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사랑을 사랑하는 것을 사랑한다.
참 좋다.
몽롱한 기분으로 일어나 조금은 쌀쌀한 듯한 거실에 나가 포트에 물을 끓인다.
라디오를 켠 후 외국 친구들과 대화하며 그들의 글에 답하곤 한다.
메신저상에 한글이 보다 영어가 많아지는 날들이 흘러 한글이 자취를 감췄던 어느 날.
내 안일하고도 안이하며, 지리멸렬한 인간관계에 작은 숨과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여과지로 내린 커피를 훌짝홀짝 거린다.
김창완의 아침창과 함께 올드하고 화려하지 않은 곡들과 공간을 채워간다.
잠들기 전 읽었던 책을 펼쳐 어제와 오늘의 경계를 이어가고, 씨네타운으로 영화를 듣는다.
굳이 말을 토해내지 않아도 채워지는 시간들에
감히 감사함을 말한다.
이 세상에 살아남고 싶어 발버둥 치던 치열하고 옹졸한 시간을 정리하겠다고 했을 때
그렇게 하라며 따뜻하게, 더욱 가까이 끌어안아주던 너의 어깨를 기억한다.
매순간을 불안함에 떠밀려 발을 내디뎌야 했던 나에게
'그대가 있기에'라는 한마디와 함께 온통 내 사진으로 덮인 너의 메신저 프로필은
깊은 곳으로부터 따뜻함이 퍼지도록 해준다.
시끄러운 사회다.
미투 운동으로 부당성을 토해내는 흐름과 취업, 비혼, 페미니즘 등 억압된 자아들이 수면 위에서 춤춘다.
삼십 대라는 나이가 참으로도 어려운 것이, 많은 화자들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게 하였다.
그저 외면하고 다른 면에 서서 미화시키려 해봐도 머리보다 빠르게 밀려오는 아픔에 온몸이 아려온다.
머리가 지끈거려 똑바로 서있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그런 나에게 힘을 빼고 기댈 수 있게 해주는 너라는 존재는 위안이고 안식처이다.
하루를 따라 찾아온 빛에 반가움이 들 수 있는 것,
그 찰나가 밀레의 그림에 멈춰있음을 깨달았다는 것.
반 고흐로부터 사랑받았던 그의 시선을 공감할 수 있음에
감히 감사함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