름다운 단어가 없는데 흠흠. 노력해서라도 많이 쓰고 싶다. 말의 힘은 참 신기하기 때문에 ‘사랑’이란 단어를 자주 꺼내다보면 혹시 모르지. 사랑주고 사랑받으며 좀 더 사랑스러운 사람이 될지.


사랑은 우리에게 남은 최후의 보루, 최후의 온기인데 그런 것에까지 세상일이란 게 다 그런것이라는 식의 냉소를 퍼부으면 곤란하다. 그런 냉소를 뒤집어쓰다보면 우리는 마음속까지 얼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 김금희 『사랑 밖의 모든 말들』


산문집이라고 가볍지는 않았다. 문장의 호흡이 길었고 깊이가 있었다. 소설가의 결이, 그녀의 사랑이 내게 스며들었고 수집한 문장들이 많았다. 근데 그만큼 집중해야 문장이 들어오니까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사랑과 사랑 밖의 모든 말들에 대해 떠올릴 수 있어, 기억할 수 있어 참 괜찮았다.



이영초롱에게
김금희,『복자에게』

안녕. 영초롱아. 복자에게 보내는 편지와 너의 이야기 정말 잘 읽었어. 마음이 있어 내가 반응을 하는 거겠지? 제주에 가면 너와 복자가 생각날 것 같아. 존재하지 않는 고고리섬이라 할지라도, 어느 섬에서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는 복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그것이 소설이, 너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위로가 아닐까 해.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이 내게 불러일으키는 기억과 이미지들까지 말이야.


읽어가며 ‘관계’와 ‘실패’에 대해 생각했어. 살면서 우리는 무수한 관계를 맺고 무수한 실패를 경험하잖아. 파도처럼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이 인생인가 싶어. 굴곡 없는 인생, 파도 없는 인생은 없으니까. 밀려오고 쓸려가고 부서질지라도 파도는 계속되니까. 그게 우리가 생에 남긴 흔적일 테고. 그 흔적들이 쌓여 누구의 인생이 되겠지.


관계와 실패에 힘든 사람 많잖아. 나도 그래. 때로는 상대방을 오해해 이별하기도 하고, 섣불리 판단해 일을 그르치기도 하고, 사랑 앞에서 마음이 고장 나기도 해. 파이팅 넘치는 날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한없이 무너져 내리는 날도 있지. 그럴 때면 정말 인생은 슬픔이, 고통이 기본값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 그래도 있잖아. 책도 좀 읽고, 경험도 좀 하고, 살아보니 있잖아, 인생은 제법 살만하다고 생각해. 실패한 관계, 인생이라도 살아가다 보면 회복할 기회가 주어지기도 하니까. 현재의 시련이, 좌절이 생의 실패는 결코 아니니까.


영화 300에서 ‘나는 관대하다’는 말 유행한 거 기억나? 타인에게 엄격하고 나에게만 관대한 사람이 아니라, 나의 실패를 관대하게 껴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래서 자기감정에 인색하지 않고 싶어. 내 감정을 오롯이 마주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의 마음도, 실패도 품을 수 있을 테니까.


슬픔의 이유에 갇히지 않고도 슬픔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방법을 소설이 언제나 가르쳐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김금희,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유년의, 생의 실패와 반짝이는 순간들을 기록해줘 고마워. 무너지지 않고, 멈추지 않고 상대를 존중해줘 치유되고 사랑이 차올라. 파리 생활은 어때?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실패는 아프게도 계속되겠지만, 그것이 삶 자체의 실패가 되게는 하지 말자”는 작가의 말을 너에게도 해주고 싶어. 그럼 건강해. 현명한 너의 친구 복자에게도 안부 전해 주고.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김금희, 『경애의 마음』

부산 기준 내일부터 2.5단계 시행이에요. 이번 달은 집에 머무는 시간이 부쩍 늘었어요. 스벅을 못 가니 갈 데가 없더라고요. 단계별 거리두기의 실효성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었어요. 2단계나 2.5단계나 3단계나 결국 나갈 사람은 나가고, 만날 사람은 만날 테니까요. 집합 금지 시설이 아닌 다른 곳으로 사람이 몰리는 현실이니까요. 근데, 거리두기 단계가 올라가고 집합 금지 시설이 늘어나니 갈 데가 없어 집으로 가게 되는 경우도 확실히 있더라고요. 스벅을 갈 수 없어 읽는 시간이 확 줄었어요. 읽음으로 채우지 못하면 마음이 텅 비어요. 들어오는 것이 있어야 생각하고 뱉어낼 수 있거든요. 내게는 2주가 한계치예요. 그 시간 동안 비워지고 닳아가는 마음을 채우지 못하면 참 힘들어요. 그럴 때면 진탕 책을 읽거나, 좋아하는 공간을 가고 싶어요. 좋아하는 것으로 나를 꼭 채우고 싶어요.


이번 달은 겨우 책 한 권을 읽어 냈어요. 공간이 내게 미치는 힘을 몸으로 느껴요. 도서관을 가봤지만, 몸도 마음도 불편해요. 익숙지 않아요. 어쩔 수 없죠. 생계를 위협받는 사람에게는 배부른 소리일지 몰라도, 제 일상이 무너지니 저도 답답한 마음이네요. 혼자가 편하고 홀로 시간을 보내는 일에 어려움이 없는 사람인 저도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더하겠죠. 막연한 희망을 얘기하고 싶지 않아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무너질 사람이 많아요. 그만큼 버티기 힘든 상황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휘청이는 시간이에요.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졌다. 하지만 그렇게 하루를 포기한다는 것은 조금씩 삶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르지 않아서 [...] - 김금희, 『경애의 마음』


부스러지더라도 파괴되지 않았으면 해요. 마음을 폐기하지 않았으면 해요. 하루를 포기하며 조금씩 삶을 잃지 않았으면 해요. 자신의 마음을 돌보세요. 슬픔에 무너지지 않도록. 긴 어둠에 잠식되지 않도록. 찬바람에 따뜻함을 잃지 않도록. 당신을 위해. 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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