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직장에서의 너무 많은 업무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번잡하고 삭막해져만 가는 도시의 모습 속에서 한창 지쳐있던 때, <Still, Tasha Tudor> 전시를 관람했다. 동화 작가이자 삽화가였던 그녀의 그림들을 그녀의 삶의 철학과 연관 지어 소개하는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전시였고,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한 전시였는데 예상외의 깊은 울림을 내게 전해 주었다.
그녀는 동화 작가 및 삽화가였지만, 한편으로 그녀 자신의 생활 방식으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요즘으로 따지자면 인플루언서와도 같은 삶을 살았다. 물론 그를 통해 어떠한 수입을 창출해 낸 것은 아니었으니 인플루언서라고 표현하는 것도 무리인 것 같지만 어쨌든 그녀는 현대 도시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뉴잉글랜드에서 보낸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시골의 자연 친화적인 생활에 익숙했고, 직업적 성공을 이룬 뒤에는 버몬트의 시골 땅을 매입하여 여생동안 그곳에서 직접 정원을 가꾸고 농작물을 기르며 자급자족의 삶을 살았다. 당장 내가 사는 자그마한 집의 집안일만 해도 끝이 없고, 수도권에서 현대 문명의 혜택을 한껏 누리고 있음에도 손이 가는 것들이 한둘이 아닐진대, 그 커다란 시골집을 스스로 모두 다 관리하고 유지하는 일이란 결코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힘든 일일 것임을 알면서도, 그녀의 삶은 퍽 낭만적이며 동경의 대상이다. 현재 살고 있는 도시의 문화 인프라에 대만족 하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가슴속에 늘 '교외의 주택에서 아름드리 정원을 가꾸며 텃밭을 일구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책이나 실컷 읽고 음악을 들으며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막연하고도 아득한 소망을 품고 사는 나로선 그녀의 삶의 모습이 퍽 부럽고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더욱이 전시장에 걸린 그녀의 그림들은 그녀의 생활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요, 동화 삽화답게 모두 다 아름답고 따뜻하고 상상력과 즐거움이 가득하여, 마치 그녀처럼 살면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에 빠지도록 만들었다. 그녀의 그림들을 찬찬히 살펴보는 동안 그 그림 속 세계에 내가 놓여있다고 상상하며, 잠시나마 꽃과 풀, 햇살, 음악과 책으로 가득한 꿈속 삶을 만끽해 보았다. 그저 그림을 보았을 뿐인데 마음이 몹시 편안하고 행복해졌다.
가슴 한 구석에 나만의 이상을 조용히 품은 채 사는 것은 제법 설레는 일이다. 일과 사람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가도 가슴속에 몰래 품어 놓은 꿈 조각을 꺼내어 보면서 잠시나마 반짝반짝 예쁜 꿈을 꿀 수 있으니 말이다. 마치 직장인들이 가슴속에 몰래 사직서를 품고 사는 것처럼 말이다.
내 몇십 년 후의 삶의 모습이 어떠할지 아직은 예상이 가지 않지만, 분명한 건 지금도 미래에도 나는 내가 사랑하고 어여삐 여기는 것들을 곁에 두고 즐기며, 가끔은 힘들고 짜증 나고 화도 나겠지만, 내 삶을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어디에 살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고(생각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니까.
(*아래로는 전시장 내에서 찍은 작품들 사진이 쭉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