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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ia Dec 05. 2023

양인모 따라갔더니 홍콩필하모닉을 만났지 뭐예요.

J. Sibelius | Violin Concerto Op.47



듣는 것만으로도 나의 머릿속에 흰 눈 덮인 겨울 숲의 고독하고도 시린 풍경과 얼어붙은 호수 위에 실금을 그으며 날카롭게 깨지는 얼음장이 연상되는 곡, 그것은 바로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겨울이 가진 여러 가지 이미지 중 관자놀이에 한껏 힘이 들어가게 할 만큼 차갑고, 시리고, 아릴 듯이 차갑다 못해 뜨겁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이 한랭의 이미지를 음악으로 가장 잘 형상화한 결과물로써 단연 이 곡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의 이 시점에서, 마치 다가올 겨울에 대해 한 편의 멋들어진 프롤로그를 선보이는 듯, 그렇게 이 공연은 내게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려주었다.


이 공연의 협연자인 양인모 바이올리니스트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꾸준하게 나의 SNS에 그 팬심을 언급해 왔는데, “바이올린에 대해서 궁금하신가요? 제가 자세하게 바이올린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느끼게 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듯 바이올린을 켜는 그의 섬세하고도 선명한, 마치 소리계의 5K UHD 같은 연주를 나는 좋아한다. 투명한 은쟁반에 진주알을 굴리듯 차갑고 유려하다가도 어떤 때에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 장작처럼 정열적이고 매혹적이다. 아무튼 그의 연주는 듣는 이에게 바이올린 소리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 1995년생의 젊은 연주자이기에 앞으로도 계속해서 삶의 흔적을 묻혀 가며 더욱더 깊어질 그의 연주가 기대되고 흥미진진하다.


이 공연의 오케스트라는 홍콩필하모닉, 지휘자는 로베르토 곤잘레스-몬하스(Roberto González-Monjas)’로, 이번 공연을 통해 이들의 연주를 처음 직관하는 것이었기에 기대로 부푼 가슴을 안고 공연장 안에 착석하였다.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림스키 코르사코프(Nikolai Rimsky-Korsakov)의 <스페인 기상곡(Capriccio Espagnole, Op.34) >은 연주회장 안을 후끈하게 달구기에 충분하였다. 대부분의 오케스트라 첫 곡이 그러하듯, 앞으로의 본 게임에 들어가기 앞서 연주자들이 각자의 몸을 푸는 시간을 갖는 것 같은 연주였다.

이어진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Op.47>에서는 마치 겨울 사냥을 나선 북유럽의 사냥꾼들처럼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며 바이올린 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운 이미지를, 관현악단은 화약 또는 일제히 달려드는 이리 떼처럼 뜨거운 이미지를 형상화하였고, 듣는 내내 핀란드 어드메에 관한 시각적 심상을 함께 느끼며 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연주해 주었다.


그 후 2부에서는 올해 들어 유난히 더욱 많이 듣는 것 같은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Op.95>이 연주되었다. <신세계 교향곡>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곡은 수없이 들어도 참 좋은 곡이기에, 처음 대면하는 홍콩필하모닉의 사운드로 구현한 이 교향곡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너무나 유명하고 어디서든 자주 접할 수 있는 곡이므로 이 날의 연주를 통해 홍콩필하모닉의 연주 스타일은 다른 관현악단과 어떠한 차별점이 있는지 그 특색을 느껴보기에 좋은 기회였다.


이 날 홍콩필하모닉의 연주를 들으면서 노르웨이의 작곡가인 그리그(Edvard Grieg)의 <페르귄트 모음곡(Peer Gynt Suites) > 연주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꽤 재미있는 연주를 들려줄 것 같다. 앙코르로 연주해 준 브람스(Johannes Brahms)의 <헝가리무곡 5번(Hungarian Dance No.5) >까지 듣고 나니 더더욱 그들의 그리그 페르귄트 모음곡 연주가 궁금해졌다.

그들은 또 다른 앙코르로 최성환 작곡의 <아리랑 판타지>를 연주해 주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듯, 아리랑이 흘러나오니 내 의지와 무관하게 가슴 깊은 곳에서 어떠한 정서가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서양악기로 연주되는 아리랑을 듣는 일은 내게 또 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처음에는 그저 좋아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기 위해 찾은 공연이었는데 공연장을 나올 때에는 홍콩필하모닉의 참 매력을 느낀 멋진 공연이 되었다.






양인모 바이올리니스트가 2022년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국제 콩쿠르에서 연주한 시벨리우스 바이올린협주곡 유튜브 영상을 첨부한다. 참고로 해당 콩쿠르에서 양인모바이올리니스트는 우승을 거머쥐었다.♪


홍콩필하모닉 공식 유튜브채널에 올라와있는 드보르작 9번 교향곡 4악장의 연주 영상을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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