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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로코 Barroco Feb 23. 2019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 스펜서 존슨/진명출판사

변화에 굴복하지 않고 대응하는 법을 배우다 

지구가 존재하는 한 이 세상의 모든 만물들은 ‘변화’를 날마다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비록 24시간 동안 자연에 우리의 눈을 고정시킬 수만은 없지만 시간이 점점 흘러감에 따라 만물은 일정한 방식대로 분명히 준행한다. 우리의 짧은 인생살이도 마찬가지이다. 하루하루를 그냥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운데에서도 시간은 분명히 흘러가고 그 시간에 따라 (본인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우리의 몸은 점점 노화되어 가면서 주변 환경도 조금씩 바뀌어감을 느낀다.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 말이다. 그리고 제1장의 고등학교 동창 모임처럼 우리는 때론 무심하게 흘러가버린 세월을 탓하고, 화려했던 옛날 시절을 그리워하며, 이전과는 다르게 소심해져 버린 나 자신을 끊임없이 자책한다.


출처: slideshare.net


어느덧 대화의 중심 화제는 한 우화(寓話)에게로 향하게 된다. 여기에는 두 마리의 생쥐인 스니프와 스커리, 그리고 두 사람의 꼬마 인간인 헴과 허가 등장하는데 누구나 이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이 네 가지 캐릭터들 중에서 자신은 어느 부류에 속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누구나 헴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을 터. 변화를 빨리 알아차렸던 스니프나 신속하게 행동한 스커리까지는 못 되어도 늦게나마 자신이 처하게 된 최악의 상황을 파악하고 변화에 대응하고자 전전긍긍했던 허의 모습은 마치 나 자신을 보는 듯했다. 옛날 시절 말로는 변화를 추구하고 최신 유행을 따른다고는 하지만 실상 나의 내면세계를 깊이 들여다보면 나는 항상 주변 환경이 새롭게 바뀐다는 것에 대하여 두려워하고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이대로 주저앉고 자포자기할 수만은 없었다. 무언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나의 인생은 주변 사람들과의 아무런 소통도 없이 비참하게 끝나버릴 것만 같았다. 옛 치즈에 대한 미련을 과감하게 떨쳐내고 나는 또다시 머리띠와 신발 끈을 질끈 동여맨 채 미로의 출발점에 섰다. 두려운 마음도 앞섰지만 특유의 끈기와 열정만을 믿었다. 막다른 골목에 몇 번 다다를 때마다 미래에 이루어질 멋진 나 자신의 모습을 그리면서 다시 초심(初心)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나는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얼마 동안의 끼니는 해결할 수 있을 만한 새롭고 신선한 치즈들을 발견하였다.


지금의 치즈가 언젠가는 바닥날지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치즈에 대한 나의 갈망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한 번 내 인생을 바꿀 만한 변화가 찾아오면 그다음부터 각기 다른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날 마련이다. 지금의 나는 십 년 전과 다르고, 오 년 전과 다르고, 삼 년 전과 다르고 심지어 작년과도 다르다. 무엇이, 혹은 누가 나를 변하게 만든 걸까? 가족? 친구? 건강? 경제적 형편? 미래에 대한 계획?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서 나는 어떠한 마음 자세로 현실을 받아들이는 걸까? 이전 같으면 나는 무조건 안 된다는 부정적인 말로 나 자신을 보이지 않는 창살에 가두어 버리곤 하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비록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더라도 일단 데쉬해보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자신감과 배짱이 생겼다. 이건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출처: BIng


새로운 치즈를 찾아 나서는 것,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평생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다가오는 변화를 먼저 냄새를 통하여 빠르게 감지하고, 알아차린 그 순간부터 남들보다는 더 이상 뒤처지지 않도록 신속한 행동을 취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끊임없이 발달하고 진보하는 정보와 기술의 홍수 속에서 그리고 과도한 경쟁으로 각박해진 이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가 있다. 이미 늦었다고 생각해도 괜찮다. 어느 때이든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시니 말이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 흐름에 자신을 내맡길 것인가, 아니면 방관자의 모습으로 그저 지켜만 볼 것인가에 대한 선택은 오로지 당신에게 달려 있다. 짧게 요약하자면 진보냐 퇴보이냐의 문제이다. 사실 이 둘을 놓고 옳고 그름에 관해 논의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긴 하지만 적어도 21세기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면 어느 쪽이 자신에게 더 큰 이득이 되는지 각각의 상황들을 대조하면서 결론을 내려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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