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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김밥 Nov 22. 2021

<지옥> 리뷰 : 초현실적인, 그러나 지극히 현실적인

[영화 중요내용 있습니다]


어느 날, (천사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천사가 누군가의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 천사는 그가 지옥에 갈 날짜와 시간을 알려준다(=고지). 그리고 그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지옥의 사자들이 나타나 그를 불태워 죽인다(=시연). 이 거짓말 같은 일이 방송으로 생중계되고, 세상이 뒤집어진다.     


'죄인'에게 지옥에 갈 날짜를 '고지'하는 천사(라고 합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의 큰 줄거리이다. 장담컨대, 지옥에 가고 싶어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전무후무한 사건 앞에서,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게 될까? 이를 방송으로 지켜 본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지옥>은 ‘고지’를 받은, 이른바 ‘죄인’들이 ‘시연’을 당하고 가게 될 ‘지옥’에 대해 보여주지 않는다. 이 드라마의 시선은 사후세계가 아니라, 철저히 ‘인간세상’을 향해 있다.     


'시연' 생중계 후, 세상이 뒤집어진다


<지옥>의 시선 : 사후세계가 아니라 인간세계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지켜 본 사람들은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는 왜 지옥에 가게 되었을까?’, ‘신의 의도가 무엇일까?’. 마침, 종교단체 ‘새진리회’가 등장한다. 그리고 ‘신의 의도’에 대해 속 시원한 설명을 내놓는다.


 ‘그는 심각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지옥에 가게 된 것이다. 이것은 죄인을 처벌하는 신의 정의로운 개입이다. 우리는 더 정의로워야 한다.’ 


어찌 보면 누구나 동의할 만한 상식적인, 게다가 올바른 결론. 이 ‘새진리회’는 공권력도, 법도 초월하는 권력집단으로 성장하게 된다. 공권력과 법이 무슨 소용이랴. 그들은 ‘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인데.     


'더 정의로워야 한다'는 신의 뜻을 세상에 알리는 '새진리회'의 정진수 의장.


그리고, 인간세상의 ‘지옥’은 여기서부터 펼쳐진다. ‘신의 의도’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펼쳐내는, 숨 막히는 지옥도가 인간세상에 그려진다.


 ‘고지’를 받은 사람의 신상이 순식간에 유포된다. ‘아이를 학대했을 거야.’, ‘남편을 죽였을거야’ 등등 근거 없는 억측이 난무한다. 그리고 고지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시연을 당해야 한다. 비인간적인가? 괜찮다. 그들은 극악무도한 악인이며, 그들을 처벌하고자 하는 ‘신의 의도’가 명백하므로. 


'신의 의도'를 대리한다며 테러를 저지르는 이른바 '화살촉' 단원들.


한편으로는 ‘신의 의도’를 의심, 부정하는 사람들에 대한 테러가 성행한다. 이것은 죄가 아닐까? 아니다. 이것은 테러가 아니라, 신의 의도를 의심하고 부정하는 ‘무도한 불신자’들을 척결하는, 신의 뜻을 대리하는 정의로운 성전(聖戰)이다. 아, 물론 이런 세상의 장점도 있다. 지옥의 공포 때문에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공포로 유지되는 세상, 이것이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인류역사는 사회규범, 도덕, 법, 민주주의 등의 시스템을 만들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려고 시도해왔고, 많은 것을 이루었으며 지금도 발전하고 있다. 이걸 ‘문명사회’라고 한다.)    

 

맹신이 ‘거룩한 명분’을 만날 때     


<지옥>은 합리성을 잃어버린 맹신이 ‘거룩한 명분’을 만났을 때, 신앙이 인간성을 잃었을 때, 어떠한 ‘지옥’이 펼쳐지는지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어떠한 사건, 재난의 원인으로 ‘신의 의도’를 운운하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또 어리석은지 폭로한다. 그리고 이런 일은, 드라마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현실에서도 보지 않았던가. 제 멋대로 ‘신의 의도’를 갖다 붙이던 수많은 말잔치들을.     


‘동서남아시아 쓰나미 사건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결과’, ‘일본 대지진은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 ‘일제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 ‘세월호 사건은 하나님이 국민들에게 기회를 준 것’ 등등. 그래서 <지옥>은 초현실적이지만, 한편으로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다.      


아이고야.


‘신의 의도’를 말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힘을 갖게 되었을 때, 천국이 될 것 같지만 지옥이 되는 세상. 기독교인으로서, 우리사회에서 추락해가는 한국기독교의 위상을 보며, 한편으로는 ‘다행인 건가’하는 씁쓸한 위로를 건네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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