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정의당을 아낄 수 밖에 없다
정치란 무엇일까. 수천 수만개의 정의가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꽤나 수준 높은 언어의 정의도 있는데, 쉽게 다가오지는 않는다.(이게 뭔말이여?)
쉽게 표현해보자면 정치란, ‘모두가 사람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도구’가 아닐까? 그래서 진보든 보수든, 좌파든 우파든, 그 ‘행복한 세상’을 위해 정책을 내놓고 경쟁하고 토론하고, 법을 만들고 또 고치는 것이고. 그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표를 달라고 외치는 것이고.
정치에 대한 마키아벨리즘적인 정의도 있다. 정치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며, 여기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치열했던 20대 대통령 선거가 윤석열 후보의 신승으로 막을 내린 다음날, 청와대 대변인이 문재인 대통령과 윤 당선인과의 전화통화 브리핑 중 눈물을 쏟아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청와대가 생각하는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청와대가 생각하는 정치란 무엇일까? 청와대 대변인의 저 눈물은 무슨 의미일까?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데, 윤 후보의 승리로 그 일이 이루어질 수 없어서 아쉬움에 흘린 눈물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엄청난 독선인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 이유 때문에 나온 눈물이라면, 매일 울어야 할테니까.
하루가 멀다하고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떨어져 죽고, 부딪쳐 죽고, 깔려 죽는다. 故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이 정권 하에서 투사가 되었다. 야심차게 추진되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기업’이 빠져버린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란 이름을 달고 애매해져 버렸다. 50인 미만 기업에서 더 많은 사고가 발생하지만, 50인 미만 기업에 대한 적용은 2024년 1월까지 유예되었다. 왜 청와대는 이에 대해선 울지 않는가?
2007년 처음 세상에 나온 ‘차별금지법’은 ‘아직도’ 잠자고 있다. 그 사이, 사회적 약자들은 사회에서 꾸준히 배제되고 소외되었다. 존재조차 부정당하고 있다. 이런 큰 고통 속에 극단적인 선택을 ‘지금도’ 고민하고 있는지 모른다. 故 변희수 하사처럼 말이다. 왜 청와대는 이에 대해선 울지 않는가?
울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삶이 송두리째 망가져버린, 디지털 성범죄 피해 여성들,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수많은 자영업자들,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절망인 청년들, 빈곤에 허덕이는 노인들, 미래가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청와대 대변인은 “낙선하신 분과 그 지지자들께”라고 말하다가 감정에 북받쳐 울었다고 한다. 이 사람들에게 정치란 무엇일까? 마키아벨리즘의 그 정치 아닌가? ‘정치란 권력을 잡기 위한 투쟁이다’.
이와 대조되는 눈물이 하나 있다. 심상정 후보의 눈물이었다. 심상정 당시 후보는 지난달 23일 장애인 이동권 예산 확보 시위 현장을 방문,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며 눈물지었다.(관련영상)
"그런 요구(장애인 이동권)를 하는데 이렇게 목숨을 걸어야 되고 (중략) 우리 민주주의는 아직 멀었다는 것 (중략) (그래서) 왜 정의당이 힘을 가져야 하나 그것을 우리 국민들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왜 힘(=권력)이 필요한지, 왜 표가 필요한지 너무나 공감이 되는 대목이다. 공감할 수 밖에 없는 눈물이다.
20대 대선 결과, 2.37%의 초라한 득표율로 선거를 마치게 되었으나, 그래도 정의당과 심상정을 아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너무 고생하셨다. 다음에는 더 좋은 결과를 내시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