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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벼라 세상아!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 展>

by Daria



부암동의 석파정 서울 미술관을 방문한 이유는 단 하나, 천경자 선생의 전시를 감상하기 위해서였다. 천경자 작품 시리즈 중 하나인 <내 슬픈 전설의 n페이지>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전시 제목은, 작고 10주기 기획전임을 헤아려 보아 아마도 화백이 향년 91세로 세상을 떠난 2015년 후로 10년이 흘렀음을 의미하는 숫자 101을 담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채로운 색을 머금고 있는 그녀의 작품처럼, 그녀의 삶 역시 무척 다채롭다 못해 파란만장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거친 세상을 헤쳐 나가며 떠안아야 했을 그녀의 삶의 무게와 고독은 활동 후기로 향할수록 그림에서 더욱 짙게 드러났으며, 그 고뇌는 대표되는 일정한 형태로 반복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그녀가 30년간 세계 여행을 하며 그려낸 아래의 작품들에서는 저마다 무리를 짓고 모여 있는 동물들 속에서 홀로 웅크리고 있는 나체의 여인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치열하고 처절했던 삶의 길을 달리고 달려 그 길 끝에서 마주한 것은 다름 아닌 쓸쓸함이었을, 한 인간의 씁쓸한 심정이 그림에 선명히 드러난다.



특유의 화풍과 색채의 매력이 가득하다.


아기와 고양이의 조합이 너무나 귀여워서 지나칠 수 없었던 그림.



화백 천경자 하면 사람들이 으레 떠올리는 것은 아마도 여인의 초상화일 것이다. 그녀는 여러 여인들의 모습을 그녀 특유의 화풍을 통해 화폭에 담아냈는데, 이들은 공통적으로 하나같이 '빛나는 눈'을 반짝이며 마치 눈을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여성으로서 많은 사회적 제약과 시련을 겪어야 했을 그녀의 삶을 헤아려 보면 그녀가 그린 여인들의 생기 있는 눈망울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지 않을 수가 없다.





전시장 안에 게시되어 있는 다음 글을 읽어보면 그녀의 삶과 여성초상화 시리즈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고뇌를 치유하고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그녀의 노력이 결과물로서 나타난 작품들이기에 아마도 제삼자로서 그녀의 그림에 이토록 깊이 공감하고 감명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녀의 그림에는 고뇌가 담겨있고 인생이 담겨있으며, 뿐만 아니라 그것을 예술로 승화하고자 했던 그녀의 고행이 담겨있다.


이 그림은 특유의 '눈' 표현이 없지만 그냥 그림의 우아한 분위기가 예뻤다.



영롱한 눈을 빛내고 있는 여인들을 보며 나 자신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이에 각성하여 더욱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며 미술관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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