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도 규정하지 말 것.
영국의 심리학자 Hans Eysenck는 내향성과 외향성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양향성(ambiversion)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짧지 않은 (내 인생에 할애할 수 있는 기준상의 기간에 비해 너무 길었던) 회사 생활을 하면서 매일을 말문을 막히게 하는 질문을 받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이없던 한마디는
개고생 해서 내놓은 결과물을 얼굴색 하나 안 바뀌고 자신의 공이라 말하는 사수의 거짓말이 아니었다.
자신의 실수를 나에게 떠넘기며 “해나씨는 뇌가 없어요?”라고 물었던 질문 역시 아니었다. (물론 그녀의 눈은 나를 바라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들으라는 듯 큰소리치는 모습이 연민을 느끼게도 했다.)
그저 무언가를 규정하는 꼰대의 경험을 빙자한 비판이었다.
“너는 내성적이잖아. 안 그래? 너 내성적인 성격이잖아. 너는 내성적인 성격이야. 내가 잘 알아.”
후회되는 건 그 순간 일을 크게 만들지 말자라는 생각 하나로 그냥 웃었던 내 선택이다. 암묵적으로 동의가 됐으리라.
사실 속에서는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터지고 있었다.
‘네 맘대로 정의 내릴 거라면 동의를 얻지 말란 말이다!!!!!!!!!!!’
무지개는 일곱 가지 색이라고 배웠을 테지만, 가시광선을 초월하는 더 은은한 색조와 명암이 있기에 실제 색상은 그보다 훨씬 많다. 그리고 아름답다.
다양한 삶을 살아볼 가치를 잃고 싶지 않다.
남들이 사는 일반적인 삶 또한 귀하고 귀할 테니까.
외향성과 내향성 사이를 영원히 왕복하면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균형을 얻을 수 있다. 넘치는 활력과 자아 탐험 두 가지는 모두 중요하며, 반드시 행동을 보여야 할 때도 반드시 침묵해야 할 때도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살아 있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양향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주체다. -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