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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적인튀김요리 Feb 17. 2022

여전히 사건, 4.3

서른다섯 번째 책 <빗창>

<깔끔하게 꽂는 책꽂이>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작품을 선생님의 관점에서 읽고 소개합니다. 주변에 책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지루하다는 이유로 혹은 길거나 어렵다는 이유로 멀리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공감하며 천천히 그리고 끝까지 읽어보세요. 그러면 아이들은 분명, 그다음의 책을 스스로 찾아 나설 겁니다.



제주 4.3은 1947년 3월 1일 삼일절 기념행사에서 발생한 발포 사건으로 희생자가 발생하면서 시작됩니다. 발포 사건 이후 제주도민들은 경찰의 만행을 규탄하며, 사과를 요구하는 민중항쟁을 벌이기 시작하죠. 이를 기회로 삼은 좌파 세력인 남조선노동당은 성난 민심을 이용해 1948년 4월 3일, 무장대 반란을 일으킵니다.


무장대 반란은 경찰과 민간인의 희생을 또다시 낳았죠. 이념 갈등으로 격화된 4.3은 이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5.10 총선거를 앞두고 있던 터에 제주도가 이념 갈등의 전쟁터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5.10 총선을 거부했던 유일한 지역이 제주인 이유입니다. 이후, 8월 15일 대한민국 최초의 정부가 수립되었고 제주도에는 초토화 작전이 내려집니다. 초토화 작전으로 좌익세력, 민간인 할 것 없이 모조리 학살당하면서 제주 4.3이라고 불리는 지금의 4.3의 결과를 낳게 되었죠. 희생자들은 약 8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현재 추정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제주에서는 4.3으로 인한 후유증은 씻기지 않았죠.


오늘 소개할 <빗창>은 2020년, 창비 출판사에서 만들어진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6.10 항쟁, 제주 4.3)'으로 김홍모 만화가의 작품입니다. 만화로 그려진 4.3의 이야기에 글이 두려운 아이들 역시 그림을 함께 읽으며 4.3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부담이 덜한 책입니다. <빗창>은 해녀 시위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4.3을 들려줍니다. 제목인 '빗창' 역시 바위에 붙은 전복을 떼어내는 해녀의 도구를 일컫는 말입니다. 오래전부터 가장의 역할을 하던 제주의 해녀들은 역사적으로 억세고 강인한 인물들입니다.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시위를 벌이고 항쟁에 앞장서던 인물들이죠. 해녀들은 삼일절 발포 사건에 대해서도 좌시하지 않습니다. 앞장서서 빗창을 들고선 경찰과 중앙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죠.


<빗창>은 해방 전, 해녀 시위부터 앞서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한 삼일절 발포 사건, 민관 총파업, 4.3, 오라리 방화 사건, 5.10 총선거 거부, 초토화 작전까지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막막한 사건들 속에서 일본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회복될 겨를 없이 이념갈등이 또다시 우리를 갈라놓은 슬픔과 그리고 그 속에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며 무고한 희생에 분노하고 끝내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제주도민들의 슬픔을 그려내고 있죠. 김홍모 만화가 특유의 수묵 붓터치는 그 슬픔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짐작하게 해 줍니다.


제주로 들어온 서북청년회의 만행은 차마 말로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들은 미군정의 비호를 받으며 경찰과 행정기관에서 일했고 '좌익 척결'이라는 이름 아래 테러를 일삼았다. 미군정과 군정 경찰, 서북청년회에 대한 공포와 분노가 제주 전체에 휘몰아치고 있었다.


<빗창>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련화의 가족 앞에 다시 나타난 친일파 이자한은 독립 이후에도 약삭빠르게 경찰의 지위를 유지한 인물입니다. 초토화 작전으로 총을 겨누며 련화의 가족을 찾아온 이자한의 무리는 련화에게 옷을 벗고 바위까지 뛰어갔다 오면 옆의 가족들은 살려주겠다는 모욕적인 말을 합니다. 련화는 옷을 모두 벗은 채 바위를 향해 달리고 그런 련화에게 이자한의 무리는 비웃으며, 망설임 없이 총을 쏩니다. 총을 맞은 련화의 몸에서는 붉은 동백꽃이 피어나죠. 나머지 련화의 가족들의 몸에서도 총소리와 함께 동백꽃들이 피어납니다. 이는 각색이 포함된 극적인 사건이지만 이러한 비상식적이고 비인간적인 학살의 사례들은 4.3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이미 많이 드러난 내용이기도 합니다. 련화는 죽어가며, 해방 이후 꿈꿨던 세상에 대해 떠올리며 결국 눈을 감습니다. 해방 이후 사람들이 함께 꿈꾼 세상은 이런 모습이 아녔을 테니까요.


"왜놈들한테 해방되민 어떤 세상을 만들코 생각해봔?", "물질행 캐낸 거 고생헌 만큼 제값 받는 세상!", "그래! 부당한 착취가 없는 세상!", "맨날 힘들게 고생허는 여자랜 괄시허지 않는 세상!", "하하, 좋다!", "억압과 착취가 없고 모두가 평등허게 살 수 있는 세상이라... 왠지 심장이 뜨거와점신디?"



4.3은 여러 가지 이유로 대한민국 교육의 주된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현기영 작가의 <순이삼촌>, 강요백 화백의 <동백꽃 지다>, 권정생 작가의 <나무 도장>, 오멸 감독의 <지슬> 등 외면받던 4.3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한 각계의 노력이 지속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점차 교육에서도 4.3은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4.3은 봉기, 항쟁, 폭동, 사태 등 올바른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중립적인 이름인 '사건'이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전히, 4.3은 진행 중입니다.


4.3의 후유증이 여전한 제주에서 선생님으로 근무하는 저에게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오는 주제이지만, 다른 지역의 선생님들께서도 4.3에 대해 좀 더 들여봐 주시고 또, 아이들에게 전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자 욕심입니다. 슬픈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말이죠. 결국 제주 4.3 또, 오늘 소개한 책 <빗창>을 통해 우리가 읽어내야 할 것은 잘못의 모습이나 잘못의 주체가 아니라 제주가 가지고 있는 슬픈 역사, 어쩌면 우리나라가 겪은 슬픈 역사에 대한 공감적인 이해와 기억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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