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는가?

김영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by 아구 aGu

2020.07.10


누구나 그런 감정 있지 않나? 나만 알고 싶고 나만 즐기고 싶어 다른 사람들은 그 즐거움을 몰랐으면 하는 감정. 내게는 이 소설이 그랬다. 가장 좋아하는 소설임에도 꺼내지 않고 아껴 놓은 책. 파괴와 쾌락, 자살과 은폐를 다루며 내게 묘한 쾌락을 안겨준 책.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위력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 책. 고독한 타자들과 자살을 대하는 우리 사회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 책. 저급하고 에로틱한 방식이 아니어서 오히려 고급진 길티 플레저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즐기는 행동) 감정을 주는 책.


자살을 미화하는 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금기시되는 자살이라는 행위,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무너지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에 대해 메시지를 주는 혁명적인 책이다. 길티 플레저임을 알면서도 쾌락을 추구하지는 않았는지. 욕구에 눈이 멀어 상대의 존엄성을 짓밟지 않았는지. 나는 그들을 자살로 내몰지 않았는지. 과연 그들의 자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가장 좋아하는 소설을 가져와 박원순에 관해 이야기하기 참별로지만 흠흠. 그래도 해야겠다. 무책임하게 떠나는 사람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없다고.


그의 자살이 그가 걸어온 길, 그가 외쳐온 가치들을 무너뜨릴 필요 없고, 그를 지지하던 사람들을 싸잡아 비난할 필요 없다. 자살이라고 금기시하거나 미화할 필요도 없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주고 할 말은 하면 된다. 그런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치인과 우리들의 가치이다. 그러니 정치인의 모습이, 미투변호사 1호였던 박원순의 모습이 바로 우리 모습이고 우리의 일상임을 알아야 한다. ‘내 그럴 줄 알았어’만큼 공허한 외침은 없다.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지지자들의 눈물. 그들의 눈물은 박원순이 아니라 피해자를 향한 사죄의 눈물이어야 한다. 순수하게 박원순을 사랑하고 응원했다면 그를 대신해 피해자를 향해 고개 숙여야 한다. 그것이 고인을 애도하는 올바른 방식이고, 피해자가 순식간에 가해자가 되어버리는 현실을 조금이나마 바로 잡을 방법이다. 죽어버리면 모든 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만 진실을 밝힐 수 있는 피해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의 손을 잡아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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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을 지지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안희정을 지지하던 사람으로 우리 사회의 수많은 미투 피해자들에게 늦었지만 사죄하고 싶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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