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HEE May 07. 2016

불편한 규칙 만들기

가장 멋있는 나를 살아가는 방법


규칙은 불편하다. 규칙은 반드시 필요함에도 참 번거롭고, 귀찮다. 그 규칙들에 익숙해지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규칙에 익숙해 지는 것이 마치 내 개성을 잃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나는 내 삶에 불편한 규칙들을 만든다.





남 몰래 대운동장에서 울던 여자


대학에 입학한 후 직면했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대학에 오니 모든 시간을 내가 계획해야 했다. 하물며 시간표 까지. 아무리 늦어야 5시면 끝나는 시간, 그리고 중간 중간 자리잡은 공강은 새로운 고민덩어리가 됐다. 동기들과 술을 마시고 놀러 가기도 한 두번. 술, 노는 것을 모두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4월이 되자마자 질리기 시작했다. 하루에 5시간도 채 되지 않는 수업시간, 그리고 널리고 널린 자유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딱히 무언가 하는 것이 없었고 하릴 없이 '시간아 얼른 가라'하고 보내는 것이 너무 싫어따. 하루하루가 허무했고, 아무런 건설적인 것도 없이 하루를 보낸 날엔 '왜 이렇게 살지?'하는 실망감과 자책감이 나를 몰아세웠다. 당시에는 대외활동에 대한 정보나 내가 할 수 있는 재밌는 것들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 지 몰라 더 고생했었다. 자유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그래서 나는 어떻게 지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매번 여행을 다니기엔 지갑이 가볍고, 딱히 공부를 하기는 싫었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무엇이 하고 싶은가'하는 고민을 아주 유난스럽고 호되게 했다. 내가 상상했던 대학생환은 온데간데 없고, 무한히 주어진 자유 앞에서 나는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노예였다. 실망감과 허무함에 무너질 때면 항상 맥주 한 캔을 사 들고 혼자 대운동장으로 향했다. 콜로세움 형태의 운동장은 관중석 제일 높은 곳에 앉아있으면 마치 가슴이 뻥 뚫리는 듯 했다. 아무도 없는 늦은 밤, 맥주 한 캔 마시고 '이 답답아!' 하고 몇 번 소리지르고 나면 찔끔 눈물이 났는데, 그 때는 그냥 펑펑 울었다. 언젠가는 조깅하던 한 여자 분이 내게 '괜찮으세요?'하고 물은 적도 있었다. 아마 나를 실연한 여자, 그 쯤으로 생각 했던 것 같다.


대운동장에서 몇 번 쯤 맥주 캔을 땄을 때, 나는 이대론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엄청나게 뭘 잘못하고 있는 상황도 아니고, 제대로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있는 상황도 아닌데 '아무 것도 안한다'라는 것에 왜 그리 심각하게 힘들어 했을까 싶다. 아마도 대학에만 가면 내가 상상하던 모든 것이 저절로 이뤄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우스꽝스러운 착각에 불과하다는 깨달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대학생활의 로망, 그러니까 대학에서 '멋진 여대생'이 되는 것에 대한 환상과 꿈이 가득한 여고생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이렇게 살 순 없어!'하고 분노한 채로 기숙사로 돌아갔다. 그 때는 목요일 밤이었다.





Cafe, Coffee, Concentration 그러니까 3C 프로젝트


다음 날 아침, 나는 눈을 뜨자마자 서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서울의 유명 카페들을 소개, 추천하는 책(이하 카페 책)을 사서 하나씩 섭렵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대체 왜 서울의 카페들을 섭렵해야 겠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 때는 '다 정복하고야 말겠다'는 호기로 불타올랐다. 카페 책의 카페를 모두 섭렵하겠다는 패기 때문에 나는 누구보다도 분주한 평일을 보냈다. 모든 과제를 금요일 안에 마쳐야 했고, 사람들과 대화해야 할 모든 것들을 금요일까지 끝을 내 놓아야 했다. 주말엔 카페를 정복해야 하니까.


토요일 아침, 알람이 울리면 바로 일어나 핸드폰 전원부터 껐다. 곧바로 샤워를 한 뒤 가장 예쁜 옷을 입고 외출할 준비를 한다. 카페 책과 노트, 연필, mp3를 들고 기숙사를 나설 땐 항상 설렜다. 날씨가 좋으면 기분은 더 없이 설렜다. 길에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데이트하러 가?"하고 물을 정도로 나는 곱게 화장을 하고 예쁘게 차려입었다. 당시엔 남자친구가 없었다.


학교 도서관에 들러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한 권 빌리고는 카페 책에 소개된 카페로 직행해 책을 읽었다. 나는 이 시간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모든 일들을 평일, 그러니까 금요일 안에 모두 끝마쳤다. 책을 읽다가 좋은 구절이 있으면 노트에 필사했고, 대화 속에 등장하는 질문들을 곱씹으며 나는 어떤지 함께 고민했다. 날 좋은 날, 골라 집은 책이 로맨스 소설일 땐 한 껏 여주인공이 된 양 심취해 있었으며 여행 에세이를 읽을 땐 나 홀로 여행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노트는 빠르게 채워져 갔다. 필사한 것들, 내 고민들, 내 생각들을 채워 담은 노트는 지저분했지만 모든 것이 내 생각과 시간의 흔적이었다. 노트 한 권이 다 채워졌을 땐 노트를 2권씩 들고 다녔다. 필사와 생각 노트 한 권, 그리고 생각을 통해 만들어낸 내 삶의 규칙에 대한 노트 한 권.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나의 꿈은 무엇인가'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러니까, 내가 주말마다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들은 철저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 고민, 미래에 대한 불안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했고, 타인에 대한 생각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반드시 카페에 혼자 가야 했다. 벌거 벗은 내 자신을 마주할 시간이기 때문에, 타인에게 방해 받고 싶지 않았다. 이 시기에 참 많은 책을 읽은 것 같다. 그리고 많은 생각도. 책과 생각들로 만들어진 규칙들은 점점 튼튼해지고 확고해져 내 삶의 뼈대가 됐고, 그 뼈대로 지금까지의 5년을 지내왔다. 감히 나는 그 규칙이 내 라이프스타일을 대표한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7개월 쯤 카페에 가기를 반복하니 채워진 노트도 어느덧 6권에 달했다. <가장 멋있는 나를 살아가는 방법>라고 이름을 붙인 삶의 규칙 노트도 빼곡히 채워졌다. 자기개발서를 읽으며 발견한 멋있는 규칙들을 따라했다. 따라해 본 규칙들은 50여가지가 넘었고 내게 잘 맞지 않다 생각했을 땐 과감히 지웠다. 결국 딱 9개의 규칙만이 살아 남았다. 그리고 그것들은 지금도 습관이 되어 '제희'라는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규정하는 'Rule'이 됐다. 예를 들면 반드시 아침엔 미숫가루에 바나나, 요거트를 넣어 갈은 쉐이크를 마시는 것이라던가(반드시 아침을 챙겨 먹자는 규칙), 엄마 옆에서 뜨게질이나 퀼트를 배우는 것(내 평생을 함께 할 취미를 만드는 것), 그리고 1주일에 한 편씩 글을 쓰자는 것(미래에 태어날 딸에게 주고 싶은 책 만들기) 등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개발서를 읽고 그 것을 자신의 삶에 가져오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본래부터 '내 것'이 아닌 '타인의 것'이며, 자신을 브랜딩(Branding)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자칫 블렌딩(Blending)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도해 보았으나, 실패했다면 그것으로 성공한 것이라 생각했다.





 

Bring your desire into your real life



나는 강아지(조금 더 큰 개) 같다. 꽃을 보지 않아도 나는 봄을 느낀다. 잠이 많아지는 것과 게을러 지는 것, 그리고 상큼한 것이 먹고 싶어지기 시작하면 봄이다. 코 끝이 찡해 눈물이 날 정도로 시린 겨울 바람이 좋은 나는 조금 아쉽다. 겨울이 아쉬운 것은 내가 게을러지기 때문이다. 게을러지면 부지런해 지기 위해 여러 가지로 애를 쓸 것이고, 나의 '부지런함'은 돈이 든다.


따뜻한 햇볕이 피부에 닿는 순간부터 나는 나태해진다. 내게 '나태해 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신호다. 지금까지 열심히 정립해둔 규칙들이 물거품이 되버리고 하루 생산성이 0에 가까이 떨어진다. 내 성적표를 보아도 항상 1학기보다 2학기 성적이 더 높은 것이 그 증명이다. 그래서 최근 나의 게으름과 나태함, 그리고 작심 3일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규칙을 만들었다. 즐겁게 사는 인생, 뭐 그리 규칙들을 만들어 자신을 옭아 매느냐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 Do it and Save money >. 이름 그대로, 해야 할 어떤 일을 하면 돈이 생긴다.

내게는 봄이 되면 귀찮아지는 규칙들이 몇 가지 있다. 이를 테면 아침에 30분 정도 팟캐스트를 듣는 다거나, 아침마다 쉐이크를 만들어야 한다거나, 운동을 하는 것들. 이 것들은 주로 아침에 해야 하는데, 이불 속은 겨울이나 봄이나 둘 다 포근해서 일찍 눈이 떠지질 않는다. 점심이 지나면 햇빛은 작정하고 나를 유혹해 햇빛에 심취해 있다가 해야 할 일들을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가 된다.


그래서 해야 할 일들, 그러니까 습관화 해야 할 일들을 매일 해 낼 때 마다 1000원, 2000원씩 적금을 들었다.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팟캐스트도 듣고, 신문 읽고 스크랩도 했고, 아침 거르지 않고 쉐이크 잘 만들어 먹었다면 5000원을 저금하는 식. 게다가 커피 중독자인 내가 카페에 가지 않고 집에서 착실히 캡슐커피를 내려 잘 마시고 다녔다면 3000원을 적금하고, 귀차니즘을 이겨내고 점심 혹은 저녁을 집에서 잘 요리해 먹었다면 또 3000원을 적금했다. 내 부지런함은 돈든다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것 마저 작심 3일이 되지 않을까 했지만 효과는 엄청났다. 사람이 한 가지 습관을 만들기 위해 60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그런데 60일은 매우 길며, 60일 동안 습관이 몸에 베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란 매우 힘들다. 그런데 내 통장에 돈으로 차곡차곡 쌓이는 것처럼 변화가 눈에 보이면 더욱 열심히 하게 된다. 2달 동안 모인 돈이 40만원에 육박하니 깨달았다. 나는 자본주의에 뼛속까지 물든 속물이라서 돈이 된다는 것을 깨달으니 내 몸이 절로 움직여 진다는 것을. 사실 말이 저금이지 돈이 모아지면 옷 사고, 가방 사고, 신발 사고 해서 남은 돈이 별로 없지만 열심히 1-2주 움직이고 때 마다 쇼핑을 하니 이토록 즐거운 일이 없었다. 요즘은 여름에 여행을 가기 위해 돈을 끊임 없이 모으고 있는데 그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나도 변하고, 돈도 모으고. 이 얼마나 창조적인 일인가. 게다가 수업을 듣거나 과제를 하는 것 이외에 내가 스스로 계획한 일들, 영어와 중국어 공부, 그리고 자격증 공부 같은 것들에 일정 금액을 지정해 두고 나면 정말이지 "시간이 돈이다"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 움직임이 빨라진다. 그럼, 돈을 모으기 위해서가 아니고 정말 시간이 아까워서 몸을 움직이게 된다.


이 방법을 함께 하는 친구가 몇 있다. '나른해 지니 졸려 죽겠다'를 연신 말하는 친구에게 몰래 이 방법을 귓띔해 줬더니 어느 날엔 본인도 이 방법을 하고 있단다. 그러고는 '인생 꿀팁'이라며 본인이 모은 돈을 내게 보였다. 그 친구는 1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고 저금을 한다는데, 반드시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노트까지 작성해야 한다고 한다. 처음엔 돈 모으는 재미로 시작했지만 습관이 되고 나니 이젠 저금하는 방법을 까먹는 정도라나.



규칙을 만드는 이유



각자의 삶엔 본인만의 어떤 규칙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나는 반드시 1달에 2권 이상은 로맨스 소설을 읽어야 하고 특히 여주인공에 대한 분석은 필수다. 로맨스 소설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들은 매우 사랑스럽고 현명하고 지혜로워서 그들을 닮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 된 것이다. 어쨌거나 사람은 각자가 지향하고 동경하는 삶의 모습이 있다. 내 삶에 번거롭고 불편한 규칙들을 하나 둘 씩 만들어가는 것은 결국 내가 동경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실제 삶으로 가져오기 위함이다. 막연히 동경하고 지향하기 보다, 얼마 동안 조금 불편한 규칙들을 감수해 내더라도 내 삶 자체가 동경하던 것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몇 개고 더 규칙들을 만들 의지가 있다. 그래서 돈을 들여서라도 습관을 만들고, 규칙을 만든다. '가장 멋있는 나를 살아가기' 위해서.



 












매거진의 이전글 힘듦을 삼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