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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 Sep 24. 2015

나이 드는 것이 좋다

'벌써' 아닌 '아직' 스물 넷



복학 전 한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군입대를 앞두고 있다며 마지막 안부인사란다. 그러면서 내게  '진짜 화석'이 되기 전에 얼른 학교에 복학하란 소리를 내뱉었다. 나 아직 24인데.



'벌써'아닌 '아직' 스물 넷


24살이 되면서, 점점 '화석 선배'라느니 '여자의 전성기가 지났다'느니 하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 대학에서는 나름 '고학번 선배' 대우를 받고 있고, 친구들 끼리는 벌써 '늙었다', '체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소릴 듣고 있다. 그런데, 참 궁금하다. 진정으로 24살인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남들이 그렇다고 하니 나도 '그런 척'하는 것일까?  



사람들이 내게 '너도 이제 꺾이는구나'하고 말 할 때 나는 되묻는다.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꺾이다니요?'. 나는 아직 사회에 발을 들여 놓지도 않았으며,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제대로 무언가 시작해 본 적도 없거니와, 아직 계획조차 제대로 세워진 것이 없다. 그런데 '꺾인다'고 말하는 것이 황당하기 그지없다.



최고로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나이 드는 것이 좋다.



점점 성숙해지고, 내 그릇이 경험들로 조금씩 채워지고, 마음이 깊어지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져서 좋다. 무엇보다, 노력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을 '더 잘 할 수 있어짐'이 까무러치도록 좋다.




1년 전의 나는, 학내 언론사에서 비로소 글을 '읽을 만 하게' 쓸 줄 알았다. 언론사 특징에 맞는 아이템을 선정하고 취재를 하고 글을 썼고, 그 결과 돌아오는 비판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나름 만족스러울 때도 있었다. 연애도 1년을 넘겼을 때라 헤어지네 마네 하는 싸움보다는 설득을 하고, 달래는 방법을 터득했으며 덕분에 안정적인 연애를 즐겼다.



2년 전의 나는, 학내 언론사에 막 입사했을 때였다. 내 글은 온갖 색깔의 펜으로 난도질을 당했으며 나는 기사 아이템 조차 제대로 찾아오지도 못하는 풋내기였고, 15줄짜리 단신 하나 쓰는 것도 몇 시간을 헤맸다. 취재를 할 때면 입이 얼어붙어 마땅히 했어야 할 질문조차 제대로 못해 추가 취재를 했고 4페이지 짜리 기사를 쓸 때는 일주일 내내 붙잡고 있어야 했다. 남자친구와의 연애는 6개월도 채 되지 않았던 터라 언성 높이며 싸우고 뒤돌아서 화해하는 '짓'을 반복했으며 그로인해 연애를 하면서 안정은 커녕 후회하던 때도 있었다.



과거를 되돌아 보면 되돌아 볼 수록 나는 엉성하고 미숙한 것 투성이었다. 물론 지금도 나는 완벽하지 않으며 많은 부분이 어색하고 다듬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이 낯간지럽다. 부끄럽고 창피한 것과는 다르다. 그런데 반대로 과거에서 지금을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뿌듯하다. 그 사이에 나는 무언가를 배웠다는 것, 그것에 조금 더 익숙해졌다는 것, 그리고 그 일에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이. 경험이 더해지고, 머리 속에 지식이 더해졌고, 생각이 더해졌고 그리고 그것들은 서로 합해져 조금씩 나를 성장시켰다.  



내가 노력해온 시간들의 결과물이 지금의 나다. 23년동안 지금의 나를 만들어 왔으며, 앞으로 5년간의 시간이 30살의 나를 만들 것이다. 15년의 노력이 40살이 나를 만들 것이고 평생의 시간이 나의 인생을 만들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가슴이 벅찬다. 나는 얼마든지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고, 더 멋있어 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서.




언젠가 읽은 책에서 이런 구절을 봤다. "미래의 나에게 미안해지지 않도록".




그 말은 가슴에 새겨져 다이어리를 살 때마다, 노트를 살 때마다 적어놓는다. '미래의 나에게 미안하지 않을 만큼만 노력하자'라고. 이렇게 생각하면 노력을 안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땅을 치며 후회하는 나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런 내 모습을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나는 나이 드는 것이 좋다. 노력할 자신이 있으니까. 분명히 25살은 지금보다 나은 내가 있을 것이고,

30살에는 25살보다 농염하고 성숙한 내가 있을 것이다. 외모따윈 중요하지 않다. 포장을 잘 했다고 내용물이 알차질 순 없는 것이니까. 나이들었다 한탄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무엇이 그렇게 두렵게 만드느냐고.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늘어나는게 즐겁지 않느냐고.


 






불과 3달 전 만 해도 회사에서 '막내' 라고 불렸는데, 대학오니 '왕언니'라고 불린다.

너네는 나이 안 드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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