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V. Beethoven | String Quartet No.16
고작 가을 외투를 걸치고도 기분 좋게 밤길을 거닐 수 있을 만큼 날씨가 쾌청하고 선선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겨울’이라는 단어에 걸맞은 추운 날씨를 보여주고 있다. 며칠 전에는 첫눈도 보았지.
남들보다 추위를 훨씬 더 많이 타는 체질 탓에, 매년 찾아오는 이 겨울이 내게 마냥 반갑기만 하지는 않다. 집 안에 가동할 수 있는 온갖 난방 기구란 기구는 모조리 가동하고 옷도 여러 겹 껴 입으며 겨울을 보내는 ‘나’이기에, 본격적인 겨울 추위가 찾아오면 몇 달간 난방비 폭탄을 맞을 거란 생각에 약간 긴장되기도 하다.
이토록 추위를 많이 타는 나지만 사실 난 겨울을 좋아한다. 겨울 특유의 분위기는 추위도 이겨낼 만큼 얼마나 매력적인가. 겨울엔 크게 두 가지 분위기가 있다. 하나는 “포근함”, 또 하나는 “쓸쓸함”. 서로 상반된 특성을 가진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겨울, 그래서인지 겨울은 다양한 관점에서의 사색에 빠지기 참 좋은 계절이다. 여기에 한 해를 되돌아보고 새 해를 계획하는 연말연시라는 시기적 특성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겨울은 내게 사색과 침잠을 부추긴다.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을 싱그럽게 물들여주던 눈부신 초록 빛깔의 나뭇잎들도 모두 지고, 그 다채로운 색과 형태로 평범한 도시의 아스팔트 거리도 특별한 길처럼 만들어주던 꽃들마저 져버린 겨울. 길바닥에는 푸석푸석 물기를 잃어버린 마른 갈색 나뭇잎들이 소복소복 쌓여 있다. 추운 바닥에 메마른 채로 떼 지어 누워있는 그들이지만 다 함께 옹기종기 모여 서로 포개져 있는 모습이 어딘가 포근하고 왜인지 따뜻해 보이기도 한다. 그 마른 낙엽 더미 위에 빈 가지만을 드러낸 나무가 버젓하게 서 있다. 잎이 지고 난 후 남은 앙상한 가지의 모양이 내게는 고고한 난초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나는 빈 나뭇가지만을 드러낸 나무들이 하늘을 등지고 태연하게 서 있는 이 고요하고 때론 스산한 겨울 길을 거니는 일이 참 좋다.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일들은 자연의 섭리라고, 일어날 만한 일이니까 일어나는 것이라고, 세상에 쓸데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들은 계절이 지나듯, 새순이 돋고 낙엽이 지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나가는 것들이라고. 모든 것을 달관한 채 선 길 위의 겨울나무들이 내게 일러주는 것만 같다. 한데 이렇게 세상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자 하다 보면, 때로 새삼스레 쓸쓸함 또는 헛헛함을 느끼곤 한다. 삶에서 궁극적으로 무엇을 얻기 위해 사람은 이토록 감정의 희로애락을 느끼면서 분투하는 것인가.
그런 때에, 눈앞의 커피숍 한 채를 마주하고는 차가워진 몸을 데우기 위해, 향긋한 커피로 몸속을 감미롭게 채우기 위해, 잠시 고뇌를 멈추고 노란 불빛이 흘러나오는 그 안으로 들어선다. 들어서자마자 따뜻한 공기가 나의 찬 뺨을 어루만져주고 나의 찬 손을 감싸 안아준다. 커피콩과 베이커리에서 나는 향이 찬 기운에 마비된 나의 콧구멍을 감미롭게 훑고 지나가며 얼어붙은 감각을 다시 깨워준다. 이 순간 커피숍이라는 공간은 내게 돈을 받고 식음료를 제공하는 단순한 상점이 아니라 삶이란 따뜻하고 향기롭고 또한 축복받은 소중한 기회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변모한다. 차가움을 녹이는 온기, 무채색의 겨울 세상에 꽃처럼 피어난 밝은 조명, 무색무취의 바싹 마른 공기를 감미롭게 물들이는 온갖 향 분자들. 모든 것들이 정반대의 방향으로 휙휙 전환되는 모양새가 마치 동화 속 마법처럼 느껴진다. 겨울은 그 어느 계절보다도 낭만적인 마법의 세계가 펼쳐지는 동화와 같은 계절이다. 그래서 더욱더 나는 겨울이 좋다.
그래. 나는 이러한 동화와 같은 순간들이 좋아서 살고 있구나. 난 동화 속 세계에 초대된 영광을 누리고 있는 중이구나. 그렇다면 기왕 특별히 초대된 거 이 환상의 세계를 즐기다가 떠나야겠다. 동화 속 캐릭터에게 서사를 위해 필연적으로 일정량씩 부여된 약간의 위기와 시련까지도 즐기면서 말이다.
다채로운 심상이 공존하는 겨울은 심도 있는 베토벤의 음악을 음미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계절이다. 더군다나 베토벤의, 일명 <합창> 또는 <환희의 송가>라고 불리곤 하는, 교향곡 9번 때문에라도 더더욱 연말연시가 되면 베토벤의 음악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음악을 통해 자신의 소신과 철학을 표현하고자 분투하였던 베토벤. 마치 고고하고 태연한 저 겨울나무와도 같은 ‘그’의 음악을 들으며 겨울의 사색에 빠져 본다.
삶의 궁극적인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고뇌하고 있는 이 순간의 나를 위해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16번>을 스스로에게 들려주었다.
베토벤의 모든 작품들을 통틀어 가장 마지막 작품이라고 알려진 이 곡은 베토벤이 생전에 펼쳐 보였던 음악들에 비하여 묘하게 색다른 느낌을 풍기기도 하는데, 무엇보다 이 곡의 마지막 악장에 기록된 문구 “괴로워하다 힘들게 내린 결심(Der Schwer Gefasste Entschluss)”, “그래야만 할까(Muss es sein)?”, “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로 인해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 문구들을 써넣은 정확한 의도는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고 몇 가지 소문만 전해지고 있지만 아무렴 어떤가. 이 곡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이 선율과 이 문구를 접하고 각자의 마음속에 느끼는 바가 중요한 것이지.
베토벤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꽤 주관이 뚜렷하고 자기 철학이 두터운 편이며 사색적인데, 그토록 태산 같았던 예술가 베토벤이 죽음을 앞두고 말년에 써 내려간 이 편안하고도 경쾌하게 아름다운 현악 사중주곡을 들으며 그가 생의 끝에서 자기 생애에 대해 어떠한 깨달음을 얻었는지 어렴풋이나마 함께 느껴본다. 조금이나마 덜 어리석게 살기 위해서, 조금이나마 더 현명하게 살기 위해서, 그의 죽기 직전 일기와도 같은 이 곡에 경청해 본다.
결코 쉽지 않겠지만 단순하게 사는 연습을 해야지.
그래야만 할까?
그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