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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브게니 키신이 초대한 카탈루냐음악당에서의 은하수파티

F. Chopin | Nocturne No. 1, Op. 27

by Daria



3월에 열흘 정도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는데, 항공권을 구매한 뒤 그 다음으로 가장 먼저 한 일은 Evgeny Kissin(예브게니 키신)의 바르셀로나 피아노 리사이틀 티켓을 예매하는 일이었을 정도로 매우 손꼽아 기다리고 기대했던 연주회에 대한 감상을 주절주절 기록해 보고자 한다.


Kissin(이하 키신)은 어릴 때부터 클래식 음악계에서 신동으로 인정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하였고, 현재까지도 세계적인 명연주자로서 활약하고 있는 피아니스트이다. 키신이 연주한 음반들 중 상당수가 명반으로 손 꼽히고 있으며, 내가 어릴 때부터 갖가지 곡들을 처음 접하던 순간에 키신의 연주를 통했던 적이 여러 번 있으니, 내게 키신의 연주는 때때로 하나의 기준점과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름대로 애착을 갖고 있는 연주자이다.


이 공연에서 키신은 바흐, 쇼팽, 쇼스타코비치의 여러 곡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구성하여 고전에서 낭만으로, 낭만에서 현대로 흘러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려냈다. 또한, 대부분의 곡들이 비교적 차분하면서도 우수에 가득차 있고 섬세한 것들이어서, 키신의 감정 조절 능력과 표현 기술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구성이었다.


공연은 바흐의 파르티타로 시작되었는데, 안타깝게도 이 날 이른 아침부터 오후까지 강행군의 가우디투어를 하고 돌아온 탓에 공연 초반 바흐 때 좀 졸았다. 가뜩이나 고단한 처지에 하필 수학적인 특성이 강한 바흐의 파르티타가 연주되니 눈이 자꾸 감기는 것을 참느라 아주 혼이 났다.


이어진 쇼팽의 녹턴과 스케르초에서는 다행히 정신을 차리고 몰입하여 감상할 수 있었고, 키신이 약간 느리게 풀어내는 리듬감과 신중한 완급 조절은 나로 하여금 쇼팽의 감성적이고 여린 마음 속으로 천천히 녹아들어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까탈루냐 음악당은 보자마자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매우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공연장인데, 이러한 아름다운 공연장 안에 키신이 연주하는 쇼팽의 녹턴이 울려퍼지는 시간은 정말로 황홀하고 꿈 속을 걷는 것 같았다. 밤의 여신이 초대한 은하수 파티에서 은빛 와인을 마시며 기분좋게 취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2부의 쇼스타코비치 소나타 2번, 그리고 프렐류드와 푸가에서는 쇼스타코비치의 복잡한 내면과 고뇌를 우수하게 표현하며, 영원히 아름답고 황홀할 것만 같았던 까탈루냐 음악당이 내 얼굴 위로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은 장면을 연상하도록 만들었다. 그 부서져내린 파편들 사이에서 조용히 위스키 한 잔을 마시며 모든 광경을 관조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피곤한 덕분이었는지는 몰라도 이 날의 공연에서 나는 내내 꿈 속을 거니는 것 같았고, 은하수 위를 유영하는 것 같았다. 마치 환상 속 세계를 붕붕 날아다니다 돌아온 것만 같았던 시간. 그후 공연장을 빠져나와 마주한, 완벽하게 밤이 되어버린 바르셀로나의 밤 골목 풍경이 나를 또다른 환상으로 인도하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공연장에서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의 황홀한 연주를 들으며 보냈던 그 환상적인 시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들어가자마자 너무나도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카탈루냐음악당 내부



커튼콜 때 후다닥 담아본 키신 님의 모습.



고풍스러운 인테리어.



음악당 앞의 골목에서.



키신이 연주하는 쇼팽의 녹턴 No.1, Op.27의 연주 영상 링크를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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