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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예훈 Apr 18. 2022

박테리아 좀 보고 배워라

과학과 일상의 세포연접 (1)

"포기할래", "그만할래", "못하겠어", "나는 안될 거야", "시간 낭비가 아닐까?". 이런 말들을 어느새인가부터 서슴없이 내뱉는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근성 때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자기 합리화와 변명으로 하나의 일에 시작만 있을 뿐 어떠한 엔딩도 맞이하지 못한다. 조금의 어려움을 마주치면 그것이 나의 한계라 착각하고 도망치는 것이다. 이런 성향 때문에 자기소개서에서 내게 제일 어려운 질문은 취미를 묻는 것이다. 한참을 빈칸을 노려보며 생각하다 과거에 포기했던 몇몇 활동 중에 하나를 무작위로 적어 넘긴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중, 나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위안을 얻었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미생물학을 공부하는 중, 박테리아를 만나게 된다. 박테리아, 즉 세균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름이자 별로 반갑지는 않은 존재이다. 세균이라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는 무엇인가? '손 씻기', '질병', '항생제', '더럽다' 등 부정적인 의미가 대다수이다. 이러한 미생물에게는 딱히 얻을 점은 보이지 않지만 어이없게도 이러한 작은 미생물에게도 위로는 존재했다. 박테리아는 적절한 환경과 영양분이 있으면 급속도로 증식하고 생장하지만 대사에 필요한 요소들이 고갈되기 시작하면 생장속도는 점점 느려진다. 이러한 습성을 가진 박테리아는 다양한 종류가 존재하는데 그중에 하나인 그람 양성균에는 내생 포자를 형성하는 균이 있다. 내생 포자는 휴면 세포로, 단어 그대로 활동하지 않는 세포를 뜻한다. 이 내생 포자는 좋은 환경에서는 웅크리고 있다가 영웅처럼 위기의 상황에 존재감을 드러낸다. 부적합한 환경 속에서 세포 안에 포자를 형성해 염색체를 복제하고 견고한 벽을 형성해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다. 내생 포자는 수분도 거의 없고 물질대사도 하지 않는 상태로 100년 이상을 휴면 상태를 유지한다. 그러다 주변 환경이 회복이 되면 수분을 흡수해 다시 세균으로 분열하는 형식이다.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모습이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감을 찾기 힘들어진 사회에 하루를 '살아가는 게' 아닌 '버티는' 나의 모습과 말이다. 내생 포자와 '똑같다'가 아닌 '비슷하다'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내생 포자에게 포기라는 단어는 없다. 110도씨의 고온까지 버티며 화학 물질 등 극한 환경의 위협에도 버틴다. 툭하면 지레 포기하는 나는 1μm 크기의 아주 작은 박테리아보다, 손 씻기만 해도 제거될 수 있는 박테리아보다 못한 놈인 것이다. 매일 '그만두자'라는 충동이 머릿속에 매몰치 더라도 버티자. 또 버티자. 하나의 세포로 구성된 한낱 박테리아도 내일을 살기 위해 해로운 조건 속에서 악착같이 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는데, 60조나 되는 세포로 구성된 인간이 포기하면 되겠는가. 내생 포자가 물을 만나 다시 세균으로 분열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를 향해 흐를 물을 기다리며 버티자. 그러면 우리의 하루에도 꽃이 필 날이 올 것이다.


오늘도 나는 나에게 물어본다. "내가 박테리아보다 못한 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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