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쓸모 (마케터의 영감노트) - 이승희
삶이 팍팍하고 축축할 때마다 과거를 떠올렸다. 흘러가는 시간 속 나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어서. 나의 일기를 읽고 싶었다. 어린 시절의 나, 과거의 나, 작년의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지. 알고 싶었다. 기억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아있는 기록이 없었다. 기록이 없으니 기억할 수 없었다. 당장 어제 일도 기억나지 않는데, 오래전 일이 선명할 리가. 그때마다 기억력을 탓했다. 내 머리를 탓했다. 아 왜 그것도 기억 못 하는 걸까. 내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 걸까? 난 왜 이 모양일까.
뭔지 몰라도 평소와 다른 느낌이 들 때면 무조건 그 느낌을 어딘가에 잡아둬야 한다.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내려오는 영감은 없다. - 이승희, 『기록의 쓸모』
생각해보니 결국 관심의 차이였다. 내가 관심 있는 것은 선명했고 그렇지 않은 것은 흐릿했다. 머리는 잘못이 없
었다. 기록하지 않은 게으른 내 몸뚱어리 탓이었다. 때로 영감이라 부르는 순간들이 찾아 왔지만, 너무 쉽게 놓쳐 버렸다. 유레카를 외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언제부터 마음이 동하는 것들을 기록하고 좇다 보니 지루하게 느껴지던 일상이 새로워졌다. 풍성해졌다.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의미 없는 시간, 의미 없는 경험은 없다는 걸 몸으로 알아버렸다. 흘러가는 시간 속 나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기록을 통해 달라졌다. 내가 무엇에 반응하는지, 무엇에 끌리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글을 적으며, 기록을 남기며 느꼈던 감정들이 책을 통해 선명해진 기분이다. 오랜만에 소장하고 싶은 책을 만났다. 치열하게 기록을 남기고, 치열하게 영감을 수집하고, 치열하게 공유해서 콘텐츠를 만들어 낸 그녀의 뒤를 따라가고 싶다. 나의 언어, 나의 방식으로. 당신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