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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흐 Apr 20. 2022

논리의 기준은 무엇이며 누가 정한 것일까?

익숙하지만 생소한 질문 (1)

"논리의 기준은 무엇이며 누가 정한 것일까?"


친구와 한창 보편적인 옷 색깔에 대해 토론을 한 후, 뜬금없이 머릿속에 기원전 445년쯤에 살던 철학자 아저씨가 내뱉을만한 질문이 떠올랐다. 상대방의 말에 반발하기 위해 나의 의견을 논리 정연하게 정리하고 주장하는 모습에 무엇에 기반해서 내가 이렇게 내뱉는 것일까 라는 의구심이 든 것이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낮은 단위에서 고차원적인 학문에 이르기까지 ‘논리’는 사회라는 유기체에서 더는 분해할 수 없는 단위,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원자와 같다. 이렇듯 논리는 강한 사회적 보편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만큼 오류 또한 만연하다. 논리는 매우 정교하고 복잡하기에 아주 조그마한 변화에도 언어의 모호성에 의해 단어나 문장의 뜻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며 쉽게 모순되는 것이다. 익숙함에 속아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말에도 논리적 오류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기도 한다. 또한 사람들이 말에 논리적 오류를 범했을 경우 이질적인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점을 보면 확실한 것은 논리에는 기준이 있다는 것이다.

 

몇 시간을 고민하고 나의 논리를 이용해 논리의 기준을 파보았다. 결론은 단순했다. 논리의 기준이라는 것은 소위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의 배움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며 수천 년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축적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논리적 기준은 사회의 통념이 되어, 다음 세대에게 사회화의 과정을 통해 전수된다는 것이다. “저 독약은 빨게, 토마토도 빨간색이기에 먹으면 죽어”라는 문장이 있다. 토마토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둘 다 빨간색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하나가 그러하면 다른 하나도 똑같이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장을 보면 거의 모든 사람은 논리적으로 크게 잘못됨을 바로 눈치챌 수 있다. 그 이유는 우리는 빨간색 토마토를 먹어도 몸에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이미 배웠고 전해져 왔기 때문에 이 문장이 논리적 오류를 범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그동안 인류가 쌓아온 지식과 문화가 논리의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배움의 정도에 따라 기준이 정해지는 것이다. 마치 토론 대첩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한 명의 교수에게 여러 대학생이 밀리는 것처럼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더욱 고차원적인 논리를 펼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결론을 고민하기에 앞서 '논리의 기준은 무엇이다'라는 답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한 단어는커녕 500개가 넘는 단어를 사용해가며 답을 찾아갔다. 심지어 질문에 대한 답을 맞혔다기보다는 무질서하게 흩어져있는 이미 알고 있던 지식의 파편을 정렬했을 뿐이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앞서 본문에 말했듯이 논리는 수 천년의 사회적 합의가 쌓이고 쌓여 여기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그렇기에 어떻게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논리는 단순하고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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