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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연속나비 Jul 11. 2017

My Favourite Things

온전히 내 시간 즐기기



꽤 많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리스트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역시 무언가를 읽는 행위이다. 소설이 될 수도, 스마트폰 기사가 될 수도, 하다못해 집에 들어오는 길에 별 생각없이 구입한 잡지가 될 수도 있다.
 내가 말하고자하는건 '무언가'가 중요하기보다는 그 행위에 대한 온전한 시간 투자인데 이를 성공하기위해선 나름의 룰이 있다.

준비

장소는 내 방, 침대 위.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
1. 휴대폰을 끈다.
꽤 많은 시간을 휴대폰에 의지하는데 (심지어 직업조차 휴대폰을 손에서 뗄 수 없다.) 휴대폰 전원을 꺼버린 순간 나는 일이 터져도 당장 어쩔 수 없는 해외여행이라도 온 여행자마냥 몸이 붕 뜨는듯한 기분과 함께 설렘이 찾아온다. 그리고 이내 곧 안정감과 방안이 나로 가득찼음을 느낄 수 있다.

2. 화장을 지우고 샤워는 생략
이미 무언가에 빠질 생각에 흠뻑 취해있는데 샤워까지는 무리다. 심지어 샤워 후에는 노곤함과 함께 귀차니즘이 작동하여 실패에 이르게되니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게 화장을 지우고, 세수를 하고, 발을 닦고, 양치질을 하고 여기까지.
+ 양치질은 중요하다. 이유는 5번에서. 참! 머리는 질끈 한올도 내려오지 않게

3. 편한 옷
변태적일 수 있지만 속옷은 최대한 생략, 편한 옷은 트레이닝복 따위가 아니라 몸에서 흘러내리거나 닿지 않는 커다란 반팔티 정도가 좋다. 그리고 베트남에서 사온 반바지 (태국의 코끼리바지가 짧은 느낌)

4. 방문 잠그기
아무런 방해도 받고 싶지 않은 시간인데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5. 간식
배부르지 않고 식감이 엄청난 과자들이면 칼로리야 하루쯤 괜찮아.
+ 추천: 프링글스, 콘푸러스트, 하리보 프루츠부시 젤리, 크림치즈맛 팝콘 등등
그리고 위 메뉴들을 한껏 신선하게 느끼기 위해서 양치질은 필수!!!




책을 읽는 순서는 코스 요리를 맞이하듯

1. 에세이
가볍게 후르륵, 누군가와 대화하듯. 당신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군요! 정도 공감을 해주면서 읽는 행위만이 가능한 세상에 적응
2. 소설
푹 빠져서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을 차단시켜주는 공간에 착석.
3. 철학
그저 공간만 느끼며 본능에만 충실하기만 한건 매력없다.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인데 비판도, 납득도 뭐라도 내 가치관을 형성해갈 수 있는 숙제가 필요하다.
4. 여행책
한순간에 이 평온한 세상이 깨지는건 너무 갑작스럽고 아프며, 서글프다.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 오버랩되듯 천천히 흘러들어와서 걸어나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P.S. (postscript)
1. 음악은 절대 NO
침묵, 고요 등 상황에서 문자와 단어, 이야기등이 가득차는 공간이 형성되어야하는데 음악은 이미 공기와 같이, 혹은 빛과 같이 그 공간을 가득 채워버린다.
.
.
사실 상대음감인 나는 꽤 긴시간동안 훈련되어졌기 때문에 들리는 악기나 음들에 대해서 절대적인 음을 구별한다. 좀 더 쉽게 얘기하자면 많은 이들이 그렇듯 들리는 음악들이 계이름, 코드등으로 떠오른다. (재즈가 흐르는 카페에서 누군가와 진중하게 얘기하기 어려운 이유와 동일하다. 특히나 스탠다드 구성의 솔로라인으로 만들어지는 재즈는 끊임없이 copy하게 만든다.) 뿐더러 전공과 직업의 영향으로 인해 곡의 형식, 구성, 편곡, 가사까지 분석, 연주 보이싱까지 시뮬레이션하는 몹쓸 버릇은 다른것으로 채우고 싶은 나자신을 참 피곤하게 만든다.
가끔 길을 가다가도,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도 멍때리는것도 어쩔 수 없이 들려오는 수많은 음 때문이다. 옆을 걷고 있는 사람에게 손가락질 받고 넌 그래서 안돼. 개념이 없어. 사람지나가잖아!! 라며 모욕적인 소리까지 들었지만, '음악이 들려오는걸 어떡해' 라고 말했을 때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에 그냥 사회부적응자의 인식을 선택하기로 했다.

2. 꼭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된다. 읽고 싶은 만큼 읽고 다른 어떤한 것을 읽어도 좋다. 그러다 다시 돌아와도 좋다. 대화가 계속해서 이어진다는건 쉬운일이 아니니까.

3. 모든 읽기의 행위가 끝난 뒤 현실의 공기를 마실 수 있게되었다면 휴대폰을 켜고 SNS를 본다. (이쯤에선 음악을 켜주는 것도 좋다.)
내가 멈춰있었던 시간 동안도 쉬지않고 흘러갔던 타인이 궁금한건 매슬로우가 말한 욕구 중 3단계쯤(소속감의 욕구)에 해당할 것이다.

4. 그 후 3자의 입장에서 벗어난 나와, 읽기의 행위 속에 작가가 말한 것들, SNS의 상황들을 비교해보며 삶을 비교해본다. 이건 4와 5단계쯤 어딘가를 걸어가려하는 거겠지


머리맡에 잔뜩 늘어 놓은 책들이 좋다.
인연이라 말하기 어려운 그녀에게 책공유를 청하고 평소같았으면 내가 손대지 않았을 책을 건네받아서 참 좋다.
어렸을 때 부터 책은 물론 카세트 테이브 가사집이 구겨지는 일은 정말 큰일이라고 여겨왔는데 (구겨진다고, 조금 헤진다고 그 속에 담기고 전달될 가치가 떨어지는것도 아닌데 말이다.) 중간 중간 모서리 끝이 접힌 삼각형 모양에 흠칫 놀라곤 했다. 이제 손으로 더듬어 보고 '내가 해보지 못한 행위'에 묘한 느낌이 든다. 이내 곳곳에 그어져 있는 줄이며 짧은 귀여운 코멘트들에  나쁜짓을 저지르려는 소녀처럼 익살맞은 웃음이 지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소유물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으랴.
항상 그랬듯 마스킹 테이프를 잔뜩 붙여놓고 또 한번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노트에 옮겨적으며 비로소 내 것이 되었음에 뿌듯해하겠지.



자, 이제 샤워하러 가볼까?


<인도, 바라나시로 가는 열차 안에서> 늙어서도 혼자 타지를 여행하는 도전심과 돋보기에 의지해서라도 읽음과 배움을 잃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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