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현악사중주단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중주단 '아벨콰르텟'. 아벨콰르텟이 작년 여름부터 올해 2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베토벤 현악사중주 곡을 완주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현악사중주 5번 Op.18-5, 현악사중주 7번 Op. 59-1, 현악사중주 14번 Op. 131을 연주하며 약 반년간 이어진 전곡연주 프로젝트를 화려하게 끝맺었다. 개인적으로 예술의전당의 콘서트홀보다 IBK챔버홀의 소박한 음향과 분위기를 조금 더 선호하는 나로선, 챔버홀에서 진행된 이들의 현악사중주단 연주회가 한층 더 만족스럽게 다가왔다.
첫 곡 현악사중주 5번은 산뜻하고 깔끔하게 흘러갔다. 대단히 인상적인 정도는 아니었지만 예쁘고 경쾌한 분위기의 모차르트 풍 실내악다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연주의 시작을 알리고 분위기를 띄우기에 충분했다.
두 번째, 현악사중주 7번은 아주 조금 불안정한 순간도 있었으나 이 역시 열정적인 연주와 악기 간의 촘촘한 대화를 통해 빈틈을 잘 메꾸어 나가는 듯했다. 마지막 악장에서는 나 또한 상상의 내적 댄스를 추며 무대 위 연주자들과 함께 흥겨운 리듬에 젖어들었다.
마지막 곡인 현악사중주 14번의 연주에서는, 역시 아무래도 나는 베토벤의 우수한 현악사중주 작품들 중에서도 후기 쪽을 조금 더 선호하는 것 같다는 확신을 다시금 얻게 됐다. 1악장의 흐느끼는 듯한 구간을 지나, 이어지는 악기 간의 긴밀하고 섬세한 대화를 들으며 마치 사람들의 인생을 바라보듯, 한 편의 잘 짜인 드라마를 보듯, 덩달아 마음이 저릿해지는 것을 느꼈고, 마지막 7악장에서는 폭발하듯 팡팡 터져 나오는 감정의 피날레에 흠뻑 젖어들며 묘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아벨콰르텟은 현악사중주 14번의 감정의 서사를 단계적으로 섬세하게 설계해 나가며 피날레의 극복, 초월, 환희 등의 감정을 선명히 전달해 주었다.
갈수록 더욱더 거대해지고 복잡해지는 세상 속에서 베토벤의 현악사중주곡, 특히 후기 현악사중주 곡들은 세상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해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과, 외부의 공격과 방해에 길을 잃지 않고 선(善)을 따라가는 단단한 마음의 중요성을 음악을 통해 전하는 것 같달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는 아닌 것 같고(그러기엔 내 나이가 많다고 보긴 어려우니), 그저 요즘은 규모가 큰 관현악곡보다는 비교적 소규모의 실내악에 조금 더 손이 간다. 아침에 일어나 음반랙 앞에서 오늘의 첫 음악을 고를 때 나는 대개 신중한 논리적 고민에 따르기보다는 본능과 직관에 따르는 편인데 요즘 내가 집어드는 음반들을 보면 대규모 관현악곡보다는 실내악이 거의 대부분이다. 요 근래 나의 음악 선호도는 이러할진대, 그러던 차에 아벨콰르텟의 베토벤 현악사중주 연주회는 나의 갈증을 해소시켜 줄 단비와 같은 공연이었고, 끝으로 갈수록 더욱 완성도 높아지는 이들의 연주에 만족감 가득한 음악의 밤을 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