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영화 중요내용 있습니다>
미국의 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 분)와 랜들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는 거대한 혜성이 6개월 후에 지구와 충돌할 것이라는 엄청난 사실을 발견한다. 이들은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자 정부를 찾아가고, 방송에도 출연하는 등 동분서주한다. 그들의 간절한 바람대로, 인류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각자의 지혜를 모아 이 위기를 무사히 극복할 수 있을까?
김대중 정부는 적극적으로 초고속정보통신망 사업을 추진했다. 그 결과 한국은 인터넷보급률 세계최고수준을 자랑하는 IT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토양 위에서, ‘비주류’ 대통령 후보 노무현은 ‘노사모’를 비롯한 지지자들의 활발한 인터넷 활동을 통해 대선 승리까지 거머쥐게 되었다. 당시 영국의 가디언은 노무현 대통령을 가리켜 ‘세계 최초의 인터넷 대통령’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러한 대사건 속에서, 시민들과 지식인사회는 인터넷에 열광했다.
‘정확한 정보의 신속한 공유가 가능해질 것이다. 유언비어로 인한 쓸데없는 사회적 갈등과 비용이 줄어들 것이며, 여러 쟁점들은 생산적이고 건전한 쌍방향 토론으로 합의점을 찾게 될 것이다’
‘인터넷 대통령’의 등장 이후, 20여년이 지났다. 이제 우리에게 인터넷은 공기만큼이나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각종 유언비어와 검증되지 않은 음모론, 그리고 소모적인 사회적 갈등은 우리사회에서 자취를 감추었을까.
문재인을 꺾고 박근혜가 당선된 2012년 대선 관련, 방송인 김어준씨는 <더 플랜>(2017)이라는 영화를 통해 대선 개표부정 의혹을 제기했다. 선관위는 즉각 반박했고, 18대 대선 투표지 공개 재검표를 제안했으나 <더 플랜>측 답은 없었다. 사과도 없었다. 그리고 이 음모론은, 미래통합당이 참패한 2020년 4월 총선 이후 부활한다. ‘가로세로연구소’에 의해, <더 플랜>이 제기한 의혹과 대동소이한 내용으로.
물론 이 또한 실체가 없었다. 김어준씨는 2020년 <PD수첩>과의 통화에서 “그때(2012 대선)는 합리적인 의혹제기”였으며, “지금(2020 총선)은 조건이 바뀐게 많다”고 주장했다. 바뀐 것이 있기는 하다. 승자와 패자.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의혹이 되기도 했다가, 아닌 것이 되기도 한다.
이 같은 사례는 수없이 많다. 손정민씨 사건 관련해서도 수많은 가짜뉴스가 범람했다. “A씨 휴대전화가 빨간 색이다”, “A씨가 정민 군에게 주사기를 찔러 약물을 주사했다” 등. 대부분 왜곡 또는 조작에 의한 것이었다. 관련 사건을 방영한 <그것이 알고 싶다>에는 어느 시민이 “우리는 유튜브만 믿어! 유튜브가 진실이야!”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근거 없는 의혹제기는 오히려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그들은 정녕 모르는 것일까. 난민, 성소수자, 그리고 이슬람에 대한 가짜뉴스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정보기술이 발달하면 유언비어와 음모론은 설자리를 잃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인터넷을 타고 더 기승을 부리는 현실을 우리는 보고 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다. 자신의 세계관과 다른 데이터, 자신의 선호와 다른 결과,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반하는 선거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어쩌다 우리는 이 용기를 잃은 것일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생산적 논의가 싹틀 수 있다. 두려워하지 마시라. 내 정치적 입장, 신념과 다른 사건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세상이 망하지 않는다.(혜성이 오면 망하긴 한다.) 지구가 돈다고 해서 천주교가 망하지 않듯이. 오히려 이 사회는 더 발전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자신의 정치적 입장의 유불리만을 고려하여 왜곡, 과장된 정보로 지지자들을 선동하는 일부(?) 정치꾼들이 설자리도 없어지게 될 것이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케이트와 민디의 노력으로 인류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 위기를 극복했을까? 결과는 ‘실패’다. 선거만을 신경 쓰는 정치권력과, 이와 결탁한, 눈앞의 이윤만을 바라보는 자본의 탐욕, 그리고 맹목적 지지자들 때문에.
마지막으로, ‘혜성이 지구와 충돌한다’는 ‘건조한 사실’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한 민디 박사의 절규를 들어보자.
“(혜성을) 망원경을 이용해서 우리 눈으로 봤어요. 아니, 사진까지 찍었네!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해? (중략) 우리끼리 그런 최소한의 합의도 못하고 앉았으면! 대체 정신머리가 어떻게 된 거에요? 아니, 서로 대화가 되기는 해요? 어디가 망가진 거에요?
(중략) 저처럼 의문을 제기하는 과학자들을 해고하고 있어요. 분명 시청자 중에 많은 분이 지금 이 말도 안 들을 거에요. 본인들만의 정치 이념이 있으니까.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어느 쪽의 편이 아니라 그냥 진실을 말하는 것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