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과 오랑주리 미술관으로부터 세잔과 르누아르의 작품들을 대거 공수하여 예술의전당에서 특별전이 이뤄졌다. 전시장 내 사진촬영이 금지여서 따로 찍어둔 사진은 없지만 전반적으로 ‘르누아르 vs 세잔’의 구도를 형성하는 듯한 모양새를 띄고 있었는데, 다소 의아한 전시 테마이기는 하다. 두 화가는 미술사적으로도 다르게 분류됨은 물론이고, 화풍에 있어서도 너무나 확연한 차이를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조금 특이하기는 해도 이러한 구성의 전시 덕분에 두 작품의 서로 다른 매력을 비교해 볼 수 있어 재미있었다.
지금보다 좀 더 어렸을 때의 나는 ‘르누아르’의 작품을 참 좋아했다. 르누아르의 작품이 전하는 밝고 따뜻하고 포근하며 해사한 분위기를 무척 사랑했다. 지금도 르누아르의 작품을 여전히 좋아하지만 예전만큼 애정이 크지는 않은 것 같다.
반면, 어릴 때는 그다지 관심과 애정을 갖고 들여다보지 않았던 ‘세잔’의 작품들이, 지금의 취향에는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사실 세잔의 작품들을 책 삽화나 인터넷 웹 이미지 등을 통해서나 접할 수 있었던 예전에는 그것들이 그리 인상 깊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나 유럽 여행 중 미술관에서 그의 원화들을 접하고 난 직후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원화들에게서 그가 캔버스에 강박적이다 싶을 정도로 녹여낸 ‘구조’, ‘형태’, ‘질서’가 뚜렷하게 보였고, 특유의 투박한 듯 균형감 있는 색채는 묘하게 눈을 뗄 수 없는 매력을 발산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르누아르의 작품은 삽화를 보며 상상했던 느낌과 원화의 실제 느낌에 큰 차이가 없어 ‘상대적으로’ 대단히 인상 깊지는 않았다.(물론 상상 그대로 아름다웠다)
둘을 비교하듯 구성한 이번 전시를 통해 두 사람의 각각의 매력을 더욱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고, 그뿐만 아니라 현재 내 취향은 르누아르보다는 세잔에 약간 더 기울어 있음을 다시 한번 지각할 수 있었다. 물론 르누아르의 작품은 매우 훌륭하고 예쁘다는 것에 전혀 이견이 없지만 세잔의 작품이 좀 더 탐구하는 재미가 있달까. 애초에 두 화가의 각자 철학도 확연히 달랐으니 이러한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지 않나 싶다. 르누아르는 세상의 아름답고 즐거운 순간순간을 그리고자 한 화가였고, 세잔은 세상을 분석하고 해석하여 그 결괏값을 그리고자 한 화가였으니 말이다(물론 작품마다 다르니 결코 '누구는 이렇다!'하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같은 대상을 두고도 사람마다 각기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는 사실은 우리 삶에 대하여 꽤 많은 것을 시사한다. 화병 하나를 그리더라도 전혀 다른 두 그림을 내놓는 이 두 화가를 보면서, 나는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나는 어떤 표현 방식을 지니고 있는 사람인가에 대하여 새삼스레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