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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김밥 Sep 26. 2021

<오징어 게임> 리뷰 : 정치의 본령

그 야당대표의 생각이 궁금하다

이 게임 안에선 모두가 평등해. 참가자들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공평하게 경쟁하지.
바깥세상에서 불평등과 차별에 시달려 온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거야  


 

<오징어게임>을 진행하는 '프론트맨'

  


화제의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게임을 진두지휘하는 ‘프론트맨’의 대사입니다. 여러분은 저 말이 어떻게 들리시나요? 말 그대로 ‘차별에 시달려 온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주최 측의 인심 좋은 배려로 들리시나요? 아니면 게임탈락을 이유로 생명을 빼앗는 사악한 행위에 대한 ‘그럴싸한’ 사후적 변명으로 들리시나요?     


지금 한국사회의 큰 화두로 떠오른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능력주의’입니다. ‘프론트맨’의 저 대사를 들으며, 지금 우리사회의 ‘능력주의’라는 구호가 떠올랐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오징어게임>과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능력주의'


<오징어게임> 속 참가자는 게임에서 탈락시 곧바로 사망하게 됩니다. 승자는 456억원을 손에 쥡니다. ‘승자독식과 약자도태’의 극한입니다.


우리사회와 비슷합니다. 시험점수 몇 점차이로 희비가 엇갈립니다. 1점차든 10점차든, 합격한 사람은 ‘승자’가 되어, ‘그들만의 성채’에 들어가 ‘차별적인’ 보상을 누립니다. 1점차든, 10점차든, 탈락하면 ‘비정규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평생 차별을 받으며 추운 성 밖에서 살아야 합니다.(그들이 차별받으며 오랫동안 열심히 일했다고 해서 정규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아니,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무임승차’니까요.)


시험 한 번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세상, 이것은 과연 공정하고 평등합니까? 패배한 사람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노력 혹은 능력의 부족), 그렇게 차별 받으며 살아도 되는 것일까요? ‘시험을 위한 준비’만 ‘노력’으로 인정받는 세상, 이것이 정의로운 세상일까요.     


<오징어게임>은 전형적인 '승자독식'게임입니다. 패자는 도태됩니다.


<오징어게임> 속의 게임은 과연 공정할까요? 참가자 중에는 할아버지도 있고, 젊은 여성도 있습니다. 밖에서 힘깨나 쓰던 성인 남성도 있습니다. 이들을 두고 ‘줄다리기’로 경쟁시키는 것, 이것은 과연 공정할까요, 평등할까요?


게임종목으로 ‘공기놀이’가 있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릴 적에 공기놀이를 많이 했던, ‘고령의 여성’일수록 유리할 것입니다. 이게 공정할까요? 그리고 다시 묻습니다. ‘시험’은 공정합니까? 아니, ‘공정한 시험’이란 것이 존재하긴 합니까?     


'공정한 게임'은 존재할까요?


어떤 부모를 두었느냐에 따라,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이 두 가지는 본인이 선택할 수 없습니다) 누구는 ‘온전히 노력’할 수 있는 환경을 누리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가난한 부모를 두고, 지역인프라가 낙후된 곳에서 자라온 사람에게,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외치는 ‘공정한 시험’이라는 구호는 어찌 보면 폭력으로 들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능력주의는, 강자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내세우는 ‘허울 좋은 포장지’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요?     


어느 보수야당의 대표는 ‘자기 자신’의 중학교(서울 목동 소재) 시절을 근거로, 친구들과 “오직 공부로 서열이 매겨지는”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을 했다며, ‘공정 경쟁’이라는 구호를 전면에 내걸었습니다. ‘정치인 자격시험’까지 도입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프론트맨의 대사와 묘하게 비슷하지 않나요?     


고소득 가구의 자녀일수록 양질의 사교육을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게 공정한 경쟁일까요?


정치란 무엇일까요? 정치는 그 사회의 ‘게임의 룰’을 정하는 가장 권위 있는 제도입니다. 그리고 그 게임이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하도록 관리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입니다. ‘줄세우기’가 아니라, 정치는 다른 고민을 해야 합니다.


정치의 본령


어떻게 하면 승자의 자리 자체를 더 많이 늘릴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패자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것인지, 승자-패자 보상의 격차를 얼마나 허용할 것인지, 사람들이 경쟁을 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인간성을 잃지 않고 경쟁자도 돌아보게 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궁금해졌습니다. 그 야당대표님은 프론트맨의 그 대사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무릎을 탁치며, ‘그래. 잔인하지만 세상은 저렇게 돌아가는 거야’라고 생각하셨을까요? 그렇다면 그 세상은 끔찍할 겁니다. <오징어게임> 속의 현장처럼.


※ PS : 그 끔찍한 세상은, 이미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래 기사처럼 말입니다.(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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