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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 Jan 02. 2016

나쁜 딸

그래도, 엄마처럼만 살고 싶어

매번 마무리를 짓지 못하는 글이 있다. 마음 먹고 글을 써내자하면, 꼭 항상 중간 어디 쯤에서 멈춰서 글을 닫는다. 순간 받쳐 오르는 감정을 해결하지 못해서도 있고,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아 정리되지 않아서도 있다. 무엇보다도, 편협하고 알량한 글솜씨로 감히 엄마에 대해 풀어 놓는 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마무리 짓고자 다시 한 번 다짐한 것은, 내가 이곳에 몇 가지 글을 쓴다는 것을 엄마께서 아셨기 때문이다. 애교 없는 딸의 부끄러운 고백을 하려고.







기말고사가 끝나고도 한 참이 지난 후에야 본가에 내려왔다. 기말고사 직후 주말, 알바가 생겨 화요일이나 되야 기차길에 올랐다. 그러면서도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남자친구와 보낼 생각에 들 떠 목요일 오후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남자친구와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어하는 딸의 마음을 이해하신 듯 남자친구의 선물을 이것저것 챙기셨다. 그래도 느끼고 있었다. 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아쉬움을. 그 아쉬움 앞에서 나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내내 자기만 했던 것이 죄송했다.



엄마는 나와 함께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함께 가고 싶은 카페, 식당, 함께 보고 싶은 영화, 그리고 내게 사주고 싶은 옷. 학교로 돌아가는 길, 딸과의 데이트를 기대하는 엄마를 등 뒤로, 무거운 발걸음을 떼면서도 나는 결코 뒤돌아보지 않았다. 기차역으로 향하는 길,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목요일 저녁에 내려오실 예정이었는데, 직장에 일이 생겨 크리스마스 오후나 되야 도착하신다는 것이다. 목요일 저녁 동생이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면, 엄마는 아버지가 오실 때 까지 혼자 보내셔야 했다.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당장 차를 돌려 집으로 갈까. 어차피 나도 크리스마스 저녁이나 되나 보는 것, 다음날 점심 때 올라갈까 했다. 다시 아버지께 전화했다. "신경쓰지 말고 올라가. 아빠가 알아서 할게." 그래도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을 엄마 홀로 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신경쓰지 마라'하는 아버지의 말 한마디에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나는 독한 딸이고, 이기적인 딸이다.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는, 본가에 내려오면 학교로 돌아가기 싫어 몸이 베베 꼬였다. 그러나 조금 더 머리가 크고, 서울에 적응하고, 취업문 앞에 초조해 지면서 집에 내려가지 않으려는 변명을 고민했다.

'조금만 더 나에게 집중한 후에 잘 해야지'. 남들 똑같이 후회하는 수순을 나도 따르고 있었다. 이기적인 자식과 자식을 이길 수 없는 부모. 이 말의 대가가 얼마나 잔혹한지 모르는 철 없는 딸이다. 이 말이 주는 당장의 당연함이 잘못된 줄 알면서도 마음을 바꾸려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나의 1호 팬이었으며, 가장 큰 후원자였다.






엄마의 자부심이 되기 싫어



드라마 <미생> 에서 나온 대사가 있다. '잊지 말자. 나는 엄마의 자부심이다.'

모두가 이 말에 감동할 때, 나는 이 말이 죽도록 싫었다. 엄마의 자랑거리가 되기 위해 나를 엄마의 기준에 맞추기 싫었다. 내가 하는, 이루고 싶은 그 모든 것들이 내가 아닌 엄마를 위해 한다는 그런 느낌이 싫었다. 그렇게 나는 이기적이었다. 그래서, 저 한 마디의 무게가 나를 숨 막히도록 짓눌렀다. 그러나 사실 부모님은 내게 단 한 번도 내가 해야 하는 어떤 것을 강요하신 적이 없었다. 심지어 공부 마저도.



엄마와 장을 보면서 동네 이웃분들을 만나게 되면, 먼저 건네오는 자식 칭찬에 되받아 치는 자식 자랑이 있다. 그 대상인 내가 멀쩡히 옆에 서 있는데도 그 칭찬과 자랑이 오간다. 나는, 그 자랑이 너무도 싫었다. 수 없이 꺼내어 놓는 자랑 뒤에 내게 '다음 자랑거리를 만들어 놓아야지?'하는 소리 없는 부담감이 피부 위로 느껴졌다.



본가와 떨어져서 대학생활을 하는 나는, 가면 갈 수록 커지는 '집 내려가기' 고민에 빠져있다. 딱히 하는 것이 없어도 학교 앞에 있어야 마음이 편하고, 집에 내려가서 엄마와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에 조금씩 지쳐갔다. 엄마는 '정 바쁘면, 엄마가 올라갈게'하지만 엄마가 올라오셔도 딱히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겠어서 '아냐, 내가 내려갈게'한다. 이렇게 내가 못난 딸이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의 자부심이다. 속으로 이렇게 못난 고민을 하는 지도 모르시면서.



나는 '대외적으로' 제 앞가림 잘 하는 좋은 딸이었으나, 사실은 정말 못난 딸이다. 어쩌면 나는 자나 깨나 내 생각뿐인 엄마의 사랑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다시 되돌려 드려야한다는 그 무게와 책임을 외면하고 싶었을지도. 나 혼자, 괜히 효(孝)의 의무감에 짓눌려 반항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엄마의 자랑이자 엄마, 자신 자체였다.
나는 엄마의 청춘까지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의 자랑이자, 엄마 자신 자체였다. 과 대표가 되고, 차석이 됐을 때 엄마는 친구들 사이에서 제일 잘난 딸을 가진 부러움이 대상이 됐다. 연애를 시작했을 때, 세월에 감춰있던 소녀가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해외 인턴을 가게 됐을 때, 나는  엄마의 청춘까지 살고 있었다. 그렇게 엄마는, 내게 엄마의 청춘을 담으셨다. 나를 보며 내 나이 때의 엄마 자신을 회상했고, 엄마의 모습을 한 나를 응원하셨다. 나는 엄마의 자부심이 아닌, 엄마 그 자체였다.




엄마의 응원 앞에 나는 항상 죄송했다. 첫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두 번째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내가 또 한 번 무너져 내릴까 3년 내내 마음을 졸이셨다. 대학에 입학하고 비로소 날개를 폈을 때, 엄마가 그제야 걱정을 놓으셨다. '네가 이렇게 좋으려고 그렇게 힘들었나보다.' 조금 더 일찍 '잘 하고'있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한 것에 항상 미안했다. 더군다나 '다 큰 딸'이라며 어설프게 가족 품을 떠나려는 잔망스러움에 더욱 고개가 숙여졌다. 제대로 된 독립을 하지도 못하면서, 여전히 부모님 도움 아래 살고 있으면서 어른인 척 부모 곁을 떠나려는 어리석음이 부끄러웠다.



스물 다섯, '다 큰 딸'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아직도 습관처럼 엄마를 찾는다. 남자친구에게 전화하는 만큼 엄마에게 전화한다. 전화해서 항상 조잘대고, 대학에서 있었던 일, 고민하는 것들을 쭉 떠들어댄다. 나는 집을 떠나 살면서도, 엄마 품을 벗어나지 못하는 딸이었다. 두 번쯤 인턴에 떨어지고, 엄마를 찾았다. 한참을 '힘들다'를 남발하며 투정을 부릴 때 엄마가 말하셨다.'내 딸은 날 닮아서 잘 하고 있어. 엄만 걱정 안해.'하고. 이 또한 나 혼자 만들어낸 의무감이 아니었을까. 엄마의 청춘까지 살아내고 있다는 책임감을 만들어, 더 잘 살아 보이고 싶은 욕심에 정말 지켜야 할 지금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전히 마음 속에선 끊임없이 두 마음이 충돌한다. 나에게 좀 더 집중하고 싶은 이기심과 그래도 엄마, 부모님, 가족과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도리 사이에서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다.



엄마, 딱 엄마처럼만 살고 싶어.



'사춘기'라는 허울 좋은 변명으로 엄마 속을 썩일 때,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자식에게, 가정에 한 없이 양보하고 자식들에게 한 없이 맞춰주는 엄마의 모습이 싫었다. 그걸 보고 나는 엄마가 '약하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그것이 엄마이기 때문에 감당할 수 있는 가장 강함이라는 것을 몰랐다.



나는 그렇게 나쁜 딸임에도 불구하고, 딱 엄마처럼만 살고 싶다. 자식들에게 한 없이 약해질 수 있는 강함이 있고, 가정을 위해 얼마든 희생하고 양보할 수 있는 사랑이 있는 엄마처럼만 딱 살고 싶다. 동생의 수능이 끝난 지금, 엄마는 긴장한 마음을 풀 새 없이 또 나의 취업을 함께 고민할 것이다. 취업 앞에서 몇 번이고 무너져 내리는 딸을 보며 속으로 울음을 삼키실 것이다. 그 때도, 엄마는 절대 힘들다 말하지 않으실 것이다. 절대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시지 않을 것이다. 엄마는 엄마이므로. 여전히 엄마의 자부심이 되기 싫어도 엄마가 내 롤모델이었고, 엄마의 자식자랑이 부담스러워도,



나는 엄마처럼만 살고 싶다.



애써 닮지 않으려 노력해도 어느새 나는 엄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자랑스럽고 좋다.

엄마와 함께 순정만화를 읽으며 남자 주인공에 열광하고, 함께 드라마를 보며 웃고 떠든다.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며 눈물 쏙 빠지게 울고 나선 누가 더 많이 울었는지 서로 놀린다. 비가오면 엄마는 차 안에 앉아 이문세 노래를 듣고 싶어하고, 분위기 좋은 가을 날이면 좋은 카페에 가 가을을 느끼고 싶어 한다. 아직도 엄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외할머니와 통화하며 수다를 떠시고, 할머니를 모시고 종종 나들이를 다녀오신다.




새삼스럽게, 전화기를 붙들고 몇 십 분 째 할머니와 통화 중인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다. 30년이 지나도, 나도 엄마처럼 저렇게 엄마와 수다 떨 수 있을까. 엄마의 옆집 아줌마를 함께 욕해주고, 두부집 아줌마 자식 칭찬을 할 수 있을까. 아니, 30년이 지나면 나는 정말 엄마의 딸, 그 이상으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엄마를 닮은 딸이 될 수 있을까.







이 글을 볼 엄마에게.


엄마를 닮지 않으려 애썼는데, 이제는 엄마를 닮으려 더 애를 쓰고 있어. 엄마를 닮은 딸이 될 수 있을까, 엄마 같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하면서 나를 더 다듬고 있어. 그렇게, 나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닮아가려해. 엄마가 내게, 우리 가족에게 보여준 사랑을 닮아가려고.


엄마 사랑해.


겨우 몇 글자로 내 마음이 다 담길 수 있을 지 모르겠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는 말 만큼 충분한 말도 없는 것 같아. 엄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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