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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적인튀김요리 Jan 21. 2022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여행

스물아홉 번째 책 <불량한 자전거 여행>

<깔끔하게 꽂는 책꽂이>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작품을 선생님의 관점에서 읽고 소개합니다. 주변에 책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지루하다는 이유로 혹은 길거나 어렵다는 이유로 멀리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공감하며 천천히 그리고 끝까지 읽어보세요. 그러면 아이들은 분명, 그다음의 책을 스스로 찾아 나설 겁니다.



여행은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삶에서 살짝 벗어나 자신을 조명하기에 좋은 방법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여행의 이유 중에 '도피'는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특히,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걷거나 큰 산을 넘거나 숨 끝까지 자전거를 타며 여행하는 일은 여행 중에서도 더욱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과 부단히 싸우면서 처절해지고 좌절하고 혹은 극복하면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요. 저는 자전거를 좋아하지 않아 걷는 편이지만, <불량한 자전거 여행>은 '자전거'를 택한 여행입니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말이죠.


주인공 호진은 엄마가 닮으면 큰일 난다고 겁주던 삼촌을 따라 자전거 여행에 나섰습니다. 처음부터 자전거 여행인 줄 알고 삼촌과 함께 한 건 아니고 말하자면 사연이 깁니다. 어쨌든 호진은 가출을 해서 삼촌을 따라 길로 나섰습니다. 광주에서 출발해 미시령을 지나 통일전망대에서 순례를 마치는 11박 12일의 여행입니다. 호진과 함께 자전거 여행에 참여한 인물들은 여러 명입니다. 호진은 각자의 사연을 가진 이들과의 여행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방법 혹은 방향을 배워갑니다. <불량한 자전거 여행>은 마지막 통일전망대까지 각자의 자전거를 타고 분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실감 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각자의 이야기보다 자전거를 타고 나아가는 그 모습 자체를 그려냅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방향은 같지만, 그 마음의 시작점과 생각의 종착지는 모두가 다르니까요.


희정은 자전거가 정말 싫지만 완주증을 받아야만 유학길에 오를 수 있습니다. 중간에 쓰러지기까지 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끝까지 완주를 하죠. 영우 아저씨는 실업자가 되어 아내 몰래 여행을 떠난 알콜 중독자입니다. 영우 아저씨는 술의 유혹을 견뎌가며, 힘차게 페달질을 합니다. 대안학교에 다니면서 '여행하기' 숙제로 여행에 참여한 은영 누나는 따돌림으로 일반 학교와 멀어진 학생입니다. 그 상처는 여전히 은영에게 아주 깊게 남아 있죠. 리나와 웨인 외국인 커플은 자전거로 세계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둘은 이 세계여행이 끝나면, 결혼을 할지 말지 결정할 계획입니다. 큰 수술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자전거 여행길에 오른 병진 아저씨는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여행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게, 삶이든 여행이든 말이죠. 춘천교대 2학년이라는 지은이 누나는 철인 3종 경기 우승이 꿈입니다. 교대생으로서 존경스러우면서도 어쩌면 환영받지 않는 취미를 가진 지은이 겪었을 상처들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곧 군입대를 앞두고 여행에 참여한 동혁은 편지를 쓰겠다며 이번 자전거 여행 동기들의 주소들을 일일이 받아 적어두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여행에 함께하게 된 영규. 홀로 할머니를 돌보면서도 변변한 직장을 잡지 못해 고된 삶을 살아가는 영규 아저씨입니다. 영규도 우연한 사연으로 마지막 여행 참가자가 되어 자전거 페달을 굴립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주인공 호진. 앞서 긴 사연이라고 갈음했던 호진이 여행을 떠난 사연은 엄마와 아빠의 이혼입니다. 호진의 엄마와 아빠는 이혼을 앞두고 있습니다. 호진은 그런 엄마와 아빠의 결정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집을 뛰쳐나온 호진이 선택한 곳은 삼촌이었습니다. 삼촌은 호진에게 여행을 제안했고, 그렇게 호진은 삼촌과 함께 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전거 여행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호진이까지 이유야 어쨌든 같은 여행길에 오른 모든 사람들은 이 자전거 여행길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각자 어떤 고민을 자전거에 싣고 달렸을까요? 그리고 그 고민의 결과는 무엇이었을까요?


"아무 생각 말고 자전거만 타. 지금 너한테는 이게 필요해." (108쪽)



<불량한 자전거 여행>은 호진은 엄마와 아빠를 바로 이어지는 자전거 여행길에 초대하면서 결말을 짓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둘이 함께 하는 건 서로 모르게, 호진은 빠진 채 말입니다. 호진이 엄마와 아빠를 이 자전거 여행길 위로 초대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어쩌면, "아무 생각 말고 자전거만 타. 지금 너한테는 이게 필요해"라고 말해주었던 삼촌의 말처럼 엄마와 아빠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자전거를 타며 곱씹는 자신만의 시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녔을까요.


'서울 출발. 현재 수원성에서 쉬고 있음. 아주버님과 형님 잔디밭에 누워 버렸음. 끝까지 잘 데리고 가겠음.' (224쪽)


서두에서 여행의 이유를 '도피'로 꼽았습니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여행은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삶을 정면에서 곧장 '마주하는 시간'입니다. 삶의 일정한 속도에서 잠깐 벗어나 삶 속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바라보고 자신에게 당면한 문제, 과제 등을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불량한 자전거 여행> 속 여행 참가자들이 그랬듯, 아이들도 우리들도 여행을 통해 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들이 주어지기를 바라 봅니다. 또, 책을 읽고 여행을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뒷 이야기가 궁금한 이 책은 다행히, 10년만에 2편이 출판되었습니다. 호진이가 엄마와 아빠에게 처방한 '자전거 여행' 처방전(?)이 제대로 먹혀들었을지, 그 이야기가 2편에 담겨 있습니다. 2편을 읽고 나니 3편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도 들더군요. 아이들과 함께 2편까지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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