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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 May 30. 2016

준비되지 않은 이별

내가 더없이 추하게 느껴진 순간


여느 때와 다름 없던 봄 날씨였어. 지난 밤 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어느새 그쳤고, 제법 쌀쌀하게 느껴지는 양 팔을 감싸안고 교수님과 식사하러 걸어가는 길이었어. 네 소식을 듣는 순간은 내게 수많은 날 중 어느 것을 골라 집어도 비슷 비슷 할 그런 날이었어.


갑작스럽게 네 소식을 듣고 그저 울기만 했던 날 제대로 붙잡아 준 것은 교수님이었어. "정신 바짝 차리고, 교수님들께 우선 수업 못 간다고 연락 드려라" 하시며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 주셨어. 간신히 주변 정리를 했을 땐 발이 떨어지지 않았어. 이제 진짜로 널 볼 수 없다는 걸 현실로 확인하게 되는게 싫었어.


엄마는 장례식장 가는 길에 울지 말라 하셨는데, 안 울 수가 없었어. 버스 안에서도, 지하철 안에서도 나는 계속 눈물이 났어. 너를 마지막으로 봤던 때가 생각나지 않았어. 마지막으로 육군회관에서 널 봤는데, 근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너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가, 네 얼굴이 흐릿해. 네 마지막 모습조차 희미해 진게 너무 화가 났어.


네 투병 시간이 길었던 만큼 우린 너 없이 모인 이 자리에 익숙해졌나봐. 네가 없는 이 자리가 자연스러웠어. 종종 그랬듯 너는 바빠서 오지 못 한 것 처럼 말이야. 그 자연스러움이, 너무 화가나. 왜 익숙해져있는 것인지. 그래서였을까. 네가 두 번째 수술을 받아야했을 때도, 우린 너라면 당연히 금방 낫고 돌아올 줄 알았어. 너무나 당연히, 넌 다시 우리에게 엄청난 드립을 보여줄 줄 알았어. 자연스럽게 너의 재기를, 너와의 재회를 그리던 우린 갑작스런 네 이별 소식에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몰랐어. 이렇게 널 보내는 것이 맞는 건지도 모르겠고, 더이상 널 보지 못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실감나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우린 너무나 당연하게 널 다시 볼 줄 알았으니까.


내가 아는 그 어떤 여자보다 넌 강하고 밝은 여자였어. 그런 네가 갑자기 수술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모든 것이 철렁했어. 찾아가야지, 한 번 봐야지, 수도 없이 생각하면서 결국 말 뿐이었던 내가 이렇게 한심하고 못나 보이기도 처음이야.


내가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차갑게 누워있는 너에게 그저 미안하다는 말을 수 없이 말하는 것이었어.
바쁘다는 핑계로 한 번도 찾아가지 못해서, 인사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해서. 나는 평생 그것을 잊지 않을거야. 너에게 미안한 마음, 다 하지 못한 친구의 우정, 그 모든 것을 난 잊지 않을거야. 계속 마음에 담아두고 살거야.



아니 사실은 니가 미워.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농구를 하던 너였잖아. 누구보다 건강했잖아. 나는 한 번도 네게 재대로 인사하지 못했잖아. 조금만 더 버텨주지 그랬어. 내가 네 얼굴 보고 미안하다 말 할 시간은 주지 그랬어. 왜 더 못 버틴거야. 우린 2년 만에 만나서 왜 이렇게 인사해야하는거야. 어째서 조금만 더 버티지 못했어.


하늘도 울고 우리 모두가 울었어. 앞으로 네 얼굴을 보며 나눌 대화가 없어진 것이, 창의적이다 못해 또라이 같았던 네 드립을 더이상 들을 수 없어졌어.

"수술 잘 됐대지? 용감히 버티느라 수고했어." 이 한마디를 못 한게 너무 한이 돼. 넌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 젊은 청춘에 갑자기 네게 찾아온 병이. 병원에서 홀로 견뎌야만 했던 너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너무나도 담담히 계셨던 네 부모님께서 말씀하셨어. 오래 전 부터 준비를 해 오셨다고. 그런데 있잖아, 나는 봤어. 중,고등학생 친구들, 그리고 네 대학 친구들을 바라보시던 아버님와 어머님의 얼굴을. 멍하니 우릴 바라보시던 아버님의 표정이 아직도 또렷해.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어떤 말도 해 드릴 수가 없었어. 너와 동갑인 날 보게 하시는 것 조차 죄송스러웠어.


어떤 형식으로든 이별은 참 추한 것 같아. 연애든, 우정이든. 그 어떤 순간도 '아름답게' 끝날 수가 없어.  스물 다섯 살에 친구와 이별을 하게 될 줄은 몰랐어. 그래서인지 그 어느 때 보다고 이 순간이 너무 추하게 느껴져. 네게 미안한 마음, 그것에 대한 죄책감들이 머리와 마음 속에서 복잡하게 뒤엉켜 있어. 있잖아, 네 장례식에서 몇 시간을 우울해하고 울고 난 뒤 비로소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내가 학교로 돌아가 해야 할 일을 생각했어. 너를 보내는 그 곳에서 나는 널 위해 온전히 슬퍼하지 못했어. 그 몇 시간만이 내가 너에게 허락한 시간이었듯이 말이야. 내가 과제를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한 순간 느껴진 혐오감을 이해할 수 있니? 더없이 이기적이게 된 내 모습, 과제를 준 교수님을 탓해야 할 까, 취업에 목매게 만든 사회를 탓해야 할 까? 그 어느 것도 탓 할 수 없어. 그냥 내가 변해 버린 거야. 그래서 더 추한거야. 친구를 위해 온전히 슬퍼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여전히 마음 한 켠에서 내 학점, 커리어에 대해 남아있는 미련이.



며칠이 지나 네가 내 꿈에 나왔어. 해외 여행을 갔는데 넌 신나게 놀이기구를 타고 놀았어. 나는 네게 무언가 말을 했는데 네가 "무슨 개소리야, 빨리 타기나 해" 하고 말하더라.



차라리 아픈 네 모습을 보지 않아서 다행인가 싶어. 내 기억엔 네가 아픈 모습은 없으니까. 그렇게 남아줘. 평생 건강하게 웃던 너로 남아줘.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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