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전시에 다녀왔다. 그녀의 전시는 당시 국제갤러리와 호암미술관 두 곳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었는데, 국제갤러리의 것이 조금 더 전시기간이 짧았기에 서둘러 먼저 관람하였다. 전시 제목 <Rocking to Infinity>와 현수막에 그려진 엄마와 아이의 형상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이 전시는 모성애를 비롯한 '엄마'로서의 모든 정신적·육체적 경험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동시에 진행되고 있던 '갈라 포라스 김(Gala Porras-Kim)'의 전시를 먼저 감상한 뒤 넘어간 한옥 전시장에서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커피필터 드로잉 연작을 다수 만나볼 수 있었다. 커피필터라는 재료가 가진 특성과 물감이 만나 독특한 질감 그리고 매력적인 색의 표현이 이뤄졌다. 작가가 종이 위에 반복적으로 그려낸 삼각형과 원에는 어떠한 의미가 투영되었을지 나름대로 짐작해 보며 커피 필터 연작을 흥미롭게 감상했다.
한옥을 나와 조금 더 뒤에 있는 또 다른 건물로 이동하여, 이 전시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주요 섹션을 관람했다. 들어서자마자 강렬한 인상을 자아내는 붉은색을 사용한 그림들이 벽면 사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서로 부둥켜안은 채 천장에 매달려있는 두 사람 형체의 조각을 비롯한 세 점의 인상적인 조각 작품들이 놓여 있었다.
이 공간에서 나는, 마치 자성을 가진 두 물체가 서로 달라붙듯, 작가에게 강한 공감과 연대를 느낄 수 있었는데, 블랙홀처럼 순식간에 나를 빨아들이는 듯한 그 느낌이 무척 강렬하여 그 순간이 아직까지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캔버스 위에 붉은 물감을 휘둘러 담아낸 상징적인 메시지들은, 작가가 어머니로서의 경험과 어머니가 되는 것에 대한 고뇌를 그림 그리기를 통하여 승화시키고자 처절하게 노력한 흔적처럼 다가왔고, 나 역시 언젠가 엄마가 될(지도 모르는) '여성'이라는 사실은 작가와 나 사이의 강력한 연결고리가 되어 공감의 전파를 주고받도록 만들었다.
천장에 매달린 두 사람의 형상 조각 <The Couple> 앞에서는, 사랑 그리고 연인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잠시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둘은 서로 의지하고 지탱하며 공생하는 관계인가, 아니면 서로 의존하고 집착하며 속박하는 관계인가. '사랑'의 메커니즘은 참 복잡 미묘하다. 다른 한편에 놓인 대리석 작품 <Untitled(No.5)> 앞에서도 역시 나는 유대와 사랑이라는 복잡한 개념에 대해서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는 이 대리석 작품을 동해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작업 동료였던 Jerry Gorovoy와의 깊은 정서적 유대감을 표현했다고 하지만, 그저 한 걸음 떨어져 작품만을 감상할 뿐인 제삼자인 나로선 서로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이 팔의 형체들이 '사랑과 집착은 한 끗 차이'라는 명제를 아주 잘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 오히려 작가의 공식 의도가 더욱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녀의 작품들은 자기 고백적이고도 상징적이며 대담하다.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상처, 기억 등이 특정한 색감이나 구도, 형태를 통해 반복적으로 작품에 나타나기 때문에, 그녀의 전시는 단순한 그림을 넘어 한 사람의 일기장을 읽고 있는 것, 아니 어쩌면 작가와 마주 보고 앉아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그 이야기를 직접 듣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비록 내가 상대방과 같거나 유사한 경험을 하지 않았더라도 대화 상대의 상황과 심리를 이해하고 때론 공감하기도 하며 관계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처럼, 작가가 자신의 경험과 생각 등을 담아낸 예술 작품을 통해 일종의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한 방법으로써 소리 없는 조용한 대화를 나누고 난 뒤에는 서로의 세계에 한 걸음씩 다가간 듯한 정서적·관계적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 그 유대감을 강렬하게 느끼는, 서로가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그 순간에 물밀듯 전해지는 감동이 있다. 나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Rocking to Infinity> 전시를 통해 그 가슴 벅찬 순간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어떠한 생명도 모체 없이 자연발생되지는 않는다고 알고 있다. 세상의 모든 생명들은 '어머니'라는 이름의 다른 생명을 통해 탄생될지니, 물리적으로 서로 독립된 것처럼 보이는 각 개체들 사이에 크고 작은 유기적 연쇄 및 유대가 존재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러한 연결성이 타인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인지하는 레비나스적 관점을 이해하는 하나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겠다. 국제갤러리의 루이스 부르주아 작품들을 보며 이런저런 사유의 시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