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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 Mar 07. 2016

당신과 나는 친구가 아니었다

X자식. 나쁜놈.


살다 보면, 별로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들이 있다. 이를테면, 나 자신의 한계라던가 드러나지 않았던 나의 나태함과 나약함,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허무함 같은 것들.





최근에 그런 몇 가지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느끼고 있다. 몇 번의 마음 고생과 애씀 끝에 익숙해진 것들도 있다. 익숙해진 것이 씁쓸하지만. 반면,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도 있다. 그 중 하나가 인간관계에서 오는 허무함이다. '당신과 나는 친구가 아니었다'는 발견 혹은 깨달음에서 오는 허무함과 일종의 배신감. 이것은 친구를 사귀기 시작하는 때 부터 수 많은 인연을 겪어가면서 종종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담담해지기는 커녕 매번 처음 겪는 일 처럼 가슴이 아프다.







꽃이 졌다 생각했지만, 핀 적 조차 없었다



개강하고 익숙한 얼굴들이 많이 보였다. 전역한 동기들, 휴학 끝에 복학한 선배들. 그들의 공백이 길었던 만큼 반가웠다. 그간의 생활을 이야기하며 안부를 묻던 중 다른 한 선배의 복학소식을 들었다.


"그 선배 복학 했어? 어머, 난 몰랐네"

"응. 내일 나 밥 사주기로 했는데?"


웃으며 "그렇구나"하고 돌아섰다. 그래도 섭섭하고, 서운한건 어쩔 수가 없다. 친하다고 생각했었다. 밥을 사주기로 했다는 저 친구보다는 더 친하다 생각했다. 단순히 '왜 난 밥 안사줘?' 하는 문제거 아니다. 그 선배 아니어도 나 밥 사줄 사람은 많다. 어떤 이유든 있을 터였다. 그래, 고시 준비하는 사람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이게 별 일인가.



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별 일이었다.


그 사람한테 나는 별로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던 거였다. 어떤 이유로든 이해해보려 해 봐도  안 됐다. 그럼 거기서 그냥 끝인 것이다. 내 성격이 별로고 성향이 안 맞는다 뭐다 할 것도 없이 나랑 별로 친하게 지낼 마음 없다는데 뭐하러 굳이 내가 내 시간, 마음 쓰며 노력해야 할 지 모르겠다.
서운하긴 했다. 그래도 친하다고 생각했었고, 나름대로 좋은 관계 유지하려고 애 썼으니. 그런데 '별로 관심 없다' 하듯 심드렁 했던 친구에겐 연락도 제법 자주 하고 밥까지 사주겠다 했다니 서운했다. 미웠다.



진짜 그냥, 여기서 끝내면 됐다. 나랑 잘 이어가고 싶지 않다 하는데 나 홀로 애써 삽질 할 것도 없었다. 이 자식과는 여기까지 인가보다 하고 쿨해지면 된다. 그런데 자꾸만 마음 아픈건 왜일까. 왜 자꾸 상처 받은 듯이 그럴까.


사람 꽃은 감정노력을 먹고 큰다.




대학에 들어와 여러가지 모양의 인간관계를 맺어 오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먼저 다가갈 줄 알아야 하는 것. 나는 항상 먼저 연락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먼저 찾아주는 이가 없었다. 그 외로움. 그건 아무도 모른다. 연애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연애한다고 친구들을 나몰라라 한 것도 아닌데. 오히려 남자친구와 싸워가며 관계를 유지하려 했던 친구들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나는 결국 이런 정도의 사람이었던거다. 내가 주는 만큼 받지 못하는 관계. 평등하지 못한 관계를 발견하는 순간 상처는 매우 쓰리다.


나 홀로 지내는 것, 혼자인게 편하다고 생각했었다. 아니, 인간관계에 제법 담담해 할 줄 안다고 생각했었다. 이런 발견에 상처받는 것을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아직도 생각보다 의미없는, 부질없는 관계들을 발견할 때 마다 가슴이 아픈 것은 내가 아직도 어려서 일까.



그렇게 시간을 할애 해 전화를 하고, 몇 십 분의 통화를 했을 때. 그 때 그 사람은 시간을 낭비했다고 생각 했었을까 싶다. 나에게 사준 커피 한 잔이 돈이 아깝다 생각했을까. 밥 한 번 먹자는 약속이 귀찮아 이런 저런 핑계를 찾다 마지못해 나와야 했을까.



그래, 이건 허무함이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펴서 이쁘다 했더니 어느새 져 버린 느낌. 아니다. 어쩌면 벚꽃은 피지도 않았는데 나 혼자 피었다 착각하고는 피지 않았다는걸 깨달은 것이다.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이 때 내 사람꽃은 피지 않았다는 실망감. 멀어진, 멀어있던 관계에 담담해 질 수 없는 것은 꽃을 피우기 위해 내 감정노력이 쓰였기 때문이다. 감정은 사실(fact) 보다 더욱 강력하다. 시간이 지나도 내 머리에, 가슴에 진한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흉터로 남아 추억하기보다 괴로운 상처로 남는다. 그래서일까. 피우지 못한 사람꽃을 보고 처음인 듯 속상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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