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ria Dec 23. 2023

베를린필, 우리 다시 또 만나기를 바라요.

L. v. Beethoven | Symphony No. 7



외부로부터 찾아오는 여러 요인들로 인해 어쩌면 질풍노도와 같은 복잡한 심경의 시기를 보내고 있을 무렵, 나는 베토벤의 음악에 심취 중이었고 특히 그의 후기 현악사중주에 매혹되어 있었다. 번민으로 어지러운 때에 그의 현악사중주를 듣고 있자면 단순한 심리적 위로 그 이상의, 자아 성찰과 위로의 시간을 모두 제공받는 듯하였다. 그러한 시기였으니 (“그 잠깐의 당시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에는 대체로 마음이 크게 동하지 않았고(그래도 피아노협주곡 4번은 워낙 아름다워서인지 감동을 전해 주었다) '영웅'이라는 다소 극적인 키워드와 같은 것들은 나를 고무시키기에 어려웠다. 11월은 내게 그런 때였다.


그러던 때에 어렵게 티켓을 구하여 직관할 수 있게 된 베를린필하모닉의 내한 공연은 어쩌면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시기와는 합이 아주 잘 들어맞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조금 든다. (사실 베를린필뿐만 아니라 피아니스트 조성진도 함께 무대에 오르는 이 공연에 대하여 1차 티켓팅에는 참패하였으나 다행히 감사하게도 또 다른 클덕 분으로부터 천당석 티켓을 양도받았다.) 그래도 내 인생에 있어 베를린필 연주 직관은 첫 기회였기에, 관람 전부터 약간 심경이 복잡했을지언정 세계 최정상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는다는 것에 대해 꽤 기대감이 상승하였다.


베를린필하모닉과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Kirill Petrenko)의 공연은 바로 전날에도 한차례 이뤄졌으며, 내가 방문한 공연은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 그리고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함께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4번을 연주한, 양일간의 연주 중 2일차의 것이었다.


이 날의 베토벤 연주는 적어도 내게는 단정하고 예쁘게 느껴졌다. 단정하고 예쁜 연주를 듣고자 바랐던 것은 아니기에 아주 약간의 아쉬움이 들지 않는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베토벤의 곡들에 모차르트의 영향이 조금씩 묻어있기는 한데 이 날 들은 연주는 그 흔적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는 연주였다. 무대를 바라보는 청중의 시점에서 느끼건대 지휘자와 협연자의 호흡이 서로 잘 맞는다고 느껴졌다. 어쩌면 두 사람이 비슷한 결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나란히 숨결을 내뱉는 두 사람의 주변으로 오케스트라의 각 단원들 한 명 한 명이 상대적으로 선명하게 내게 다가왔다. 그리하여 연주가 끝난 후 커튼콜 때에는 평소와 다르게 협연자보다는 단원들에 초점을 맞추어 조심스레 이들을 카메라 프레임 안에 담아 보았다. 좋은 의미로써 오케스트라의 파트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고 시선을 빼앗기게 된 연주였다. 슈트라우스 연주 때에는 앞선 베토벤과는 또 사뭇 다른 느낌이었으며, 영웅의 생애 흐름이 연극적으로 그려져 한층 재미가 살아났다.


뒤늦게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의 나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들에, 영웅의 생애에 흠뻑 빠져들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실제로 최근에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을 스피커가 닳도록 듣고 있기도 하고…. 이러한 때에 동일한 공연을 관람했다면 감상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궁금하다. 내년에 독일 여행을 가면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를 꼭 다시 한번 직관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Kirill Petrenko(지휘)와 Berliner Philharmoniker 연주의 L. v. Beethoven | Symphony No. 7 (4악장) 유튜브 영상 링크를 덧붙인다.♬


작년에 Pan-Caucasian Youth Orchestra(지휘 :Charles Dutoit)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협연한 Beethoven Piano Concerto No.4 (1, 2악장) 연주 영상 링크도 덧붙여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양인모 따라갔더니 홍콩필하모닉을 만났지 뭐예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