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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휴식

그와 나는 시간을 갖기로 결심했다

by JEHEE

그 누구보다 격정적이고, 애틋했던 2.9년간의 연애였다. 그리고 3년을 맞이하는 기념일이 다가올 무렵, 그와 나는 시간을 갖기로 결정했다.



"내게, 시간을 좀 주었으면 좋겠어. 얼마나 걸릴진 모르겠어. 그런데, 지금 내게 절실히 필요해."


최근 몇 일간 수 많은 대화가 오갔다. 끊임없이 눈물을 쏟아냈고, 눈물 위에 그 동안 쌓인 서러움을 얹었다.

내 속에 고여 있던 무거운 서러움과 서운함을 다 쏟아냈다고 생각했을 때, 그리고 그와 나의 관계를 더욱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내가 변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 알았어."


너무도 쉽게 허락했다.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한 것인지, 이미 나와의 관계에 더이상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오히려 너무도 가벼운 허락에 내가 더 불안해졌었다.


"계속 날 사랑해줘."


얼마 간의 침묵 끝에 그가 던진 한 마디였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작년 여름 셀프 촬영. 날 찍어 주기만 했던 그는, 정작 카메라 앞에서는 자연스럽지 못했다.



연애는 나더러 철 좀 들으라고 말했다



3년. 그와 함께한 시간이었다. 그는 취업을 했고, 이젠 그의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1년간의 휴학을 마무리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시간이 지났고 나도, 그도 변했다. 그와 내가 마주하고 있는 각자의 상황도.


많은 것이 변했음에도 변하지 않은 것은 오로지 나 뿐이었다. 그가 변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정말 나는, 지독하게도 변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지난 과거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와 내가 마주하고 있는 상황이 달라지면서 우리의 관계 바탕에 깔린 어떤 '태도'들도 함께 변화해야 하는 것이 마땅했다. 이를테면 그가 일 하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 그래서 데이트의 횟수가 적어지고 데이트의 내용이 변한 것, 그리고 그가 사업을 시작하면서 더 바빠진 그를 이해하고 기다리는 것들.




가까워 지면 가까워 질 수록, 나는 그를 온전히 보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시간이 가져온 변화를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취업을 앞두고 계속해서 엄습해 오는 불안감에 끊임없이 그가 내 곁에 있어주길 바랬고, 주변 친구들이 데이트 할 때 나도 데이트하길 바랬다. 그가 내게 이전처럼 신경써주지 못하는 것, 애정표현을 더 해주지 않는 것, 그가 바빠지면서 내게 할애하는 시간이 적어진 것들에 나는 계속 서운해 했었다. 언제까지나 캠퍼스커플처럼 연애할 수 없는 것인데, 나는 항상 그렇게 그와 내가 연애하길 바랬다. 그와의 연애는 나더러 철 좀 들으라고 말했다. 나는 그 조용한 외침을 계속 듣지 못했다. 아니, 듣고 싶지 않았다. 성숙해지는 것이 마치 사랑이 식는 것과 같다고 잘못 생각했었다.


지난 3년 동안 우린 더 깊어졌고, 서로에게 더 가까워졌다. 서로가 스스로 깨닫지 못한 습관을 꿰차고 있고, 그의 성격부터 식습관, 그가 가장 견디지 못하는 상황과 취향, 모든것을 서로 공유하고 있었다. 그렇게 3년을 연애했음에도 이 연애가 위태로워 진 것은 가까워진 것, 이게 문제였다. 한 걸음씩 가까워지다 보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이던 그가 어느 순간엔 다리가 보이지 않았고, 조금 더 지나니 그의 얼굴만 보였다. 그의 얼굴만 보게 된 것이. 그의 얼굴만 보고 지내 오니, 그가 원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어떤 생각을 담고 사는 사람인지, 어떤 목표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인지. 내게 보여준 사랑, 배려, 노력이 내가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모습을 가렸다.




우리의 데이트 장소는 주로 카페였다. 나란히 앉아 서로 할 일을 하는 것. 때로는 기대어 있고, 때로는 마주보고 수다를 떠는 것. 그것만큼 편안한 시간이 없었다.



'독립적이고 멋진 여자' 그것은 꿈에 불과했다



말 버릇처럼 '독립적인 여성'이 되겠다 다짐해왔다. 내 두 발로 서있는,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나약하지 않은 여성. 엄마를 보며 그런 여성을 꿈꿔왔고, 그래서 나는 더 매사에 집중하고 열심이었다. '힘들다'소리를 헛되이 내뱉지 않았고, 부모님이나 다른 가족, 친구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이지 않고 싶었다. 힘든 일 또한 스스로 감당해 내는 것, 책임감 있는 모습이 내가 그린 '멋진' 내 모습이었다. 내 인생의 중심은 나 자신이었고, 나를 해치는 것-정신적인 것 혹은 육체적인 것-은 가장 먼저 멀리하겠다 '철칙'까지 세워두며 살았다. 심지어는 내 진로 결정과 목표에 있어 도움은 주지 못할 망정 못하게 가로 막는 남자는 좋아하더라도 헤어지겠다 생각할 정도였다.


습관처럼 카톡을 보내려다 만 것이 여러 번. 하루 종일 생각이 났다. 혹시 나에게 먼저 연락을 주지 않을까, 혹시 학원이나 집 앞으로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마저 하고 있었다. 그런내 자신을 보면서, 이래서 힘들었던 것일까 싶었다. 겨우 하루 지났을 뿐이었는데 수십 번 사진을 보고 카톡을 보고, 요 며칠 사이에 오갔던 대화를, 통화를 곱씹었다. 내가 지금 이 선택을 한 것이 옳았던 걸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독립적이고 멋진 여자가 되겠다고 끊임없이 나 자신에 주문을 걸고 세뇌시켜왔으면서, 사실은 그 모든 것이 꿈에 불과했었다. 그를 잠시 떨어뜨려 놓고 보니, 나는 그의 연락 없이는 하루가 불안했다. 오로지 남자친구 생각으로 가득채워졌고, 대체 내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의존적이었나 싶었다.


며칠을 내내 그의 생각을 놓지 못하고 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항상 버릇처럼 함께 걷자고 했지만, 사실은 난 그의 등에 엎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혼자 어른스럽고 성숙한 척을 했지만 사실은 25살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철이 없고 이기적이었다. 그래서 지금 그와 잠시 떨어져 있는 이 시간이 정말 중요했다. 나 스스로를 조금 더 성숙하게, 그리고 어른스럽게 성장하기 위해. 그리고 정말로, 독립적인 여자가 되기 위해.


다행히도 며칠이 지나자 '연락 없음'에 대한 불안감이 사그라들었다. 어느 순간엔 더이상 그를 생각하지 않았고, 오로지 내 자신에 대한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와 함께하느라 잊고 있었던 나 자신에 대한 고민-취업이라던가, 취업, 혹은 취업-들로 다시 머리가 채워졌다. 조금더 나를 발전시킬 어떤 것들, 남은 방학동안 공부해야할 것들, 그리고 읽어야 할 책들. 열흘 쯤 지난 아침, 일찍부터 노트북과 노트 몇 권을 들고 카페로 갔다. 배가 고플 때 쯤 주변에 유명하다던 맛집에 갔다. 항상 앞에 마주 보고 있던 사람이 없으니 허전했지만, 의외로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 일종의 해방감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식사하며 창문 너머로 보인 카페가 분위기가 좋아보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대학 선배를 조우했다.



Seeing someone



서로의 안부를 묻다, '연애는 잘 되가니?'하고 묻는 말에 조용히 웃기만 했다. 선배는 그 뜻을 '헤어졌다'고 이해했는지, '사람이 만나면 헤어질 때도 있는 법'이라고 답했다. 그게 아닌데.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시간을 좀 갖기로 한 것 뿐'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하나 둘, 꺼내놓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어리다는 것, 그래서 자꾸 내 자신이 힘들어진다는 것. 선배는 조용히 듣기만 했다. 내 이야기가 끝나고 한참이 지나도 언니는 말이 없었다.


"연애한다고 너 자신도 잃어버리면 안돼."


한참이 지나 입을 뗀 선배의 첫 마디였다. 연애를 시작하면서 일상의 중심이 연애로 옮겨지는 것. 그것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라이프 스타일이 원래 그런 줄 알고 잊고 지내다 헤어지고 나서야 깨닫는다고 했다. 헤어지고 나니 텅 비어버린 시간들. 몇 걸음 멀어져 어색해진 친구들. 남아도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겠고, 내가 무엇을 고민하던 사람이었는지 조차 잊는다. 오히려 헤어지고 나니 남는 것은 방황이었다. 연애를 시작하면 점점 본인의 삶보다 연애가 중요해지게 되는 대부분 쪽은 여자라고 말했다. 최악의 경우에는, 남자친구가 일하는 순간에도 '바람피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 것이라며. 내게 '잘했다'고 칭찬했다.


"시간이 지나고 연애가 깊어질 수록, 너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더욱 더 의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영어로 만나는 사람 있냐고 물어볼 때, 'Are you seeing someone?'이라고 물어봐. 왜 seeing 이라고 할까. 궁금했었어. 그런데 사람이 누구를 제대로 보고 인식하려면,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하잖아. 이 때문인 것 같아. 연애를 하더라도 서로 삶의 영역을 지켜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니까. 그 거리가 가까워지면 가까워 질 수록, 한쪽으로 기울게돼. 후에 이별을 하게 됐을 땐, 기울어진 만큼 후폭풍도 큰 법이지. 잘 했다. 여유롭게 시간 갖고, 네 삶의 영역을 다시 찾아봐. 남자친구도 침범할 수 없는 순수한 영역을."



그래서 였을까. 언제부턴가 그의 전신을 다 보지 못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서로가 서로의 순수한 삶의 영역에 맞닿아 침범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 대로, 나는 나 대로 자신이 온전한 자신일 수 있는 영역이 어느 순간 사라져 있었다. 3년 동안 감정이 더욱 깊어지고, 신뢰가 더욱 두터워 짐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연애가 힘들었던 것은 서로의 영역이 침범 받고 있다는 빨간신호였다.



다음날, 남자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지금 학교로 가고 있는데, 만나줄래?"

"응. 언제든지."




긴 생각여행 끝에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왔다. 종착지는 정해져 있었다. 그를 다시 만났을 때 "나 왔어"하고 인사했다.





어쩌면 열흘이 조금 넘는 이 시간동안 내가 느껴야 했던 것은, 나보다 더 어른인 남자친구에 맞춰 성숙하지 못한 나를 자책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연애가 과연 성숙한 연애인 것인가에 대한 거창한 고민의 답도 아니었다. 오랜 연애로 서로가 고유의 색을 바래고 있는 것을 깨닫는 것이었다.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순수한 영역이 있는 것, 그리고 그 영역이 온전히 보존될 때 더 깊고 오랜 관계가 지속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했다. 그것이 연애의 적정거리였다.


그렇게 남자친구를 다시 만난 이후, 나는 죽을 때가 다가온 것 처럼 '관대'해 졌다. '지금 미팅중이야'하는 문자 하나에 몇 시간이고 널널히 기다릴 줄 알았다. 먼저 연락하기 전 까진 '바쁘겠거니'하고 따로 연락을 하지도 않았다. 이런 내 모습에 그는 '좀 이상하다'고 했으나, 쿨하게 웃어 넘겼다. 어느덧 데이트를 못 한지 2주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아무 투정도 없는 내 모습에 그는 제 발이 저린지 종종 '미안하다'고 이야기한다.



2주 동안 데이트를 못했다. 그래도 나는 잘 '즐기고' 있다. 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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