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개인주의자의 인터뷰

박완서, 『박완서의 말』

by 아구 aGu


부제가 마음에 들었다. 박완서. 그녀의 이름이 주는 힘도 있었고. 정작 그녀의 작품을 읽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엄마의 말뚝』, 『그 여자네 집』 등 제목이 익숙한 작품이 많다. 그럼에도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건 오래전에 읽었는데 기록을 안 했거나, 아예 읽지 않았거나. 후자가 맞겠지. 그녀가 남긴 많은 작품 중 하나도 읽지 않았다는 건 그동안 얼마나 책을 멀리했다는 말인가. 허투루 보낸 시간이 부끄러운 순간이다. 사실, 그녀가 고인이 된 것을 책을 통해 알았다. 2011년 여든 살에 돌아가셨는데 왜 몰랐을까. 그녀의 작품이 여전히 살아숨쉬는 것처럼 그녀 역시 내 곁에, 우리 곁에 머무른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아니면 왕성했던 그녀의 작품활동처럼 그녀가 여전히 소설을 쓰고 있다고 믿고 싶었던 걸까. 좋은 콘텐츠, 좋은 작가의 힘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비록 그녀는 이제 나와 다른 세상에 있을지라도, 그녀의 목소리를 담은 그녀의 인생을 담은 책들이 그녀가 여전히 생생하다고 말해주니까.


내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으면 소설을 결코 쓰지 않겠죠. 그것이 안 되니까 소설로 쓰는 거니까. - 박완서, 『박완서의 말』


좋은 문장은 힘이 있다. 울림이 있다. 읽는 순간 내게 닿아 소름이 돋아난다. 작가는 작품으로 이야기하고 소설가는 소설로 이야기한다. 그녀는 말한다. 소설이란 결국 상상력에 자기 이야기를 보태는 것이라고. 안목, 체험, 구상이 소설을 쓰는 태도 전부라고. “알아듣기 쉽게 말한다는 게 참 힘들어요. 소설이란 여러 사람하고 같이 공감하면서 쉽게 마음에 와 닿도록, 삶의 모습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쓰는 거예요.”매일 글 적으려 노력하다 보니 고민이 든다. 글이 길어지면 사람들이 읽지 않으니까. 글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재밌는 것이 훨씬 많으니까.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하고, 공유하지 못하고, 공감을 얻지 못하는 글은 의미가 약하니까. 수십 권의 책을 내고 반평생 소설을 써온 사람도 한 마디로 표현하기 힘들어 소설을 쓴다니. 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박완서의 말 (박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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