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바티칸 시국

희망아!

by hope

"띠~디 디디디~ 띠~디 디디디~ 띠 디디디 디디디디 디디디디디~".

새벽 5시 30분 알람이 울린다. 바티칸은 너무나 가고 싶지만 어젯밤 야경투어를 하고 잠들어서인지 피곤한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옆에 아이는 몇 분이라도 더 자길 바라며 서둘러 일어나서 알람을 끈다.


조식은 먹지 못하기에 미리 프런트에 밀박스로 요청했다. 그런데 밀박스라고 말하니 잘 알아듣지 못하는 거 같아 대화하는데 한참 걸렸다. 이제와 찾아보니 breakfast box로 물어보면 되나 보다. 의미는 통하여서 남편이 조식을 가져왔다.


Hotel Gioberti breakfast box

우리 네 식구는 breakfast box에서 빵과 음료만 간단히 먹고 서둘러서 지하철로 향했다.


바티칸 투어를 위해 메트로 A선 Ottaviano역에서 가이드분과 7시 30분에 만나기로 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타바치가 문을 닫아서 지하철 내에 있는 기계에서 표를 샀다. 어떤 걸 사야 하나 한참 고민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리고 드디어 Termini역에서 Ottaviano역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이 온다. 지하철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이 참 많았다. 출근을 위해 지하철로 모여든 서울의 지옥철 느낌이었다.


그때였다.

첫째 희망이가 먼저 지하철에 탑승했다. 그 순간 지하철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있는 상태였기에 문이 닫히려고 했다. 이어서 남편은 온 힘을 다해 지하철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고 남편의 몸은 지하철에 낀 상태가 되었다. 남편은 힘을 다해 문을 양쪽으로 밀었다.


다행히... 너무다 다행히... 지하철 문은 열렸고 남편과 첫째 희망이는 지하철에서 밖으로 나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몇 초간의 순간만 생각하면 온몸이 긴장되고 다리에 힘이 풀린다.

만약 희망이 혼자 지하철을 타고 갔다면?(희망이는 핸드폰이 없다.)

만약 남편이 낀 상태로 지하철이 출발했다면?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다시 재회한 우리 가족은 하나의 규칙을 정했다.

혹시나.. 혹시나 또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다음 역 이 자리에서 기다리자."

이탈리아 여행에서 어떤 경험보다도 무서웠고 또한 잘 해결되어 감사한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우린 지하철을 탈 때 좀 더 여유 있게 움직였다.


다행히 시간 내에 가이드분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엔 우리 가족 외에도 다섯 팀 조금 넘게 있었다. 인원 체크를 하고 가이드분을 따라 길을 갔다.


이른 아침부터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입장부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높은 담장이 바티칸 시국과 로마의 경계다. 드디어 조금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에 들어간다. 기다리는 시간에도 첫째 희망이는 피렌체에서 본 성당그림을 그리느라 바쁘다. 지하철에서 헤어질뻔한 걸 생각하면 지금 내 옆에 건강히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감사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바티칸 시국으로 입장했다. 그리고 실내에서 가이드님의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에 대한 사전설명이 있었다. 현명하신 가이드님은 이 무더위에 야외가 아닌 실내에서 그것도 앉아서 앞으로 보게 될 그림들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 시스티나 소성당에 있는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만 사진 촬영이 안되고 말하는 게 공식적으로 금지라 미리 설명해 주신다고 한다. 로마 여행 전에 이미 TV 프로그램이나 책으로 알아봤지만 가이드님을 통해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아이들도 그런 거 같아 참 좋았다.


가이드님의 설명 후에 짧게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남편은 배가 고프다고 한다. 다행히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샌드위치와 에스프레소를 먹었다. 에스프레소가 참 맛있어서 기억에 남는다.



요기를 하고 드디어 바티칸 투어 시작이다.



왼쪽 작품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다. 아쉽게도 이건 모조품이다. 그는 조각품 안에 천사가 있다고 생각하고 아닌 부분을 조각했다고 하니 생각 자체가 천재 같다. 모조품만 본 게 너무 아쉬워 내일은 꼭 미켈란 젤로의 모세조각상을 보러 가리라 다짐했다.


오른쪽은 베드로가 십자가형에 처하는 장면이다. 예수님처럼 감히 못하니 역십자가 형태로 해주라고 했다고 한다. 손을 뻗는 모습은 "잠깐만... 잠깐만..." 하는 모습으로 성인이어도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는 모습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다음으로 간 곳은 솔방울 정원이다.


솔방울 정원

솔방울은 공기를 정화하는 작용을 하는데 예전에 교황청을 방문하는 이들이 이 솔방울 앞에서 죄를 씻어내고 자신을 정화시키라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지구 한복판에 있는 지구 모형은 비티칸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 중 유일한 현대 조형물로 아르날도 포모도로의 1990년작 <천체 안의 천체>다.

프렌즈 이탈리아 p144





라오콘

라오콘은 트로이 신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헬레니즘 시대 최고의 걸작이다. 트로이의 사제였던 라오콘은 그리스 군이 트로이 성을 함락시키려고 '트로이 목마'를 선물처럼 위장해서 트로이에 남겨두고 떠났을 때 대부분의 트로이 사람들과는 반대로 이 목마가 그리스 군의 함정이라는 걸 알고 목마를 성 안으로 들이지 말라고 강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라오콘의 경고는 신들의 뜻과 달랐기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두 마리의 거대한 바다뱀을 보내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을 죽게 만들었다. 바로 그 장면을 조각화 한 것인데 볼수록 더 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지혜롭고 용감한 라오콘이 가장 소중한 그의 아들들과 죽임을 당해야만 하는 이 이야기는 대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라오콘은 너무나 훌륭한 작품인 동시에 많은 생각거리를 남겨주는 작품이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뮤즈 여신의 방이었다.

토르소

"와~~".

"와~~~".

눈을 뗄 수가 없다. 예술을 잘 모르는 나도 너무나 멋있다.



토르소란 목, 팔, 다리 등이 없는 인체의 조각품을 말한다. 기원전 1세기경의 작품으로 강한 근육의 표현이 역동적이다. 미켈란젤로는 이 작품을 보고 '가장 완벽한 인체의 표현'이라 칭했으며, 이후 시스티나 성당의 <최후의 심판>을 그릴 때 성 바르톨로메오의 몸으로 그렸다. 학자들은 이 조각을 '헤라클레스' 또는 그리스의 영웅 '아이아스'라고 추정하고 있다.

프렌즈 이탈리아 p145


"1세기 경에 저런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



다음으로 간 곳은 라파엘로의 방이다.

아테네 학당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은 네 개의 방중 서명의 방에 그려진 벽화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와 과학자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가장 가운데 두 명 중 왼쪽은 플라톤이다. 그는 이상을 중시해 하늘을 가리킨다.

가장 가운데 두 명 중 오른쪽은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는 현실을 중시해 땅을 가리킨다.


나에게 두 곳 중 하나를 가리키라고 하면 어디를 가리킬까 생각해 보았다. 난 하늘도 땅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곳에서 잘 사는 것도 중요하고 또한 내가 죽고 이 땅에 없을 때에 하늘에서도 후회 없었다고 말할고 싶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후회 없고 싶다.


"너무 욕심이 많은 걸까?"


가장 앞쪽에 턱을 괴고 앉아있는 남성은 미켈란젤로의 얼굴을 한 헤라클레이토스이다.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라파엘로에게 라파엘로의 방 벽화를 맡길 때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맡겼다. 온화한 성격의 라파엘로는 괴팍한 성격의 미켈란젤로를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하는데 그의 천장화를 보고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었나 보다.


다음으로 간 곳은 대망의 시스티나 성당이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중 일부( 오른쪽 그림 )


미칼렌젤로의 천장화를 보기 위해 정말 많은 사람이 촘촘히 서있었다. 조용해야 하고 사진촬영이 안 되는 그곳에서 우린 목을 뒤로 젖히고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감상했다. 처음엔


'지금까지 봤던 다른 작품과 어떤 차이가 있지? '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볼수록 근육하나하나가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곳에서도 첫째 희망이는 작품을 감상하며 근육표현을 스케치하느라 여념이 없다. 우리는 잠깐 천장을 감상만 하는데도 이렇게 목이 아픈데 몇 년씩 하루에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작품활동을 했을 미켈란젤로를 생각하면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은 이곳에 오기 전에 가이드님에게도 설명을 들었지만 실제로 보게 되니 경건한 마음이 들게 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세기 2:7



성경 창세기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아담을 흙으로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코에 생기를 불어넣는 장면은 중세에는 왼쪽 그림처럼 레이저를 발사하는 그림으로 그려졌다. 그 그림을 보고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의 해당 부분을 보니 너무나 세련되어 보인다. 이후 영화 브루스올마이티나 ET에서 이 아담의 창조 부분을 패러디하기도 했다.


별거 아닌 흙으로 지어진 우리는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세상을 떠난다. 하루하루 매 순간순간 감사하며 살아가고 싶다. 어느 누구도 높거나 낮지 않게 서로 존중하며 겸손하게 살고 싶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자주 널을 뛰는 듯하다.


니체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남의 평가에 민감한 것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노예근성 때문이다."

니체의 말을 알게 된 후 남의 시선이 신경 쓰일 때마다 아직도 노예근성에서 해방되지 못했구나를 생각한다.


네 시간 정도의 바티칸 투어가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감상으로 끝이 났다. 많은 인파로 지치기도 했지만 훌륭한 작품들로 마음은 채워서인지 기분만은 좋았다. 가이드님께 감사 인사를 하고 오는 길에 지하철 옆에서 봤던 피자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처음엔 내가 주문하고 첫째 희망이가 더 먹자고 해서 아이에게 주문을 해보라고 카드를 줬더니 머뭇하더니 친절하게 대해 주시는 직원분 덕분에 주문을 하고는 스스로 대견한지 씩 웃는다.


점심 식사 후에 나보나광장에 가서 카페에서 쉬기로 했다. 걸리는 시간이 대중교통과 도보가 비슷하다. 이탈리아 여행이 며칠 남지 않아 예쁜 거리를 걷고 싶기도 해서 의견을 물어보니 네 식구 모두 마음이 같았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우린 걷고 걸었다.


나보나광장에 도착해 유튜브에서 봤던 도미티아누스황제의 운동경기장 유적지를 먼저 찾았다. 나보나광장은 현대적인 분위기의 카페들이 양쪽으로 늘어서있고 악사들은 연주를 하는데 한편에서는 이곳의 옛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참 매력적이었다.



드디어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인 몸을 나보나광장 카페 의자에 의지해 앉았다. 음료를 주문하고 그냥 멍하니 광장을 보았다. 첫째 희망이는 여기서도 그리던 그림에 열중하느라 바쁘다. 한참 우리는 그곳에서 광장에서 연주하는 악사들의 음악소리 속에서 이야기도 하고 그냥 가만히 머무르기도 하며 한참의 시간을 그렇게 있었다.


다음으로 어디를 갈까 하다 일정상 오늘이 아니면 못 가볼 바로가까이에 있는 판테온을 가기로 했다. 그러나 이미 입장마감이다. 아쉽지만 맛있는 저녁을 생각하며 어제 못 갔던 서울식당으로 향했다. 제대로 된 한식을 먹을 생각에 우리 네 식구는 모두 신이 났다.


"엄마, 난 서울 가면 흰밥이 너무 먹고 싶어요."


두 아이 모두 이 말을 많이 했다. 그리고 실제로 평소에 된장찌개를 즐겨하지 않던 첫째가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마법도 일어났다. 평소의 삶의 소소한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 것들인지 여행을 통해 알게 되는 것 같다.


가는 길이 지쳐갈 때쯤 에너지 충전할 가게가 보인다.

피곤해 힘들어하던 얼굴은 어느새 해맑게 웃고 있다. 아이스크림이 너무 예쁘다.


오늘의 마지막코스인 서울식당이다.

신중히 메뉴를 골랐다.

감자탕과 김치찌개다. 그리고 추가로 냉면까지 남김없이 먹었다. 평소 고춧가루 들어간 음식을 싫어하던 아이가 어디 갔나 싶다. 우리 가족은 촌뜨기인가 보다. 여행 와서 한식의 맛을 보니 너무나 좋다. 다 같은 마음인 우리 가족이 참 좋다.


내일도 새벽부터 하루 종일 남부투어 일정이 있다. 그다음 날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 벌써부터 시원섭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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