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유로든, 사회가 위기에 빠진다. 사람들의 불만과 스트레스는 높아지고, 민심은 요동친다. 이에 정부 당국은 이 불만을 관리해야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리고 사람들의 스트레스 분출의 해방구, 즉 '혐오대상'을 만들어낸다. 이들은 주로 민족, 인종의 갈등을 부추겼다.
1923년 일본 관동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대지진 직후, 조선인들이 방화를 하고 우물에 독약을 풀었다는 유언비어가 퍼지고, 일본인들은 자경단을 조직, 조선인을 마구잡이로 살해한다. 일제 당국은 이를 방관했다. 이때 죽은 조선인이 6천명 이상. '관동 조선인 대학살'이었다. 사람들의 분노에 맞닥뜨린 일제 당국은 '선한 일본인과 불량한 조선인' 구도아래, 사람들을 선동한 것이다.(관련사진을 게시하려 했으나 너무 끔찍하여 싣지 않습니다. 구글에서 '관동 조선인 대학살'을 검색해보세요)
1차 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은 굴욕적인 '베르사유 조약'을 맺었다. 그리고 이어서 인플레이션과 대량실업이 엄습하자 이 원인을 유대인들, 슬라브족, 동성애자들 등의 탓으로 돌리는 정치세력이 등장했다. 히틀러와 나치였다. 그들은 사람들 사이에 벽을 세웠고, 그 혐오를 기반으로 집권했으며, 세계를 다시 한 번 전쟁의 불구덩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블랙 팬서>에서도 유사한 인물이 등장한다. 킬몽거다. 킬몽거 또한 인종 사이에 벽을 놓으려 한다. 전 세계의 흑인들을 와칸다의 최첨단 비브라늄 무기로 무장시키려는 계획을 세운다. (물론 킬몽거의 혐오는, 기득권(백인)세력의 혐오에 대항하여 형성된, 강자에 대한 약자의 '저항적 혐오'라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티찰라는 목숨을 걸고 킬몽거와 싸워 그의 계획을 막는다. 그리고 국제사회에 다음과 같이 밝힌다.
위기의 시대에 현명한 자는 다리를 만들고 어리석은 자는 벽을 세웁니다.
그렇게 티찰라의 와칸다는 스스로 다리가 되어 와칸다 밖 세상의 모든 흑인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민다. 벽이 아니라 다리를, 혐오가 아니라 연대를 선택한다. 이것이 <블랙 팬서>의 핵심 메시지이다.
그런데 이것, 너무 도덕적이고 감상적인 결론이 아닐까? 사회적 약자들을 대우해 성공한 사례가 실재하는가? 사람들에게 당장에 즉각적이고 분명한 메시지를 줄 수 있는 것은 장기적 비전이기보다는 혐오다. 이 심리를 정면으로 극복하려는 정치세력이 실재하는가? 물론 실재한다.
미국은 과감한 개방성의 토대 아래 국가를 강력하게 만들 수 있었다. 에이미 추아는 그의 저서 <제국의 미래>에서 미국의 부흥 동력을 이렇게 서술한다.
'관용은 여러 측면에서 미국이 초강국으로서의 지위를 갖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20년 이전의 개방적인 이민정책 덕분에 미국은 인력 면에서의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중략) 더욱 결정적이었던 것은 이민자들이 이루었던 혁명적인 기술적 약진이었다. (중략) 1930년대의 유럽은 나치의 불관용 정책 때문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과학 인재들을 잃어버렸다. (중략) 이들 과학자들 가운데 마이트너와 보어를 제외하고는 모두 미국으로 이주했다'
2011년 7월, 노르웨이의 우토야섬에서는 사망자만 70명이 넘는 끔찍한 테러사건이 발생했다. 노르웨이 총리는 테러발생 며칠 후, 추모연설을 통해 "(테러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개방성, 더 많은 인간애"라고 밝혔다.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와 적대는 없었다.(테러범 브레이비크는 다문화주의 정책에 대한 반감으로 테러를 저질렀다) 분열의 위기국면에서, 노르웨이는 벽이 아니라 다리를 선택했다. 그 노르웨이가 지금 망했는가.
우리가 혐오가 아니라 연대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어서만이 아니다. 그것이 실질적으로도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혐오와 배제의 사회였다면, 알제리 이민자 출신의 지단이 프랑스 축구대표팀이 되어 팀을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 수 있었을까? 미국 국민들이 공감과 연설의 귀재 오바마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을까?
역사적 사실이 이러할진대, 현재 세계는 꾸준하게 혐오를 내뱉고 있다. 특히, '이민자의 나라' 미국이 이 분위기의 선두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각종 차별과 혐오의 언어로 이민자들에게 정치사회적 벽을 놓고, 급기야는 멕시코와의 국경선에 물리적 벽까지 세우고 있다.
'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이라는 슬로건으로 당선이 되었지만, 이런 인식으로 위대한 미국의 재현은 요원하다. 오히려 다양성을 확대하고 수많은 인종을 포용하는 것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지름길일 것이다.
그리하여, 한 평론가가 짧게 남긴, <블랙 팬서>에 대한 평가를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친다.
트럼프, 보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