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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적인튀김요리 Jan 18. 2022

위대한 생명 앞에서

스물여덟 번째 책 <나는 3학년 2반 7번 애벌레>

<깔끔하게 꽂는 책꽂이>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작품을 선생님의 관점에서 읽고 소개합니다. 주변에 책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지루하다는 이유로 혹은 길거나 어렵다는 이유로 멀리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공감하며 천천히 그리고 끝까지 읽어보세요. 그러면 아이들은 분명, 그다음의 책을 스스로 찾아 나설 겁니다.



작가이자 초등학교 선생님이신 김원아 선생님께서 쓴 <나는 3학년 2반 7번 애벌레>는 작가님의 특수한 경력(?) 덕분인지,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아주 최적화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과학시간에 배우는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생명의 성장 과정을 책에 고스란히 잘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겠죠. 알부터 애벌레, 번데기, 나비가 되기까지의 성장을 귀여운 그림체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그들의 생명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까지 착하게 담아내고 있죠.


이야기를 이끄는 애벌레는 제목과 같은 3학년 2반에서 태어난 7번 애벌레, 아이들(인간)이 부르기로는 '무늬 애벌레'로 불리는 애벌레입니다. 잎을 갉아먹으며 무늬를 만들어내는 무늬 애벌레의 독특한 취미 덕분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무늬 애벌레는 모두가 두려워하는 인간들을 좋아합니다. 맛있는 먹이도 주고, 관심을 보내주는 아이들이 내심 마음에 들기 때문이죠. 하지만, 형님 애벌레들은 그런 무늬 애벌레에게 경고합니다. 인간들은 '우리처럼 작은 생명엔 관심이 없다'라고 말입니다. 결국, 무늬 애벌레에게도 위기가 찾아옵니다.


아이들은 애벌레가 궁금하고 아끼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애벌레를 사랑하는 방법을 모릅니다. 무늬 애벌레를 만지고 싶었던 아이 하나가 지붕을 뜯고 손을 어넣은 것이죠. 나름의 사랑 방식이었겠지만, 방법이 틀렸습니다. 진짜 교실의 관찰 상자에 놓인 배추흰나비 애벌레들도 같은 운명에 처한 경우들이 많습니다. 짓궂은 장난과 지나친 호기심으로 애벌레에게 스트레스를 주거나 장난감으로 삼는 아이들도 더러 있으니까요. 때마침 교실로 돌아온 선생님 덕분에 무늬 애벌레는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애벌레 가족의 수는 절반이나 줄어버렸습니다.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 혹은 지나친 호기심 하나로 말입니다.


그런 애벌레 가족에게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옵니다. 먹이로 놓인 배춧잎에 농약이 채 씻기지 않았던 것이죠. 애벌레들은 본능적으로 그 배춧잎을 멀리하고 싱싱한 배춧잎을 먼저 먹습니다. 그런데, 싱싱한 배춧잎을 다 먹었는데도, 먹지 않은 배춧잎 때문에 먹을 게 아직 남아 있는 것처럼 보여서 그런지 새 먹이가 들어오질 않습니다. 굶주림에 애벌레들은 들끓습니다. 무늬 애벌레는 아이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기로 합니다. 구조요청입니다. 다른 애벌레들과 모여 엑스 표시를 만들기로 했죠. 결국, 애벌레 가족을 도울 수 있는 건 지금으로서는 아이들 뿐이니까요. 다행히 구조요청이 아이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다시, 싱싱한 배춧잎을 먹을 수 있었죠. 이후 무늬 애벌레는 번데기로 잠들어, 나비가 되고 관찰 상자를 빠져나가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인간들이 살고, 오늘도 수많은 애벌레들이 태어나. 우리같이 작은 애벌레들은 인간을 믿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어. 작은 생명도 소중히 아껴 줄 거라는 믿음 말이야. 우리는 두 달 정도 살아. 나비가 되어서는 한 달 남짓 살지. 인간에 비하면 짧은 삶이고, 한참이나 작은 나비에 불과하지만 살아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일이야." (96쪽)



무늬 애벌레를 비롯한 애벌레 가족이 살고 있는 3학년 2반의 관찰 상자는 안전합니다. 천적들이 애벌레를 공격할 수가 없는 구조이니까요. 편하게 먹이를 먹고 살 찌우면 됩니다. 한편으로는 위험합니다. 인간들의 대수롭지 않은 행동과 장난에도 목숨이 위태로워지니까요. 또, 환경이 위태로워지더라도 관찰 상자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무늬 애벌레 가족이 처했던 위기의 상황들처럼 말입니다. 동화에서는 극적인 선생님의 등장으로, 동화 같은 구조요청으로 그 위기를 극복하지만 실제 교실의 모습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많은 애벌레들이 혹은 다양한 동식물들이 지나친 관심 속에 혹은 정반대로 지나친 무관심 속에 죽어가기도 하죠.


아이들과 교실에서 생명을 키울 때마다 갖가지 실수들로 생명을 죽이는 경험을 합니다. 우리는 그 경험을 통해 반려 동식물에게 전해야 할 관심의 적절함과 적정함을 배워가죠.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듭니다. 우리에게는 다음이 있지만, 이 작은 생명들에게는 그다음이 없었다는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반려 동식물에 대해 더 나은 책임감이 필요했다는 아쉬움입니다. 배추흰나비 애벌레를 키우기 전, 우리가 적어도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서 읽고 느끼고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조금이나마 생명의 가치를 이해하고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작은 생명들에게도 지금의 한 살이는 너무나 중요하고 위대한 순간임을, 이 세상 어떤 생명에 대해 함부로 존귀를 논할 수 없음을, 우리는 그 위대한 생명 앞에서 너무나도 당연히 숙연해야 함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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