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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적인튀김요리 Feb 13. 2023

칠판에 붙은 손을 떼는 마법

마흔다섯 번째 책 <칠판에 딱 붙은 아이들>


6학년을 3년간 맡아 친구 관계가 점차 복잡다단해지는 아이들을 마주하며, 가장 안타까웠던 일은 '절교 유행'이었습니다.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모두가 믿고 있던 아이들끼리 단 하나의 사건으로 돌아서고 너무나도 쉽게 절교를 선언하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죠. 사건의 내막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기분이 상했다는 이유로 친구에게, 그렇게 친하게 지냈던 친구에게 단 한 번의 소명 기회조차 주질 않습니다. 다만, 카카오톡으로 '너랑 절교야.'라고 다섯 글자만 보내면 그만이죠. 결국, 절교 유행의 원인은 소통의 부재입니다. 꼬인 매듭을 풀기 위해 대화를 하는 대신 날이 선 가위로 잘라버리는 게 어쩌면, 아이들에겐 간단하고 쉬운 일처럼 느껴질 테니까요.


<칠판에 딱 붙은 아이들>은 칠판에 손이 딱 붙은 사실은,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시작됩니다. 박기웅, 박동훈, 박민수는 교실에서 '세 박자'라 불리는 친구들입니다. 한 마디로, 절친이죠. 하지만 지금은 '그 일'때문에 '절교' 상태입니다. 세 친구 사이에는 그렇게 이전과 달리 불편한 감정이 흐르고 있죠. 그런 세 박자의 두 손이 칠판에 딱 붙고 맙니다. 말도 섞기 싫고 또, 눈도 마주치기 싫은데 손이 칠판에 붙어 꼼짝없이 함께 있게 된 겁니다. 셋의 사정이야 어쨌든, 세 박자를 칠판에서 떼어 놓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렇게 세 박자를 칠판에서 떼어 놓기 위한 각계각층(?)의 노력이 시작됩니다. 친구들은 간지럼을 태워보기도 하고 어른들은 힘을 주어 셋을 떼어 보려 하지만 어렵죠. 구급대원, 학교를 지은 건설사까지 나서보지만 서로 책임만 미룰 뿐 딱히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사건은 해결되지 못한 채 대책 회의를 위해 교실의 사람들은 모두 교실을 빠져나가게 되고 교실에는 칠판에 붙은 세 박자만 남습니다. 적막이 내려앉은 교실에 세 박자는 서로 다른 곳을 보며, 말이 없습니다. 역시, 그 일 때문입니다.


이후로도 친구들, 박사님, 무당, 신부님, 스님, 기자, 경찰 심지어는 보건 당국까지 나서 세 박자의 칠판 사건에 매달립니다. 물론, 해결이 되지는 않았지만요. 그 사이 셋은 조금씩 자연스럽게 말을 트기 시작합니다. 쿡쿡 함께 웃기도 하고 등을 긁어달라고도 하고, 또 농담도 하고. 다시 세 박자로 돌아온 것만 같습니다. 그렇게 셋은 교실에 남아 속마음을 나누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일들도 마구 털어놓죠. 세 박자는 정말 친한 친구였지만, 이렇게 마음을 터놓고 소통한 건 처음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일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눕니다. 그리고 그 일에는 사소한 오해가 있었고 정말 별 거 아닌 일이었음을 알게 되죠. 정말, 허무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절교를 선언할 것이 아니라 한 번만이라도 대화를 시도했다면, 불편한 감정을 나눌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요.


"진작 이렇게 얘기 나눌걸!" 그 순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칠판에 딱 붙어 있는 세 아이의 손바닥이 누가 솜털로 살살 건드리는 것처럼 간질간질했다. 기웅이, 동훈이, 민수 눈이 점점 커졌다. 세 아이는 칠판에 붙은 손을 천천히 움직였다.



거짓말처럼 칠판에 손이 붙어 버린 이유는 결국, 오해로 멀어져 버린 셋을 다시 붙이기 위함이었을 겁니다. 우리도 아이들도 사소한 일로 사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왜 싸웠는지도 모를 작은 이유로 가장 소중했던 사람들에게 쉽게 돌아서곤 합니다. 결국 그들에게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소통입니다. 주변의 억지스러운 도움이나 충고는 사실 큰 의미가 없죠. 아무도 떼지 못한 아이들의 손을 떼게 만들었던 주문, "진작 이렇게 얘기 나눌걸!"처럼 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곳곳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여기저기 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어느 지하철에서는 대학생 네 명이 의자에 두 손이 딱 붙은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중략) 이런 일이 생긴 이유를 찾아서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절대 혼자서 붙어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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