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성장하고 있구나
그는 나보다 5살 어리다.
그와 나는 교육과정이 다를 뿐 아니라, 문화와 시대 또한 다르다.
게다가 예술을 전공하고 그 삶 속에서의 사회생활을 이루고 있는 나와 다르게 그는 한국이 아닌 타지에서 또 다른 사회생활을 구축해왔다. 어느 쪽도 일반화할 수 없는 우리는 결혼이라는 약속을 시행하기에는 많은 의심이 따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너무나 앳된 얼굴의 그는 주변의 걱정을 부르기 좋았고, 제멋대로이긴 하지만 매일을 불안과 자책과 함께하는 나는 온전한 신뢰를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닌, 두 사람이라는 공동체는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그는 자신의 노동에 있어서 그러려니 하던 안일한 자세를 버리고 합당한 대가를 요구하였다. (이 과정에 있어서의 결단은 인정하고, 존중한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불안함을 내비치지 않으려 이불 속에서 매일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하고 심지어 울기까지 했어야 했다.)
내가 먹여살리면 되지
어려울 건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 그를 선택한 순간부터 비어있는 내 심적 공간을 따뜻하게 데워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의지력 약한 나를 물질적으로 덮어주는 것이 아닌, 나라는 인간으로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줄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러한 과정의 반복에서 나는 점차 그의 행동에 영향받지 않게 되었고, 다시 초심을 찾게 되었다. 그가 상사와의 트러블로 그냥 집에 들어왔을 때 우린 더 맛있는 음식을 나눴고, 그가 갖고 싶은 개인 시간을 충분히 주었다. 그리고 혹시 모를 나중을 위해 현재 적자가 나는 강의를 과감하게 정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어떤 일이든 찾아 나섰다. 스무 살 초반에나 하던 카페 알바도 알아보고 친구들의 삶을 들으며 방법을 찾아 나서는데 부지런을 떨었다. 결과적으론 나는 질질 끌고 있던 강의보다 더 윤택하고 좀 더 내 꿈에 가까운 프리랜서 작곡가로서의 일거리들을 정기적으로 받을 수 있게 되었고, 그는 합당한 대가와 두 번의 월급 인상을 4개월 만에 이뤄냈다. 물론 이 상황들이야 언제든 변하고 지나가는 흐름 중 하나이니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결과는 우리는 책임감을 배웠다.
그래, 책임감
그는 책임감 하나로 나흘의 고된 시간을 버텨냈다.
갑자기 해결해야 할 일이 주어졌을 때 그는 집을 오가며 씻는 시간 1시간과 4시간의 수면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일에 매진했다. 정말 너무한다 싶을 사건들이 터지는 와중에 그래도 그는 그 시간을 온전히 감당했다.
회사에서 숙식을 얘기하는 그를 옆에서 보기 안타까웠다. 문제는 철없게도 평생을 혼자 살아왔고 침실에 이르렀으면서 고작 5개월의 익숙함의 부재로 잠 못 이루는 나였다. 까짓것이라는 생각으로 잠을 포기하고 그와의 연락을 간간이 이어가던 중, 현관문이 열렸다. "못 자는 거 같아서 왔어. 조금이라도 자자."
놀람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도 전에 잠들 수밖에 없던 새벽시간, 나도 모르게 눈을 떴을 때 그는 이미 깨어 예민한 내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암막 커튼을 조심히 끌어모으는 중이었다.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고 춥다며 이불을 올려 덮어주고 입 맞추고 나간 그는 종일 피곤함과 싸웠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8시가 되어서야 조용히 현관문을 연 그는 내가 푹 빠져있는 브라우니와 초코롤 과자를 품에 안고 있었다. 기절하듯이 쓰러져 잔 후, 그는 또 한 번 우리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식당에 가자 했다.
부족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은 적당한 시간의 드라이브와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음식. 게다가 웨딩촬영 때의 초록 초록했던 곳은 어느새 붉게 노랗게 물들어 서로의 거리를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조금은 '다른 사람들처럼' 살고 있는 우리가 대견했다.
그렇게 서로를 마주하고 인도에서의 추억들을 주고받으며 다음 인도 여행 땐 더 잘하자는 계획을 나눴다.
내일에 대한 기대를 만들었다.
내가 이렇게 로맨틱한 사람과 함께 한다니. 누군가 내가 느끼는 마음의 황홀감을 하늘에 그려놓은 듯하다.
좋다, 비 오는 가을.
조금 더 당신의 마음이 지쳤을 때, 그때는 지혜롭게 우리를 속박하는 것들을 내려놓고 떠나자.
생애 단 한 번밖에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의 결혼식에서 밤새 신나게 춤췄던 것처럼, 낯선 시선 속에 손깍지를 더 단단히 했었던 그 때로 가자. 걱정 또한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