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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적인튀김요리 Feb 09. 2023

동시를 제대로 함께 읽는 것

마흔네 번째 책 <동시집>


동시는 어린이의 마음과 생각을 담아낸 하나의 장르입니다. 함축적으로 아이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아이들이 따분하다고 느끼는 일상적인 순간을 새로운 순간으로 포착해 내는 특별한 장르이기도 하죠. 아이들은 동시를 읽으며 즐거워하고 시와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며, 화자에게 공감하기도 합니다. 또, 독특한 생각에 신기해하기도 하죠. 그렇지만 동시는 그림책, 글책만큼 온작품읽기나 한 학기 한 권 읽기의 대상, 추천 도서의 대상에서 주목받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동시 읽는 방법을 잘 모릅니다. 음미하기보다 쉽게 읽고 쉽게 잊는 경우가 많죠. 개인적으로도 책을 추천해 달라는 아이에게 동시집 <Z교시>를 추천해 줬는데 20분 만에 다 읽었다며 책을 쿨하게 반납하러 가던 뒷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비유적 표현을 배우기 위해서 혹은 동시를 쓰기 위해서 동시집을 다루기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더 자주 동시집을 마주했으면 좋겠습니다. 시 하나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웃기는 경험을 충분히 겪었으면 좋겠습니다. 시 한 편이 아이들 속에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가장 소중하게 읽은 나태주 시인의 <능금나무 아래>처럼 말입니다. 냉정한 이야기이지만, 국어 교과가 끼어들면 어렵습니다. 그냥 동시 자체를 그림책, 글책만큼 쉽게 고르고 읽을 수 있는 아이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전 글과는 달리 좋은 동시집을 소개하기 전에, 제가 아이들과 동시집을 읽는 방법을 공유해 볼까 합니다.


첫째, 낭송합니다. 소리 내어 읽으면 시어를 곱씹기 좋습니다. '문학의 밤'처럼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자리에 앉아 저만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소리 내 읽어도 좋습니다. 둘째, 동시집에서 마음에 드는 시를 딱 3편만 골라 봅니다. 보통 동시집에는 30~50편의 시가 실려 있습니다. 그중 3편만 고르는 겁니다. 4편도 안되고 2편도 안됩니다. 딱, 3편만 고릅니다. 열에 아홉은 마음에 드는 시가 많다며 고르기 어려워합니다. 귀엽고 한편으론 기특하지만 냉정하게 3편만 고르라고 엄포를 놓습니다. 고른 시에는 포스트잇을 붙여 둡니다. 셋째, 자신이 꼽은 3편의 시를 다시 읽고 포스트잇을 하나만 남기고 둘을 떼어내 봅니다. 그럼 가장 마음에 드는 시 하나만 남습니다. 둘을 떼어내며 중요한 물건을 내놓는 것처럼 앓는 소리를 내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넷째, 남은 시 하나를 필사하고 간단하게 마음에 남은 이유를 적습니다. 이유는 장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좋아하는 데는 딱히 이유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몇 번의 과정 끝에 고른 시라 그럴듯한 이유가 있는 편이 많습니다. 다섯째, 모여 앉아 필사한 시를 친구들 앞에서 낭송합니다. 그리고 마음에 들었던 이유를 소개합니다. 좋아하는 시는 겹치기도 하고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시가 엉뚱하게도 누군가에게는 가장 좋은 시가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마칩니다. 이후에 시화 그리기, 마음에 드는 부분 바꾸어 쓰기, 내가 좋아하는 시로 시집 만들기 등으로 더 나아갈 수 있지만 단지, 읽기로 했을 때는 그냥 읽고 마치는 게 좋습니다. 아이는 동시집의 30~50편 중 마지막까지 남은 시만큼은 적어도 열 번 읽었을 겁니다. 자꾸 함께 연습하면, 아이들 스스로도 할 수 있습니다. 동시집을 읽을 때는 매번 같은 방법으로 읽으면 됩니다.


<Z교시>는 신민규 작가의 동시집으로 시어를 재미나게 활용하고 아이들의 일상을 특별하게 포착했습니다. 무엇보다 재밌고 발칙한 동시집입니다. "잎은 꾸벅을 이용하여 꾸벅을 꾸벅 꾸벅은 꾸벅과 꾸벅이 꾸벅('Z교시' 중에서)" <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은 김창완 작가의 동시집으로 어린아이들의 마음과 생각을 소중하게 그려냈습니다. 아이들 마음을 소중하게 다루는 작가의 조심스러움이 느껴지는 동시집입니다. "망할 놈의 호랑이 어흥하고 울 줄 알았더니 순 엉터리로 울어서 진짜 놀랐다('호랑이' 중에서)" <팝콘 교실>은 문현식 작가의 동시집으로 교실 속 상황을 소재로 한 동시들을 담아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어쩌면 시원한 한 방이 느껴질 시도 있습니다. "체육 시간에 비가 내리면 교실은 감옥이 된다('감옥' 중에서)" <오리 돌멩이 오리>는 이안 작가의 동시집으로 시어를 정말 소중하게 다룬 동시들이 많습니다. 꾸준히 동시로 감동을 주는 작가의 힘이 느껴지는 동시집입니다. "할아버지는 의자가 아니라 으자 좀 갖다 다오 하시지 등이 다 빠져나간 할아버지 으자('의자' 중에서)" <은하수를 건넜다>는 김용택 작가의 동시집으로 자연을 대상으로 한 감각적인 동시들이 많습니다. 자연을 오래 보면 떠오르는 생각을 복잡하지 않게 아이들 눈높이에서 설명합니다. "우리 선생님은 살구를 못 따 먹게 해요 노랗게 익은 살구를 못 따 먹게 해요 다 익으면 따서 같이 나누어 먹재요('살구' 중에서)" <나한테 밑줄 한번 쳐 줄래>는 이준식 작가의 동시집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삶을 소재로 순수하게 동시를 담아냈습니다. 아이들 아이다운 모습을 훔쳐볼 수 있는 동시집입니다. "교과서나 문제집에만 밑줄 치지 말고 내가 축구하는 모습에도 밑줄 쳐 줄래('밑줄' 중에서)"



눈을 뜬다/책을 편다//빛이 시에 내리 꽂히면서/글자들을 한 움큼 움켜쥔다//빛이 책을 박차고 뛰어오른다/너의 눈으로 날아간다//눈알 속으로 풍덩 빠져든다/눈알 속에 빠진 글자들은 뇌로 헤엄쳐 간다//뇌는 글자들을 맛있게/굽고 튀기고 끓여서//심장에게 보낸다/심장이 꼭꼭 씹어 먹는다//책을 덮는다/눈을 감는다 (<Z교시> '시 읽는 과정')


이번 글의 마무리는 동시 '시 읽는 과정'으로 할까 합니다. 언뜻 섬뜩한 시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시가 들어와 비로소 향하는 곳이 심장이라는 것이 좋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린 동시집 외에도 아직 제가 채 읽어보지 못한 좋은 동시들은 정말 많습니다. 어떤 것이든 마냥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아이들과 함께 여러 동시를 읽고 또,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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