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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적인튀김요리 May 19. 2022

소외와의 새로운 만남

서른일곱 번째 책 <원통 안의 소녀>

<깔끔하게 꽂는 책꽂이>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작품을 선생님의 관점에서 읽고 소개합니다. 주변에 책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지루하다는 이유로 혹은 길거나 어렵다는 이유로 멀리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공감하며 천천히 그리고 끝까지 읽어보세요. 그러면 아이들은 분명, 그다음의 책을 스스로 찾아 나설 겁니다.



김초엽 작가는 SF 소설을 주로 쓰고 있는 작가입니다. 누적 10만 부가 팔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죠. SF적인 배경 설정을 통해 어쩌면 그 먼 미래에서도 채워지지 않은 채 지속될 우리들의 고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입니다. <원통 안의 소녀> 역시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미래 사회, 소외된 두 주인공 원통 안에 살아야 하는 운명의 한 소녀, 지유와 목소리로만 대화할 수 있는 노아의 이야기죠. 차별과 소외, 어쩌면 장애에 대한 이슈는 <원통 안의 소녀> 속 완벽해 보이는 미래 사회에서도 여전히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여전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먼 미래, 완벽한 기후 통제가 가능한 미래 도시에 살고 있는 지유는 '프로텍터'라는 원통형 차량을 타고 다닙니다.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는 대기오염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나노봇 '에어로이드'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 때문입니다. 에어로이드가 대기에 뿌려져 공기를 정화하고 대기와 날씨를 제어하게 된 후, 지유를 포함한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이 에어로이드에 대한 이상 반응을 일으켰고, 프로텍터라는 차량 없이는 밖에 다닐 수가 없게 된 것이었죠.


지유는 플라스틱 원통, 프로텍터를 타고 다니는 소녀로 방송을 출연하게 되면서 유명세(?)를 얻습니다. '원통 안의 소녀'라고 불리죠.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동정의 눈빛을 보내고 온갖 불편한 시선과 관심을 보냅니다. 에어로이드는 많은 사람들에게 편리함과 안전함을 선물했지만 누군가에게는 차별과 소외를 부여한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유가 사고를 칩니다. 대기의 에어로이드를 뿜어내는 분사기를 망가뜨린 것이죠. 지유는 그 자리를 그냥 도망쳐 버립니다. 하지만 어떤 목소리가 지유를 따라오기 시작합니다. 거리 곳곳에 배치된 스피커를 통해 말이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어디선가 날씨를 조절할 수 있는 위치에서 근무하고 있는 '노아'입니다.


지유와 노아는 이 사건을 겪으며, 천천히 가까워집니다. 목소리로만 만날 수 있는 둘이지만 소외된 지유에게 노아는 오랜만에, 어쩌면 처음 만난 친구였으니까요. 지유는 노아와 가까워질수록 노아가 궁금해집니다. 함께 산책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죠. 하지만 노아의 목소리 외에는 알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노아는 만날 수가 없는 관계에 점점 지쳐가는 지유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습니다. 자신 역시 지유와 또 다른 모양으로 이 완벽한 사회에서 소외와 차별을 당하고 있음을 말이죠. 노아는 누군가의 의료용 클론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불량 클론입니다. 노아는 불량이라 신체에 대한 권리를 잃은 채, 뇌만 가상 세계에 접속된 채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신체는 인큐베이터에 갇혀 있습니다. 노아는 지유에게 위험한 그렇지만 지유만이 해줄 수 있는 부탁을 합니다. 자신을 인큐베이터에서 꺼내 달라는 부탁입니다.


완벽해 보이는 도시에 불완전한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떠나고 한 사람은 남겠지만, 노아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이 도시에서 오직 지유뿐이었다.




우리들 주변에도 다양한 요인들로 보통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어려움과 고통에 쉽게 다가가지 못합니다. 얼마 전, 코로나19로 도래한 언텍트 시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양한 이유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을 다루기 어려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저 역시 언텍트 시대를 통해 오히려 간편해진 일상들에 대해 이로 인해 소외될 사람들을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일상은 급격하게 언텍트의 형식으로 바뀌었고 수많은 편리함과 편안함, 안전함을 선물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몇몇은 소외되기 시작했죠. <원통 안의 소녀> 속에 그려진 미래 사회에서 만들어진 신기술에 의해 프로텍터에 의지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지유의 모습과 의료용 클론으로 정체성을 박탈당하는 노아의 모습은 현재의 사회에도 다른 모습으로 아프게 존재합니다.


<원통 안의 소녀>는 과학 기술이 가져다준 대다수를 위한 편리함과 편안함, 안전함 속에서 소외받고 있는 외로운 인물들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작점은 <원통 안의 소녀>처럼 어떤 하나의 과학 기술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떤 하나의 사소한 말과 행동일 수도 있죠. 우리는 따뜻한 마음을 품은 미래와 현재를 꿈꿔야 합니다. 정말, 어렵고 또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라 할지라도 누구도 소외받지 않고 외롭지 않은 그런 따뜻한 세상을 말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이 책을 천천히 읽으며 그런 따뜻한 미래를 그리고 또, 지금의 현재를 따뜻하게 다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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