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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 Apr 20. 2016

힘듦을 삼키다

힘듦을 쌓아 10년을 기다린다

'비교 행위'만큼 자신을 해치는 일도 없거니와 심지어 고치기도 가장 어렵다. 자의적으로 비교행위를 '정신적 난치병'이라고 이야기한다. 스스로를 해치는 질병이나 고칠 방법 또한 오로지 자신에게 달렸다. 비교행위는 비대해지기는 쉬우나 그것을 줄이거나 없애기는 매우 힘들다. 마치 셀룰라이트 처럼. 



나는 자연스럽게 비교행위에 노출돼 있었다. 성적이나 어떤 재능이나 자질들에 대해 칭찬을 받아도 항상 '다음번엔 더 잘해서 '아무개' 보다 잘 해내자'하는 소릴 들었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되어서 '경쟁'에 물들기 시작하면서, 비교행위는 주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나의 의한 것이 됐다. 나보다 공부를 더 잘하는, 혹은 무용을 더 잘하는 친구와 나를 비교했다. 그들보다 더 잘하기 위해서 그들과 나를 비교해 차이점을 찾아내곤 그것이 마치 내 '잘못된 점'인 양 고쳐나갔다. 어쩌면 내가 '나는 누군인가?'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고민을 하게 된 것은 비교질로 인해 나를 야금야금 잃어가면서 결국 타인의 조각들이 모여 나를 만들어냈기 때문이 아닐까.



대학에 들어와서 비교질이 어떤 의미에서든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중독된 마약을 끊어내 듯, '셀프 재활치료'를 시작했다. 혜민스님의 책 부터 시작해 다양한 '용기'들을 읽었고, 심리학 책까지 들춰 가며 내 뇌를 아주 진하게 물들인 '비교질'을 희석시켜 나갔다. 차츰 '괜찮아 졌다'하고 느꼈을 때, 그러니까 최근에 어마무시하게 큰 비교를 하면서 충격에 휩싸였다. 



힘들다 말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바로 내 '최측근'이었다. 같은 시기에 휴학하고, 나보다 한 학기 더 복학했다. 그리고 지금은 모든 대학생의 꿈이자 목표인 '졸업 전 취업'을 이뤄내 직장인이다. 같이 취업 준비를 하면서도 이 친구는 본인이 준비하는 것들에 대해 잘 이야기하지 않았다. '뭐하고 있냐'하고 물으면 '그냥 방에 누워있어' 하는 친구였다. 솔직하게 나는 이 친구가 '별로 생각 없이 산다'고 생각했다. 치열하게 취업 준비를 해도 모자랄 판에, 취업에 관한 고민 조차 전혀 없어 보였고 무언가를 딱히 고민한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이 친구가 취업했다고, 그것도 꽤나 알아주는 대기업에서 일하게 됐다고 했을 때 나는 '어떻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은 그저 내가 겉으로만 느끼고 생각한 같잖은 평가였다. 나는 손에 토익책과 어떤 자격증 책을 들고 '나 취준생입니다'하고 광고할 때, 이 친구는 작은 원룸방 안에서 자신의 표정까지 살피며 100번 넘게 자기소개를 녹음하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었다. 이 친구의 숨겨진 힘듦과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이 것을 깨달았을 때 몰려드는 비교. 결국 나는 여러 책을 읽으며 비교질 습관을 희석시켰다 생각했으나 결정적인 순간엔 비교를 했다. 무엇이 그녀가 취업에 성공하게 했을까. 그것은 힘듦을 풀어내는 방법의 차이였다. 


취업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힘들다', '어렵다'를 입에 달고 사는 나와 달리 이 친구는 단 한 번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힘들다 말하며 나의 힘듦을 풀어 낼 때 이 친구는 힘들다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묵묵히 준비해갔다. 남들에게 발전 없는 푸념을 늘어 놓으며 내 힘듦을 과장할 때, 이 친구는 힘들다 말하는 대신 그만큼 더 행동으로 힘듦을 이겨냈다. 힘듦을 감당하는 태도의 차이. 내가 감당해낸 힘듦엔 노력이 없었고, 발전도 없었다.



노력을 집적대지 않기



나는 토익강사 유수연에게 꽤나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이다. 그녀의 생각이나 태도가 나와 많이 비슷하기도 했고-그래서 공감했고- 그녀가 조언하는 방법들이나 꾸짖는 이야기들이 내게 적통했다. 그 중 하나가 '노력을 집적대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전형적으로 노력을 집적대는 인간이었다. 내 인생에, 나 자신에 욕심이 많아 잘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런 저런 공부나 자격증에 많이 집적댔었다. 자격증을 취득한 후 한뼘 더 멋있어 보일 나를 상상하며 호기롭게 책을 샀지만, 자격증을 취득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 적이 여러 번이다. 책장에 쌓여가는 여러 책들을 보며 마치 내가 '이렇게 노력하며 살고 있다'하는 착각에 빠졌다. 책장에 채워가는 결과물 없는 책들은 돈과 함께 날린 시간과 노력의 조각들이었다. 그 조각들을 모았더라면, 노력을 그렇게 쉽게 흝뿌리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적어도 1-2개의 자격증을 더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이 친구, 그러니까 힘듦의 비교대상이었던 친구는 어학성적 외에 4개의 자격증을 있다. 나와 동시에 시작했으면서 나는 중간에 포기하거나 다른 새로운 것에 또 다른 노력조각을 내어줄 때 그 친구는 한 우물을 계속해 팠다. 차분함. 끈기. 노력의 집중. 이것들의 차이. 나를 참 반성하게 만든다. 여러모로 닮고 싶은 친구다. 



독기와 오기를 말로 날려보내지 않기



이 쯤에서 내 정신건강을 위해 비교질을 멈춰야겠다. 어쨌거나 그 친구와 나의 차이는 '독기와 오기, 그리고 노력의 집중'이었다. 경제에서 'labor/capital - intensive method'라는 표현이 있다. 중고등학생 때 한 번씩 들어본 '노동/자본 집약적 방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something - intensive method'로 살아간다. 이 something은 자격증이나, 어학이나 혹은 이외 각자의 관심과 목표에 따라 다르다. 핵심은 something이 anything이 돼서는 안된다는 것. 지금의 나를 보면 something보단 anything이 조금 더 많지 않았나 싶다. something에 해당했던 것들은 영어와 중국어, 그리고 글쓰기에 해당하는 정도. 그 외의 anything은 결국 nothing이 돼 버렸고 내 몸에, 기억에 일말의 흔적 조차 남지 않았다.


유수연은 말했다. "노력을 말로 풀어내지 마세요. 안으로 쌓으세요. 안으로 쌓아서 이겨내세요" 나는 안에 '담는 것'을 정말 잘 하지 못한다. 힘든 것은 힘들다 말하고, 도움이 필요할 땐 도와달라고 말 할 줄 아는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힘들 때 힘든 것을 인정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 어쩌면 이 편이 더 쉽고 빠르게 가는 방법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지내보니 내게 독기와 오기가 남지 않았다. 누구보다 버티는 것에 자신있다고 말해왔으면서도 온전히 나와의 싸움이 되는 것, 그러니까 내면의 변화라던가 자기개발이라던가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이겨낼 힘이 없다. 독기와 오기는 오로지 노력과 의지만이 성패의 변수가 될 때 매우 큰 에너지로 작용한다. 내 안에 내재된 그 에너지는 과연 얼마나 될까. 



그리고, 기다리기



언젠가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이 보직에서 '전문가'라는 소리 듣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동기들, 후배들 다 부대를 떠날 때 내가 제일 마지막으로 부대를 떠났지. 딸, 대학교수들은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대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그 분들은 학부생 때 부터 시작해 교수가 될 때까지 20년을 공부하고 연구했어. 그러니 남을 가르치는 전문가가 된 것이지. 넌 10년을 버틸 수 있니?"


기다리는 것. 버티는 것. 견디는 것. 수많은 단어와 문장들로 이것들의 힘듦을 풀어냈고, 더 잘 해보자 다짐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하는 것도 어쩌면 독기와 오기와 노력들을 너무 많이 풀어냈기에 내 안에 내재된 에너지가 없어서 자신이 없는 것일 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통화한 후 며칠 동안 '10년, 버틸 수 있니?'하는 질문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할 수 있다' 말하고 싶지만 입으로 꺼내는 것을 물론 생각조차 그렇다고 할 수 없었다. 그래야 함을 알고 있지만 '해 볼게'하고 답할 수가 없다. 그냥 나는 정말, 잘 모르겠다. 


독기와 오기를 내 안의 에너지로 쌓는 법. 그것이 곧 버티기고, 곧 성공을 기다리는 방법이었다. 취업에 성공하거나, 자신이 목표하던 전문시험에 합격한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원하던 어떤 일을 이뤄낸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기다림을 안다'는 것이다. 그들의 상황을 변화시키는 수많은 변수들을 버텨내고,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무던히 노력과 정성을 들이는 것. 그렇게 그들은 그들의 성공을 기다려왔다. 성격이 급한 나는 '기다리기'를 가장 잘 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전문시험이나 고시 같은 것들을 애초에 시작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취업을 준비하고 취직을 하기까지 기다리는 이 시간들이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다. 


독기와 오기. 이 것들은 '열정'이 변질된 것이다. 퇴적물들이 오랜 시간 압력과 열에 의해 변성암이 되는 것처럼. 목표에 대한 열정이 오랜 시간 동안 성공을 기다리며 좋은 의미의 독기와 오기가 된 것이다. 그럼 아주 본질적인 질문으로 돌아간다. 나는 과연 내 꿈에 대해 얼만큼의 열정을 갖고 있는가. 그 열정은 인고의 시간으로 독기와 오기로 변할 만큼 충분한가. 











아직도 나는 '10년을 버틸 수 있냐'는 질문에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힘듦을 풀어내지 않고, 노력을 집적대지 않고, 충분한 열정을 쌓기. 그럼, 당장 나는 글 쓰는 것 부터 그만 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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