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됐건 살아지고, 또 결국엔 다 사라져

김성중, 『이슬라』

by 아구 aGu

재난 소설에 가까운 『이슬라』. 재난 소재 콘텐츠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도 재난이 넘치는데 굳이 ‘재난’을 얘기해야 하는가, 상상해야 하는가, 이런 마음가짐이었던 것 같다. 타짜에서 아귀도 정마담에게 그랬지. “상상력이 많으면 그 인생 고달퍼”라고.


죽음이 없다는 상상에서 『이슬라』는 출발한다. if를 싫어해도, 가정법 과거, 가정법 과거완료, 가정법 미래를 질색해도, 죽음이 없다는 가정은 흥미롭다. 죽음을 생각할 때 우리는 역설적으로 인생의 가치를 깨닫기도 하니까. 작가가 그려내는 서사도 인상적이고.


인간은 유한한 존재다. 누구나 끝이 있는 우리의 삶. 태어난 순서 있어도 가는 데 순서 없는 게 우리 인생이다. 어찌 보면 허망하고 덧없다. 결국,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테니까. 무엇 하러 애써야 하는지.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어차피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게 인생 아닌가? 그럼 허무한 마음을 안고 되는대로 살아야 할까? 두려움의 마음을 안고 두 손 모아 기도를 시작해야 하는 걸까? 영생과 천국이 답인 걸까?


모두가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삶을 허망하게 탕진하지 않으려는 것은, 어떤 누군가와의 관계로 인한 강력한 행복의 경험이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만들어내고 […] - 조연정, ‘작품해설’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애착과 사랑’의 경험이 삶에 대한 애착을 만들어 낸다. 누군가와 관계의 단절이, 이별이, 죽음이 아프고 슬픈 이유도 나와 사랑으로 관계하기 때문일 테지. 섬 (이슬라)으로 존재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얼마 전, 목욕탕에서 들은 아저씨의 멘트가 읽고 쓰는 내내 귓가에 맴돌았다. ‘소설 쓰고 있네’. 부쩍 그런 생각을 한다. 저마다의 인생만큼 누구나 자기만의 서사, 스토리, 내러티브가 있다면 모두가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은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쌓아가는 것이고 인간은 그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으니까.


고니도 아귀에게 말했지. “시나리오 쓰고 있네, 미친 새끼가.” 시나리오, 스토리텔링. 그게 소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죽음을 낳는 자궁’ 이슬라 덕분에 소설이 당긴다. 소설가가 바라보는 세상이 궁금해진다.


이슬라 (김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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