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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ia Jan 02. 2024

Birth to Death, and Life.

J.S. Bach | Goldberg Variations, BWV 988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에는 신묘한 힘이 있다. 첫 번째 아리아에서 시작되어 수차례 변주를 거쳐 아리아 다 카포까지 이르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이 변주곡 시리즈가 인생을 닮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우주의 모든 기운이 맞물려 ‘나’라는 한 생명이 어느 땅 위에 특정한 형태로 생성되었고, 이 삶은 축복과 모성애로 가득 찬 유아기를 지나 온갖 다양한 굴곡과 변주가 넘실대는 청소년기, 청년기, 장년기를 거쳐 이윽고 노년기, 그리고 원점으로 돌아온다. 그와 함께 비로소 ‘나’라는 존재도 우주의 거대 순환 속 일부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으며 모든 고뇌를 내려놓고 평온하게 우주의 일부로서 그 흐름 안에 몸을 내맡긴다. 그야말로 한 인간의 생(生)에서 사(死)까지의 전(全) 과정이라 할 수 있는 역사의 흐름이 약 한 시간의 이 음악 안에 구현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기에 더욱이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누가 연주하는가”가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A가 연주하는 골드베르크변주곡은 A의 인생 역사를 보여주는 것일 테고, B가 연주하는 골드베르크변주곡은 B의 인생 역사를 보여주는 것일 테다. 그러므로 그 곡을 표현하는 연주자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가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 관점에서 보건대 나는 비킹구르 올라프손(Víkingur Ólafsson)이라는 피아니스트를 좋아하고, 그가 들려주는 그의 인생 역사가 궁금했으며, 또한 실제로 이를 듣는 내내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음반에 수록된 수필이나 인스타그램 게시물의 캡션 등을 읽어보면 사람이 참 사색적이면서도 그 생각의 결이 나와 잘 맞고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가족과 자신의 뿌리를 중요하게 여기고, 따라서 그는 자기 중심을 견고하게 지키고 다져나가는 사람이라 느껴진다. 자신만의 색깔과 이야기가 분명한 사람의 손끝에서 나오는 음악이 재미있을 수밖에 없으리라. 다른 이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 그는 매력적인 사람이다.


나는 생일을 맞이했고, 연주를 들으러 가기 전에 친한 친구와 함께 <영혼의 형상>이라는 주제의 소규모 전시를 감상하였다. 그 후 저녁, 축일의 피날레를 장식하듯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었으니 그 연주가 내게 더욱 도저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서른 번의 변주를 지나 그가 아리아 다카포를 울리는 순간 나는 마치 열반에 한걸음 가까워진 수행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첫 번째 아리아의 첫 음은 내게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으나 마지막 아리아는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는 변주의 후반에 이르러서 두드러질 만큼 빠른 속도로 연주하였는데 어쩌면 아직 그의 나이가 마흔이기 때문에, 아직 오지 않은 그의 장노년기의 이야기를 위한 공백이 표현된 것인가 싶기도 했다.


나는 친한 친구와 이야기할 때 인간의 삶은 어차피 유한하다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이 말은 비관적인 의미로써 하는 말이 결코 아니고, 어차피 유한하며 어차피 대우주 속의 일부일 뿐인 것이 우리의 인생이니 작은 것들 하나하나에 괴로워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일생 안에 채우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채우자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 이 변주곡이 아리아 다카포로 끝맺듯이 나의 인생도 수많은 변주에 변주를 거듭하여 결국 원점으로 돌아올 것이다. 변주가 다채로울수록 아리아다카포에서 느껴지는 감명은 더욱 숭고하며 인상적이겠지.


마치 우주의 심연 속 반짝이는 별처럼, 어두운 콘서트홀 안의 무대 조명 아래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려주며 인생과 우주의 관계를 다시금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 준 그에게 고맙다. 그가 이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다음에 녹음할 곡들로 무엇을 선택할지 매우 궁금하고 기대된다.






Víkingur Ólafsson 이 연주하는 J.S. Bach의 Goldberg Variations, BWV 988: Aria 유튜브 영상이다.



비킹구르 올라프손 금번 피아노 리사이틀의 메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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