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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적인튀김요리 Jan 17. 2022

기괴한 동화를 소개합니다

스물일곱 번째 책 <돌 씹어 먹는 아이>

<깔끔하게 꽂는 책꽂이>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작품을 선생님의 관점에서 읽고 소개합니다. 주변에 책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지루하다는 이유로 혹은 길거나 어렵다는 이유로 멀리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공감하며 천천히 그리고 끝까지 읽어보세요. 그러면 아이들은 분명, 그다음의 책을 스스로 찾아 나설 겁니다.



<돌 씹어 먹는 아이>는 송미경 작가의 단편동화집으로 <혀를 사왔지>, <지구는 동그랗고>, <나를 데리러 온 고양이 부부>, <아빠의 집으로>, <돌 씹어 먹는 아이>, <아무 말도 안 했어?>, <종이 집에 종이 엄마가> 이렇게 총 7편으로 묶여 있습니다. 일곱 편의 단편들은 모두 '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런 아이의 부모가 이야기 중심에서 갈등을 던지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동화의 흐름이나 결말과는 결이 다른 이야기들입니다. 기괴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 단편들이 던지는 메시지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혀를 사왔지>, <돌 씹어 먹는 아이>가 단편 중에서도 많이 알려진 단편이지만, 이번엔 잘 알려지지 않은 <종이 집에 종이 엄마가>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이야기는 주인공 미솔이 윤지네 집에서 윤지 엄마와 함께 종이접기를 하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미솔은 어렸을 때, 할머니 집에 버려졌습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미솔을 가졌던 엄마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미솔을 할머니 집에 버리고 말죠. 엄마는 미솔을 두고 '끔찍한 일'이었다고 회상합니다. 그 말은 아직도 미솔의 마음 한 켠에 못이 되어 박혀 있죠. 윤지가 '소원'이었다는 윤지 엄마의 말에 미솔은 엄마의 말을 다시 떠올립니다. 엄마의 말을 떠올리는 미솔의 모습 어디에서도 감정은 느껴지질 않습니다.


윤지의 엄마는 지병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 윤지 엄마는 자신이 죽더라도 윤지와 함께 해주길 미솔에게 부탁합니다. 미솔은 윤지 엄마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듣고도 동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윤지 앞에서 내색하지 않는 윤지 엄마의 말과 행동에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뒷받침되지 않은 미솔의 상황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한편, 윤지는 자신 앞에서 엄마의 죽음을 거침없이 말하는 미솔에게 화가 납니다. 미솔도 화가 납니다. 자신은 단지 윤지 엄마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했을 뿐인데 자신에게 화를 내는 미솔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미솔에게 '죽음'은 대수롭지 않은 일입니다. 가수가 꿈이었던 엄마에게 미솔은 걸림돌이었습니다. 엄마는 그런 미솔을 단 한 번도 사랑으로 대한 적이 없었습니다. 할머니 집에 미솔을 버리고 간 날에도 그랬죠. 마치 미솔은 버려진 '멀쩡한' 장롱 같았습니다. 가수의 꿈을 위해 떠나려는 엄마가 챙기는 물건들에 어린 미솔은 없었으니까요. 미솔은 장롱이나 냉장고와 같이 버려져야 할 구질구질한 물건에 불과합니다.


"애 엄마는 노래하면 안 돼?", "설명하려면 복잡해. 게다가 내가 어릴 때 널 낳았다는 게 알려지면 너도 별로 좋지 않을 거야. 그러니 너는 말이야, '나는 혼자다.' 생각하고 강하게 살아가면 돼. 한번 말해 봐. 뭐라고?", "나는 혼자다.", "그래 그거야." (148쪽)


미솔은 엄마가 죽었다고 생각하기로 합니다. 미솔의 엄마도 자신이 곧 죽을 거라고 할머니께 거짓말하라고 했으니까요. 그렇게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죽어버린 아빠,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라는 엄마 때문에 미솔에게 '죽음'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죽음이 그토록 슬픈 일인지, 화가 날 일인지 조차 가늠하지 못했죠. 결국 윤지의 엄마는 돌아가십니다. 미솔에게도 윤지의 엄마는 또 다른 엄마와 다름없었습니다. 기댈 곳 없었던 미솔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게 종이 엄마, 윤지 엄마였으니까요. 미솔은 종이 엄마의 죽음을 통해 죽음에 대한 슬픔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해야 하는 엄마에 대해서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솔의 엄마가 미솔을 찾아옵니다. 갑자기 찾아온 엄마는 미솔을 데리고 할머니 집으로 갑니다. 그런데 미솔이 살고 있는 할머니 집이 아닙니다. 엄마 말로는, '진짜 할머니 집'입니다. 미솔이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미솔의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갔던 그 집은 친할머니 집이 아닙니다. 미솔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할머니였죠. 미솔은 엄마에게 자신을 집으로 데려다주라고 반복할 뿐입니다.


"지금 네 할머니 말이야, 이상한 점 없었어?", "청소를 엄청 열심히 해.", "널 굶긴다거나 술 마시고 린다거나 그런 건?", "날 굶긴 건 엄마잖아. 술을 마신 것도, 집에 혼자 내버려 둔 것도." (163쪽)



집에 가겠다는 미솔의 말에 미솔의 엄마는 '거기는 네 집이 아니라니까.'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미솔은 엄마에게 되묻죠. '그럼 어디가 내 집인데?'라고 말입니다. 강력한 메타포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 글에서 우리는 가족의 의미, 역할들을 미솔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겠습니다. 미솔이 말하는 '집'이란 곧, 가족을 말합니다. 미솔이 묻는 집의 위치는 다시 말하면, 가족의 의미를 묻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의 머리를 땋아주고 손톱도 다듬어 주고, 함께 놀아주고 종이접기도 같이 해주던 윤지의 엄마에게서 피붙이도 아닌 미솔을 마음으로 품은 낯선 할머니에게서 미솔은 비로소 가족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버려진 '멀쩡한' 장롱이라고 생각한 엄마가 아니라 말입니다.


함께 읽기 껄끄러운 주제일 수 있겠습니다. 낯선 주제와 음산한 플롯으로 아이들에게 거부반응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돌 씹어 먹는 아이> 속 이야기들은 곱씹을수록 쓴 맛이 나는 동화입니다. 아이들이 꼭 권선징악의 이야기가 아니라, 혹은 해피엔딩, 어쩌면 동화에서 가장 많이 활용하는 무던하고 서정적인 열린 결말 형태가 아닌 뒷맛이 씁쓸한 동화를 통해 우리 주변의 소외되고 어두운 현실을 발견하고 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의미 있는 발자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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